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신임 감독 홍명보 역시 슬로건을 ‘원팀(One Team)’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기성용의 페이스북 사태로 높아진 축구 국가대표팀 내의 긴장도는 홍 감독의 이 슬로건으로 봉합되는 모양새다. 오히려 홍 감독이 기성용 회초리빨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 덕분에 팀의 정신적인 부분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태이며, 남은 숙제는 330여 일 남은 브라질 월드컵까지 팀의 전술적, 기술적 완성도를 ‘시간을 뛰어넘어’ 빨리 구축할 수 있느냐로 보인다.
기성용 회초리빨과 홍 감독 카리스마의 조합은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무리 없이 지속될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월드컵 이후에도 ‘원 팀’을 소리높여 외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기성용 사태를 보건대, 대표팀 내부의 곪은 부위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표면상으로는 기성용 개인 인성에 대한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외파들이 국가대표 차출을 꺼리는 현실적인 이유와 낮아진 국가대표의 위상에 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엔 곪은 부위의 전이 속도가 빨라질 것이며,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유망주까지 생각한다면 쉽게 눈감을 수 없는 문제다.
국가대표는 ‘천상의 존재’가 아니다
나는 기성용 사태가 유달리 뜨거웠던 이유가 사람들이 국가대표에 대한 과한 기대가 있지 않은가 지적하고 싶다. 국가대표를 ‘천상의 존재’로 놓고, 내부 분란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태도가 그것이다.
아마 이런 국민들의 태도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기 싫다는 것’과 ‘개념은 모호하나 마음 한구석에 박혀 있는 애국심’의 오묘한 조합에서 나온 결과라 생각한다. 축구팀 내부의 갈등은 감독 최고 연봉을 받는 조제 무리뉴의 팀에도 발생하는 흔한 일이지만, 이 ‘오묘한 조합’의 구심력이 강하다면 작은 잡음조차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 대표팀은 이 ‘오묘한 조합’은 전 세계 어느 팀보다 이 조합의 위력이 강했다는 배경도 언급할 수 있겠다.
냉정히 따지자면, 축구 선수의 존재 이유는 더는 ‘국위선양’이 아니다. 요즘 축구선수들이 밝히는 최고의 꿈은 최고의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 경기는 선수 개인 관리에 상당한 지장이 된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지느님’ 박지성의 은퇴는 이것의 대표적인 예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는 유럽에서 한국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악조건까지 놓여있다. 시대가 변화한 만큼 대표팀 운영을 위해서는 이런 축구 선수들의 현실적 조건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기성용 사건에 대한 언론과 국민들의 반응은 이런 현실적인 고려, 혹은 배려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몹쓸 발언을 한 기성용에 대한 질책은 나라에 대한 보답도 못 하는 배은망덕한 해외파에게로 불을 옮겨 붙였다. 윤석영과 김보경에게로 ‘혈액형 수비수’론으로 이어졌던 것이 이 예다. 기성용과 같은 불만 세력이 나온다면, 국가대표 선발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이민까지 고려해야 할 상태까지 갔다.
여기서 직장인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직장인은 자신과 팀이 모두 최고의 실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팀이 늘 잘할 수만은 없고, 팀원 내부의 의견과 감정의 충돌은 수시로 일어난다. 팀이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이 의견과 감정의 충돌이 왜 발생했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먼저지, ‘팀에 무조건 따라야 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홍명보 감독의 카리스마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지금과 같이 해머로 내려찍듯 국가대표만 강조한다면, 도저히 보고 싶지 않은 홍명보 카리스마가 바닥난 상태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현재 ‘팀에 무조건 따라야해’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앞서 말한 국민들의 과한 기대다. 국가대표를 ‘이 한 몸 조국을 위해’ 바쳐야 하는 천상의 존재로만 보는 것이다. 이들을 조금 ‘인간적인 존재’로 내려준다면, 이번 국가대표팀의 내부 잡음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대세와 진짜 원팀의 조건
지난 17일 국가대표팀 훈련장 파주트레이닝센터에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홍명보 감독은 모든 선수가 센터에 들어올 때 정장을 갖춰 입고 정문 출입구에서 걸어들어오도록 지시했다. 국가대표의 ‘기강’을 잡겠다는 게 주목적이다. 유럽 클럽팀의 경우 모든 이동경로에서 팬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선수의 책임감을 느끼게 하려고 공식정장을 입는다. 홍명보 감독은 어수선할 수 있는 팀 분위기를 개선할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강잡기가 해답일까. 기강은 팀의 질서를 유지하고 목표를 향해 갈 수 있게 하는 좋은 방안이지만 임시적이고 보여주기 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서 수많은 ‘위장군기’를 경험하지 않았나. 상관과의 진정한 신뢰가 없는 이것은 쓸모없는 폼잡기에 불과하다. 한국 축구는 국가대표의 위상이 떨어졌고, 이들을 뭉칠 수 있게 한 소위 ‘애국심’ 역시 과거만큼 강하지 않다. 그렇다면 군대에서 상관에 대한 신뢰와 같이 국가대표선수들의 가슴을 채울 ‘그 무엇’은 뭘까? 나는 그 대답을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정대세에게서 찾고 싶다.
정대세의 국적은 한국이다. 북한 국가대표팀에서 뛰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 했다.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그가 북한 국가대표팀을 택한 이유가 담긴 인터뷰는 깊은 울림을 준다.
“내가 대표하는 건 한국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자이니치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자이니치이며 자이니치라고 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이며, 나는 자이니치를 위해 플레이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에도 없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조선학교에 다니며 ‘자이니치(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그 학교는 정대세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지인 모두가 거친 학교다. 모두가 이곳을 통해 자이니치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다. 북한은 그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을 했을 뿐이고, 그래서 그는 북한 국가대표팀을 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은 ‘자이니치’라는 묶음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대세가 생각하는 국가대표란 “자신의 혼을 담아서 그 나라를 위해 뛸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자이니치라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뛰는 순간이 너무나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그의 애국심을 욕할 수 있을까.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지만 그는 그곳에서 커왔다. 대학졸업 후 더는 축구 선수를 할 수 없었을 때도, 축구선수로서 벽에 부딪혔을 때도 그를 안아줬던 건 ‘자이니치’였다.
조금 정치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은 애국심을 놓고 두 부류로 갈리는 것 같다. 애국심을 맹목적일 만큼 요구하며 정치적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고, 한쪽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으며 애국심 그 자체가 허상이라 말하고 냉소하는 집단이 있다. 전자는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지배한 애국심과 가까운 형태였고, 선수들은 이 국가대표 경기를 자신이 수동적 입장이 되는 희생과 의무로만 여기고 있다. 후자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형태인 국가대항경기 자체에 거리를 두고 바라봤다.
하지만 이 두 태도와 비교하자면 정대세의 ‘지도에도 없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순수하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애국심을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애국심은 다름 아닌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경험과 기억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의 국가대표 활동은 그 공동체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재조명, 나아가 공동체가 미래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정신적 토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애국심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집단에 대한 무조건적 희생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체적 보답. 내가 자라온 환경과 함께해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 애국심은 파편화된 세상에 ‘공통의 삶’을 생각해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기존의 ‘애국심’이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만큼, 합리적인 형태의 ‘애국심’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명보가 말하는 ‘원팀(One team)’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임시방편적인 기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가족, 친구,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어줄 수 있는 것. 정대세가 말하는 ‘혼을 담아 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형태의 나라 사랑이 국가대표 선수의 심장을 채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