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달중(김병욱 분)은 26년 전 아내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6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지만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자란 후였다. 마지막을 기다리며 병원 생활을 하던 그는 그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빚이 싫어서 스스로 왼손을 잘라내고 죽은 척 위장했다고, 당신도 빚쟁이에게 시달리느니 감옥이 더 좋지 않으냐고 26년 만에 진실을 이야기한다. 격분한 그는 깨진 유리조각을 집어 들고 ‘귀신’의 목을 찌른다.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야기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를 찌른 황달중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스스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그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한 아내에게 죄가 있는 걸까. 누구에게 이 죄를 물어야 하는 걸까.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법정에서 황달중의 변호를 맡은 장혜성(이보영 분)은 이 죄를 사법부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성은 배심원들을 향해 황달중 뿐 아니라 그에게서 26년의 세월을 빼앗은 사법부에 대한 판결도 함께 내려줄 것을 호소한다.
여기 현실 속에서도 황달중은 존재한다. 지난 20일 울산으로 향한 희망버스가 바로 현실 속 황달중이다. 희망버스가 울산을 다녀간 다음날 <조선>, <동아>, <한국경제>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입을 모아 희망버스의 ‘폭력’을 지적하고 규탄했다. 경찰은 이에 적극 호응해 ‘희망버스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폭력 시위자를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보수언론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죽봉,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펜스를 뜯어 강제로 공장에 진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죽봉은 지난 15일 스스로 목매 숨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기리는 만장 깃대였고, 쇠파이프는 공장을 지키던 용역들이 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차지하자. 어쨌든 그곳에서 참가자들과 용역, 경찰 간 충돌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버스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희망버스가 향했던 그곳에는 현대차에 대법원 판결 이행을 ‘부탁’하며 280일이 넘도록 고압이 흐르는 철탑 생활을 하는 두 생명이 있다. 그들은 왜 철탑 생활을 하고 있고,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렸나. 현대차는 하청업체 직원에게 정규직과 같은 일을 시키고, 임금은 절반만 줬다. 명백한 ‘불법 파견’이다. 노동부는 2004년에, 대법원은 2010년에 이것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9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대차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차의 잘못이 있으니, 희망버스의 '폭력'이 정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속 장혜성 또한 황달중의 행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죄를 지었다면 마땅히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종양으로 죽음을 코앞에 둔 황달중에게는 사법부가 안긴 억울함을 밝힐 시간이 없고, 현실 속 대한민국 검찰은 희망버스의 불법에만 도끼눈을 뜬 채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현대차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끈질긴 악연의 시작은 결국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에서 비롯됐다. 26년전, 사법부가 제대로 된 판결을 했다면 황달중은 억울한 옥살이도, 죽은 아내를 다시 찌르는 일도 저지르지 않았을 거다. 노동부와 대법원의 판결대로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면, 아니, 적어도 그것을 인정치 않는 현대차를 사법부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면,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가는 일은 없었을 거다. 더불어 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드라마 속 배심원들은 황달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리적으로 그는 분명히 유죄였지만, 배심원은 26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했다. 사법부에는 그의 죄를 물을 자격이 없었다. 올해만 세 명의 현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맸고, 한 명이 몸에 불을 붙였다. 또 다른 두 명은 280일이 넘는 시간동안 자발적인 징역을 살고 있다. 희망버스의 죄를 물을 수 있는 자격이 이 나라 사법부에는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