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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8월13일 16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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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바라던 현대차 정규직화, 이 엄마가 바란거지”
[인터뷰] 현대차 비정규직 박정식 열사 어머니 이춘자 씨

정재은 기자 cmedia@cmedia.or.kr

장례식장서 한 숨 쉬고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린 지 한 달이다. 박정식 열사의 어머니 이춘자(57세) 씨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쳐다보고 있는 게 ‘제일 답답한 일’이라고 했다. 멍한 얼굴, 빗질도 하지 않은 머리, 구부정한 허리 등 기운이 빠져 보이는 이 씨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어서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 세상으로 아들을 앞세우고 싶은 어머니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두 눈 감은 아들의 시신을 끼고 차가운 냉동고 옆에 있고 싶은 어머니도 없다. 하지만 그는 일찍 철든 맏아들 정식이가 ‘열사’가 되어 곁으로 왔기 때문에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치를 수가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노조 간부로 살다 애가 타게 바라던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식이는 이미 ‘나만의 아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마음이 굳건히 먹기로 다짐했다. 현대차 사측 때문에 아들의 장례를 빨리 치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씨는 “내 아들의 죽음은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문제이다”, “정규직이 되는 것, 아들이 바라던 게 내가 바라던 것이다”, “내 마음 같아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갈 데까지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내가 화가 나서 정식이 관을 들고 현대차로 간다고 했어요”

이춘자 씨는 최근 서울에 다녀왔다. 오는 31일로 예정된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촉구하기 위한 희망버스의 출발을 알리는 기자회견이었다. 그곳에서 이 씨는 울었다. 아들의 관을 메고 현대차로 향하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그는 발언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넘겨받는 순간 두 가지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단어는 현대차가 아니라 의외로 ‘언론’이었다. 그는 아들 사망 직후 사망 원인을 왜곡하는 기사를 접했다. 박정식 열사의 사망 원인에 대해 ‘언론에 잘못 나간 것 같다’는 주변의 말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화가 나서 언론들 똑바로 하라고 했지요. 와서 취재해가면 뭐하냐고, 똑바로 보도를 안 하는 걸. 정식이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그걸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내가 노조를 해본 적도 없지만 우리네들도 얘기는 들어요. 천주교 성당에 다니는데, 가끔 가다 얘기 듣다 보면 한국의 노동자들 얼마나 큰일이야. 장례식장에 TV가 없어서 못 보지만 가끔 밖에서 TV를 보면 자막으로 몇 마디 나오는 게 다예요. 그것도 정확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이득 보는 쪽으로만 나오지. 옛날에는 사람들과 얘기 하다 내가 ‘아이고 믿기를 뭘 믿어, 그냥 내 맘만 믿으면 돼. 그까지 언론을 믿긴 뭘 믿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식이 얘기를 하다보면 가슴이 콱 막히는 거예요. 엉뚱한 쪽으로 말이 나오고...”

또한 현대차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 씨는 아들이 일했던 사내하청업체 회사 간부들이 가끔 장례식장으로 조문하러 오면 상대도 하지 않는단다. 그들은 조문 왔다 유가족에 말도 못 붙이고 돌아갔다. 사내하청업체는 현대차의 ‘하수인’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할 문제가 아니라고 이 씨는 말했다. 그들도 현대차가 해고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는 등 언제든지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차에 대해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시종일관 격앙됐다.

“내가 화가 나서 정식이 관을 들고 현대차로 간다고 했어요. 진짜 그런 맘도 먹었습니다. 현대차 앞에 가서 나 혼자라도 시위를 하던지. 내 아들이 현대차 때문에 죽었는데, 현대차가 원인인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거잖아요. 한창 재미있게 일하고 지내야 할 젊은이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울분이 나오면 이럴까요. 회사는 나 몰라라 하잖아. 비정규직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해도 만날 시위하고 싸우잖아요. 그러니까 현대차랑 얘기를 해야죠. 쉽게 말해 법대로 해야 하잖아요. 벌써 3년 전에 정규직으로 하라고 했어요. 아무리 돈으로 권력을 산다지만 이건 돈으로 법까지 사는 거지요. 이런 사정 알면 한국의 법은 법도 아니라고 욕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박정식 열사’라 불리는 그의 아들은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다 자결했다. 자신이 정규직이 되길 바라는 열망과 동료가 함께 정규직이 되길 바라는 대의를 가지고 싸웠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의 문제’, ‘개인의 문제’ 일 수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은 우리나라 노동자의 문제잖아요. 쉽게 말해 노동자가 있어야지 경제가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사무직만 노동자도 아니고 일하면 다 노동자잖아요. 그런 젊은이들에게 법이 정규직이라고 했고, 그래서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게 잘못된 건가요? 내 아들 정식이를 잃은 슬픔은 나 개인의 문제예요. 하지만 정식이의 죽음은 모든 노동자의 문제예요”

[출처: 미디어충청]

“내가 너무 놀라 눈물도 안 나고... 가슴이 내려앉았죠”

아들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접했냐고 묻자 이 씨의 격앙된 목소리가 차분해지더니 눈물을 글썽인다. 충북 음성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던 이 씨는 두 아들을 타지로 보냈다. 첫째 아들은 충남 천안 쪽으로 대학을 가더니 현대차 아산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터를 잡았다. 둘째 아들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 일가친척이 있는 고향에서 일하면서 종종 찾아오는 아들들과 만나 일상을 나누는 평범한 삶을 살던 이 씨다. 7월 15일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경찰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데요. ‘전화로 얘기하면 안 돼요?’라고 했더니 경찰이 우리 집 밑에 와 있다고 했어요. 금방 나갔지요. 아들이 어디 사는지, 아파트 몇 층에 사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리고 사고 소식을 들었는데, 앞이 캄캄했죠. 슬픔보다 막막했어요. 덤덤한 것 같기도 했어요. 정신이 없었죠. 둘째 아들에게 전화하고 내가 너무 놀라서 정신이 없었어요. 눈물도 안 나고, 그냥 멍하고, 가슴이 확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삼촌이 와서 이것저것 도와줬어요. 정식이가 바라던 게 내가 바란 건데. 정규직화 그거 그렇게 정식이가 바라던 건데...”

