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곳곳에서 더위로 사람들과 농작물이 쓰러지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폭염으로 일사병 환자가 하루 천 명이 넘었다. 사망자까지 늘어나니 에어컨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전기 덕분에 폭염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한국도 며칠째 불볕더위가 내리쬐는 바람에 에어컨 없이 혼자 도는 선풍기에선 더운 바람만 나온다. 이 더위는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자빠뜨리고 아프거나 늙은 사람을 숨조차 쉬지 못하게 만든다.
폭염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는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여름철 전기사용량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이쯤 되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 공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에너지 당국은 당연하게도 전기절약을 강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와 한국전력은 핵발전소를 더 짓자고 나선다. 마치 시민이 전기를 낭비하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폭염으로부터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귀한 전기를 시민이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핵발전소를 짓고, 대도시를 위해 청도와 밀양처럼 수혜도 보지 못할 시골의 공동체를 파괴하면서까지 만들려고 한 그 전기 말이다.
전기절약 홍보와, 가정용전기요금누진제를 통한 한국전력과 에너지관리공단의 가정용전기 통제 정책은 엉뚱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돈 없는 서민들은 어차피 낭비할 수 없다. 폭염에 에어컨을 끄자는 것은 이 없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니까. 넓은 주거공간을 사용하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는 이들에게 전기요금누진제는 걱정거리가 못 되지만, 열을 제대로 배출도 못 하는 저렴하고 좁은 주거공간을 가진 이들에게 전기요금누진제를 통한 전기절약 강요는 폭력이다.
더구나 한국 국민은 전기 절약을 요구당할 아무 까닭도 없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미국 다음이나,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최저다. 가정용 전력 소비가 많은 것이 아니라 전체 전력 소비가 과한 것이다. 한전은 1인당 전력소비량을 발표하며 국민에게 블랙아웃의 공포를 떠넘기고 있다.
이런 와중에 TV 예능프로그램도 절전 대열에 합류했다. KBS에서 방영 중인 <인간의 조건>은 2주 동안 ‘전기 없이 살기’를 과제로 내놓았다. 에어컨은 물론 휴대폰 충전을 위해서조차 전기를 사용할 수 없기에 출연자들이 태양광, 자가 운동 동력 등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프로그램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대체에너지 생산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가난한 서민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저 전력생산 도구를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가? 에너지정책이 원전 중심 발전인 상황에서 말이다.
극한을 체험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이지만, <인간의 조건> 출연자들도 가정용 전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에 의구심을 품는다. 개그맨 양상국은 “그런데 우리가 쓰는 거는 뉴스 봤는데 얼마 안 돼요. 사실. 일반 가정집이나 일반용은 얼마 안 쓰는데, 산업용은 전기를 엄청 쓰는 거에요”라며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게 산업용은 전기세가 싸. 가정용이 비싸. 그래서 산업에서는 전기를 막 쓰는게 있대”라고 말한다.
그렇다. 에너지관리공단이 발표한 전기사용량 자료에 따르면 2011년 4월 기준, 산업용 전기는 전력사용량의 56%인데, 일반용 전기는 22.8%, 가정용 전기는 13.9%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또, 2011년 산업용 요금은 평균 81원으로 가정용 요금 119원보다 싸다.
그리고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업용 전기에 지원하는 돈은 작년에만 2조2,000억 원이었다. 같은 해 전기사용에 복지할인은 불과 2,750억 원이었다.
누가 전기 사용을 줄여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하나만 줄이자면 산업용을 줄여야 한다. 혹서기 산업 가동을 줄이든지, 스스로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 쓰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