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입니다.
얼마 전 일어난 대구녹색당의 내부문제(지난달 녹색일기 참고)에 책임을 느끼며 공동운영위원장직을 사퇴했습니다. 매우 부족했지만 저의 첫 정당에서의 소임은 이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시원섭섭하지만 이젠 그저 평당원으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하기도 합니다. 매번 원고 제출일자를 맞추지 못해 죄송했던 일도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녹색일기는 지난 1년하고 몇 개월 동안 대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내며 고민한 것에 대해서 짧게나마 풀어볼까 합니다.
꿈꿔왔던 ‘풀뿌리’를 위해 들어온 녹색당
풀뿌리 민주주의=참여민주주의
저는 김종철 선생님의 강연을 통해 우연히 녹색당을 알게 됐습니다. 평소 ‘풀뿌리’라는 단어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던 저는 별 고민 없이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녹색당에 가입했습니다. 이후 누군가의 추천으로 운영위원이 되었고, 또 누군가의 추천과 추대로 공동운영위원장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역시 큰 고민은 없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며 꿈꾸었던 ‘풀뿌리’라는 단어를 풀어내는 데 있어 조금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겠구나 싶었을 뿐, 역시 그다지 많은 고민 없이 위원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간의 문제이긴 했지만 대구녹색당의 1년은 분명 갓난아기의 옹알이 정도의 운을 뱉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풀뿌리’는 무엇일까요? 검색 포털에 ‘풀뿌리’를 검색해보니 재미있게도 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뿌리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 위키백과를 통해 살펴본 뜻은 이러합니다. “소수 엘리트 계급이 대다수의 민중들을 지배하는 엘리트주의를 멀리하고, 평범한 민중들이 지역 공동체의 살림살이에 자발적인 참여를 함으로써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참여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특히 지방 자치와 분권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민주정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지역주민들이 지방의회의 예산을 계획하고 실시하는 일에 참여하는 지역참여예산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예이다”
소수 엘리트 계급이 대다수의 민중들을 지배하지 않고, 평범한 민중들이 지역 공동체 살림살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지역 공동체와 실생활을 변화시키는 참여민주주의…. 이 설명대로 머릿속에 재해석하고 그림을 그려보면 시민이 지역을 운영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반정당의 정당, 녹색당
그런데 조금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시민 스스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내면 대의제를 표방하며 시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치가들이나 정당은? 솔직하게 가감 없이 말하자면 필요 없어 보입니다. 시민 스스로 사안에 따라 대표자를 뽑고, 함께 결정한 사안에 대해 대리할 수 있도록 하면 그만입니다. 대표자가 못하면 바꾸고, 대표자가 잘했는데도 변화가 없다면 변화 없는 그것을 부숴버리면 되는게 풀뿌리 민주주의로 보입니다.
그런 시대가 오면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정당의 직업정치인들은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런 그림을 그렸던 저였기에 녹색당에서 외치는 ‘반(反)정당의 정당’이라는 문구는 매력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적인 정당으로서 정당이 없어지는 것을 지향하는 정당. 아… 생각만 해도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 정당 중 어떤 정당이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녹색당 외에는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녹색당도 지향점을 향해 가는데 많은 장애물이 있어 보입니다. 특히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느낀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실현하는 일이 같은 가치에 합의한 정당 안에서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꿈꾸는 녹색당에서도 당원의 1/10이 모이면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언제나 직접 움직이는 사람은 소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해서 그 1/10이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지향에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특출한 리더를 가진 조직은 보통 그 리더에 변화가 생길 때 많은 부침을 겪곤 합니다. 엘리트 정치인을 통해 펼쳐지는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풀뿌리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아직 어떤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애물, ‘리더’와 ‘시민’의 격차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저는 이러한 현실의 원인이 “스피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전체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목표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사다난하고 긴급한 사안이 많은 현실에서 이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주민조직이나 자립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현실에 대한 판단을 ‘직업적으로’ 해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격차를 직업정치인이 기다릴 수 있느냐, 또는 시민들이 리더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원하게만 보이는 풀뿌리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푸르름’의 정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저 역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나 일단 제 답은 “기다리자”입니다. 현실을 바꾸고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욕구를 가지고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 제 답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이 있었고, 최근 제가 운영위원장을 내려놓게 된 일도 이 격차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 된 합의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험의 과정에서 실패가 이어지고,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한 풀뿌리는 그저 요원한 이상향일 뿐이었다고 결론 내리더라도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녹색당 뿐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이전의 많은 운동권 선배들이나 노쇠한 리더들에게 왠지 ‘풀뿌리’는 여유롭게 바라보고 기다리며 투자할 수 있는 ‘실험’이 아니라 선결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하나의 ‘문제’로 보이는 듯합니다.
솔직히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정착되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현재로서는 이상적인 생각이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앞으로 많은 시간을 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해나갈 수 있는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하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 새 부대에 ‘풀뿌리’라는 새 술을 받아야 할 시기가 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