이 씨는 3년 전에 아들로부터 현대차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시점이다. 10여 년 전 현대차에 입사한 아들이 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 하는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현대차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해 가족끼리 기쁨을 나눴고, 조금씩 대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해 안심했다. 하지만 이 씨는 시간이 흐르며 비정규직의 ‘설움’과 ‘노동착취’에 대해 알게 됐고, 대법원 판결이후 아들의 정규직화를 바라게 됐다.

“10년 전에는 비정규직이니 정규직이니 하는 걸 몰랐어요. 처음보다 대우가 나아졌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지. 3년 전에 ‘엄마 나 정규직이 될 것 같아’라고 해서 ‘어머 잘됐다’며 기뻐했죠. 정규직이 되는 걸 근로자들이 얼마나 바라겠어요. 자식이 취직해 좋은 대우 받고 조금 더 편하게 일한다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지 않겠어요. 가을에 정규직화 얘기를 들었는데, 겨울이 지나가도 소식이 없어 어떻게 됐냐고 자꾸 물어봤죠. 근데 커트라인이 있다는 둥, 잘 안 됐다는 둥 자꾸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정식 열사는 가족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거나 하소연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단다. 이 씨는 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묵묵히 치르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책임감이 강한 아들’을 믿었다. 이 씨는 아들의 속마음을 아들의 친구들로부터 종종 들었다. 노조 간부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연히 알게 됐다.

“정식이 고향 친구들이 형제처럼 지내고, 친구 부모들이 모임하고 그래요. ‘어머니, 정식이가 힘들데요’ 하더라고. 친구들이 ‘정식아, 힘들면 고향에 와서 같이 일하며 살자’고 하기도 했죠. 하지만 사람이라면 그동안 일했던 곳에 미련이 남잖아. 정규직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들어도 일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친구 엄마들이 정식이가 장가를 안 간다고 했다며 걱정했죠.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니까 돈 벌기도 어렵고, 자기 생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늦게 결혼하는 추세니까 나중에 가겠거니 했지.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전화하는 거 보고 노조 활동하는 거 알았어요. 사무장님 어쩌고저쩌고 하더라고. 나는 처음에 나서서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어요. 노조 활동하면 다른데 취직도 못한다잖아. 그러다가 어차피 하는 거 ‘남들한테 피해주지 말고 해봐라’ 그랬지. 어차피 정규직이 법적으로 다 판결이 났으니까”

[출처: 미디어충청]

“희망버스가 아산으로 오거나 양재동으로 가면 안 되나요?””

박정식 열사의 가족들은 생계를 중단하고 장례식장에 있다. 이 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박정식 열사의 동생은 회사에 한 달 간 휴가를 내고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당분간 계속될 텐데, 이 씨는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노사 교섭에 나서지 않고, 신규채용을 하며 사내하청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박정식 열사가 바라는 것,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바라는 것, 비정규직 자식을 둔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 그 바람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야 이 씨는 마음이 풀릴 것 같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명예회복은 받아야죠. 그건 정규직이 되는 거죠. 동료들이 정규직이 되면 바랄게 뭐가 더 있겠어요. 한 직장에서 차별 대우 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해봐요. 너는 정규직, 나는 비정규직이면 일할 맛이 나겠어요? 나이 많은 나도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오죽하겠어요. 현대차가, 정몽구 회장이 사과를 하면 더 좋겠죠. 사과하면 진짜 좋지. 하지만 나는 사과 받는 일이 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몽구 회장이 사과를 하겠어요? 내가 바라는 건 정식이의 명예회복, 정규직화예요. 노동자들이니까 맘 놓고 일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정식이가 바라던 것도 그렇고. 얼마나 바랐으면 그랬겠냐고...”

이 씨는 현대차가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 유서에도 남겼듯,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리면 그는 무너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현대차를 향한 분노와 울분도 이 씨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정몽구’ 회장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사실 장례가 문제가 아니지. 정규직화 아니겠어요?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이 문제를 여태껏 끌고 온 회사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역으로 이만큼 끌었으면 이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지 않아요? 정몽구... 쉽게 말하면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야. 더 가지려고 하는 거지. 욕심이 넘치고 넘치는 거잖아. 양심이 있어야지. 막말로 착취잖아. 노동착취. 똑같이 일을 시키면서 덜 주는 거잖아요. 되겠죠. 3년을 싸웠는데, 정규직이 안 되겠어요? 여태껏 싸웠는데... 내 맘 같으면 갈 데까지 가보고 싶어요. 나갈 때까지 나가보는 거지”

‘질긴 놈이 승리’한다지만 너무 길다. 대법원에서 3년 전에 불법파견을 판결했지만,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10여년 넘게 싸워왔다. 그 결과 불법파견 판결도 이끌어냈다. 이 씨는 이 과정을 세세히 알진 못하지만 같이 분노하고 있다. 분노하는 만큼 기대도 커진다. “희망버스가 여기로 오면 안 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이 씨다. 지금, 그가 기댈 곳이 없다.

“희망버스는 사람들 개인이 많이 참여하는 거니까 이쪽으로 오면 좋겠죠. 그런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희망버스가 아산으로 오거나 서울 양재동으로 희망버스 가서 교통을 채증이라도 일으켜보면 어떨지...” (기사제휴=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 cmedia@cmed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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