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해짐이 있지 않다면, 글을 쓸 때 현재 자신의 상태가 지극하게도 반영되기 마련인 것 같다. 내가 쓰는 글이 온전히 나 자신인지, 단지 표현하고 싶은 바람인지, 덧붙임인지 잠시 고민을 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일부이자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역시 지극히 나를 쓸 수밖에 없다고 끄덕인다.
장황한 듯 풀어내는 이유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책에도 음악에도 내가 이입되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집중할 수 없다고 느낀다는 것. 그럼으로써 이입되거나 선을 넘어 그쪽에서 글을 끼적이는 행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날 것으로써 내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얼마 전, 밴드 안녕바다는 새 음반을 발매했다. 이번 앨범의 음악들은 다 이전에 만든 곡들이었다고 한다. 안녕바다의 음악은 좋아하고 있던 터라 음반을 찾아 들어보았다. 타이틀곡인지 미처 알지 못한 채 처음 들었던 <하소연>때문에 나는 또다시 잠시, 멈춤이 되었다.
‘널 사랑하지만 널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 널 바라보지만 널 그리워하진 않을 것 같아’*
가사를 쓴 이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해본 적 있다고 했다. “연인과 소원해졌을 때 애증과 사랑의 감정이 섞인 느낌이랄까요?”라며. 그런데 나는 이 가사가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저 감정이 ‘정확히’ 뭘.까.? 도무지 관통되지 않는다. 물론 이해와는 별개로 아프게 와 닿아버리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별개일까. 어쨌든 내가 이 음악을 이야기 하는, 그리고 잠시 멈춤이 되어버린 이유는 다른 노랫말 때문이다.
‘단 한마디만 위로해주면 그 한마디로 하루를 살 수 있을 텐데’**
이 한 문장이다. ‘단 한마디만 위로해주면’ 고작 그 단 한마디면 ‘하루를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저 한 문장. 밴드 안녕바다의 이번 타이틀곡이기도 한 <하소연>의 후렴구 가사이다. 누군가, 단 한 마디의 위로가 필요한 그 누군가에게 힘을 주고 공감을 주고자 만들었다는 노래.
미안하지만, 나는 힘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공감보다는 저 한 문장의 노랫말에 무너져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잃은 그 사람에게 위로 받기를 바란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우스워서, 정말 그 한 마디면 또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 거라 믿어서. 이내 견딜 재간이 없이 멈춰 버렸다. 도저히 담담할 자신이 없다.
약간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당분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이 글이 너무 부끄러워질지 모른다. 별 것도 아닌 일처럼 바스라 질지도 모른다. 헌데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 일이기에 그토록 심각하게 앓는 것이다. 누군가 지금의 나를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거리’들이 지금 내게는 그토록 슬픔이고, 끔찍할 수 있음은 아마 그래서이겠지.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실은 괜찮은 게 아니었던 건지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그냥 흐를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그렇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결국 그것은 또다시 임시방편일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 보았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안쓰럽게 여겼다. 돌고 돌아 어쩌면 그에게도 상처를 줬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나만 아프다고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생각한 언어들을 내뱉었다. 그러고도 그 사람을 탓했다. 미워하지도 못할 거면서, 당장 무르고 싶은 마음이면서. 선택도 정리도 모두 내 몫이었다는 걸 점차 깨닫고 있다. 버려지지 않고 몸 어디엔가 달라붙어 있던 미련이란 녀석을 그제야 알아챘다. 허전한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울음을 참는다.
‘당분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아마 이 글이 몹시 부끄러워질 모른다. 또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쩔 도리가 없다. 나의 편협으로 잃어선 안 되는 이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미워진다. 그래선 안 되니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괜찮아지지 않을 리 없다, 고 말이다. 스물여덟 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또 하나 깨닫는다.
밤의 그 가로등을 바라볼 때면 나는 어김없이 눈을 질끈 감는다. 아직은 그렇다. 지난 그 새벽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지만, 내 못난 타성의 마음들을 바라볼 수 있으니 견뎌야겠다. 그곳에, 늘, 있어달라는 이기의 나이지만 결국 이해해주겠지. 실은 아무것도 한 게 없을지도 모를 사람을 두고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자거나, 내 슬픔들아’***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를 용서하는 시간이 내겐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그리하여 그 미움으로 가려진 막을 걷어내고 찬찬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그제야 똑바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다시 어감이 좋은 단어들처럼 곁에 서야지. 세상에 사랑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니까. 이 세상에 사랑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니까. 수십 번도 더 마음이 변하지만, 다 감당해 낼 것이다. 온전히 나의, 몫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감이 좋은 단어들처럼 옆에 있어줘야지.
조금 떨어진 ‘이곳’에ㅡ
*,** 안녕바다 <하소연> 노랫말
*** 신경숙 작가, <자거라, 네 슬픔들아> 제목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