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는데,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랴"라는 말이 있다. 대개 이 말은 갑들이 쓴다. 을이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갑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을 벌이겠느냐는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거꾸로 을의 처지에서 말하자면, 죽기를 각오하면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예수 같은 사람이 죽을 각오를 했다면, 그가 하려는 일은 무언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오직 잘 먹고 잘사는 일에 인생을 걸고 영혼까지 저당 잡으며 불의한 체제의 머슴으로 사는 사람과는 다른 모양일 것이다.
실제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죽을 결심을 한다. 9:51이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다"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는 말은 죽음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예루살렘에 피하지 않고 들어가겠다고 굳게 결심했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유대 사회의 오래됐으나 굽은 전통, 비뚤어진 인습과 대결하고 혁파하는 일을 벌인다.
예를 들면, 굳은 결심을 한 이후 길을 떠났는데, 한 사마리아 마을이 맞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과격한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저 마을에 불을 내려 태워 버리자는 극단적인 말을 하자, 예수는 그들을 꾸짖고 조용히 다른 마을로 간다. 일반적인 유대인 정서 같으면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말이지만, 예수는 동조하지 않았다. 즉 유대의 굽은 전통과 맞섰다.
또 오늘 본문 직전에 나오는 이야기, "내 이웃이 누구냐"라고 묻는, 똑똑한 체하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해, 유대인들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가장 훌륭한 이웃의 사례로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켜서 율법교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사마리아 사람의 모범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뽐내는 집단 밖에도 하나님 뜻을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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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가지만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당한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 | | |
이처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유다의 굽은 전통과 비뚤어진 관습을 혁파하고 새로운 윤리를 설파하고자 한다.
오늘 본문도 그런 흐름 위에 있다. 오늘 이야기에 담겨 있는 핵심주제는 '여성지도력의 새로운 방향제시'이다.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누가 10:38) 아주 자연스러운 서술이다. 이 이야기에서 구체제와 맞서려는 모습이 보이는가? 여자는 손님을 영접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오직 남자의 일이다.
창 18장을 보면, 천사가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다 늙은 사람에게 아들을 점지해 준다.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장막 안에서 이 말을 들은 아내 사라는 기뻐서 펄쩍 뛸 소식을 접하는데도, 그 말이 사실이냐고 뛰쳐 나와서 재차 확인할법한데도, 당최 바깥으로 나오질 않는다. 여자는 나서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바로 그런 인습을 깬 것이다.
여기서 성경을 조금 아는 사람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왜 마르다가 손님맞이를 하지? 오빠 나사로는 어디 가고?" 라는.
나사로 등장은 요한복음 이야기이다. 요한 11장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이야기에서, 병든 나사로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오라버니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말씀을 역사적 실제, 즉 마르다의 가족관계로 전제해서 모든 복음서에 적용할 수는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각각의 복음서는 복음저자의 신학관점을 반영하여서, 자기들 공동체의 상황, 문제를 예수말씀으로 풀기 위하여 썼다. 이게 복음서의 일차목적이다. 역사적 실제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 오직 마르다와 마리아만 등장하도록 설정했다. 왜? 가부장적 인습에 매여 있는 유대관습과 대결하는 이야기 설정을 위하여, 그 등장인물은 여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누가 10:39) 유대 문화에서 사람들은 보통 의자나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하지만 제자들은 선생 발아래 앉았다. 가까이에서 선생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 랍비는 여자는 학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가 학생으로서 선생 발 곁에 앉아 있는 모습은 유대인 남성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다. 마리아는 주변의 그런 당혹, 충격, 노려보는 시선을 물리치고 앉아 있는 거다.
어쨌든 마르다가 남성주인만이 할 수 있는 손님맞이로 파격을 보이기는 했지만, 음식준비는 아무도 시비 걸 수 없는 여성 고유의 일이다. 마르다는 적절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마리아가 행한 일은 당시 전통과 인습을 깨는 도발적인 행동이었다.
표면적인 갈등은 뜻밖에도 언니 마르다로부터 나왔다. 마르다가 예수께 불평한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누가 10:40) 마르다는 마리아도 전통과 인습에 맞게 여성 고유의 일에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마르다를 달래고 마리아 편을 든다. 말씀하기를,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누가10:42)
좋은 몫, 아무도 빼앗지 못할 그것은 무엇인가? 마리아 중심으로 풀어보자. 마리아는 의식이 깨인 여성이 틀림없다. 문제의식이 없다면 기존 관습을 깨는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당대 기존이데올로기에 순응할 수 없는, 많은 문제를 자각했다. 그러던 중, 마침, 소문으로만 듣던 사람이 자기 집으로 왔다. 일생일대 다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맞이했다. 전후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가 볼 때, 예수의 행보는 이생에서 마지막 길이다. 마리아가 그것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자신이 맞이한 이 꿈같은 기회를 허투루 날려 보낼 수는 없었다. 언니를 도와 음식준비를 하는 것도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싶었다. 말을 들어야 그 사람의 노선, 사상, 철학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봐야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김없이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스운 얘기하나. 순복음신학교를 나온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은 조용기 목사의 말투를 똑같이 흉내 낸다. 우리가 볼 때는 딱하고 희한한 일이지만, 그들은 매우 진지하게 모방한다. 자신들의 로망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거다.
마리아라고 왜 갈등이 없겠나? 언니를 도와야 한다는.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예수를 가까이에서 대면할 기회는 사라진다. 그래서 마리아는 결단을 내렸다. 어떤 지청구를 듣더라도, 언니에게 심한 원망을 받더라도, 예수의 말씀을 듣기로.
좋은 몫을 택한 사람은 남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할 겨를이 없다. 자기가 택한 좋은 몫을 더욱 단단히 자기 것으로 하는 것만도 바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불평하지만, 마리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예수께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두 자매의 모습에서 반성고백할 게 있다. 그동안 동료목회자들이 교회에만 안주하고 입으로만 사회진보를 떠드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스스로 멀어졌다. 마르다버전으로 말하자면, "주님, 저들은 어째서 저렇게 태평하고 한가한 거지요? 교회에만 목매지 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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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3일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국대회에 참석해 국정원 문제와 더불어 청도 송전탑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 | |
불평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는 이렇게 달랬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누가 10:41) 이 말이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창욱아, 창욱아, 세상 오만 일에 다 관여할 수는 없다. 사람살이가 네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 다른 사람이 하느니 안 하느니 나무라거나 비난하며 너의 마음까지 다치지 마라. 네가 좋은 몫을 택하였으면, 그 일로 하나님 뜻을 이루어라."
그렇다. 각자 자기 몫을 택할 뿐이다. 그 일에 충실한가가 문제이지, 세상 오만 일에 다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내 몫에 충실할 뿐이다.
바라기는 독자 개개인도 시류와 세속에 편승하지 말고, 정의와 평화, 평등세상을 향해 자기 몫에 집중하면 좋겠다. 그래서 기필코 갑의 세상을 한번 뒤집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