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5일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일본의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유출되면서 일본 내 탈원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50여개의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단 2곳만 가동 중이며, 이마저도 연내 중단할 예정이다. 일본의 이러한 대응에도 한국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로 일관하다가 품질검사표 조작, 불량품사용 등의 원전스캔들에 이어 신고리 1호기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유사한 폭발위험이 있다는 전망과 함께 이미 영광 4호기와 5호기 등이 재가동과 가동 중단을 되풀이하고 있다.
같은 시기, 비록 원자력 발전소는 아니지만, 대구에서도 한 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발전을 멈춘 발전소는 2008년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문화예술 창작벨트조성’계획의 시범사업으로 선정되어 KT&G의 옛 연초제조창 별관시설을 리모델링하고 2012년 11월에 문을 연 수창동의 대구예술발전소다.
오픈행사 이후 문을 굳게 걸어 잠군 대구예술발전소
2013년 4월까지 2차에 걸쳐 도큐먼트 프로젝트 ‘만권당’, 전시 ‘판타지-윌비 데어’, ‘무브 앤 스틸’ 등을 진행한 대구예술발전소의 오픈행사는 지역의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다루었다. 대구시는 시범사업으로 지정된 2008년부터 매년 대구문화예술계에 큰 획을 긋는 사건처럼 진행과정을 리뷰하면서 대구예술발전소를 활용해 대구예술계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장밋빛 전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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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발전소 오픈행사로 치뤄진 도큐멘트 프로젝트 '만권당'은 지난 3월부터 4월 27일까지 진행돼 많은 호응을 받았다. [출처=대구예술발전소 홈페이지] | | |
그러나 오픈행사 이후 본격적인 예술발전을 시작할 것 같았던 대구예술발전소는 오픈행사가 끝난 4월 28일 이후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대관행사로 닷새 동안 ‘<제33회 대구건축대전>-도시재생을 위한 R³’과 하루 동안 ‘만권당 오픈컨퍼런스’를 진행한 이후 지금까지 어떠한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전스캔들 만큼 쇼킹한 배경이라도 있는 것일까?
시설과 깔끔한 외관, 하지만 특별한 개성 없는 난삽한 공간
대구예술발전소의 동력을 '돈'으로 꼽는 대구시
대구예술발전소는 무슨 발전소인가?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는가? 원자력일까? 수력이나 화력? 그것도 아니면 대안에너지인 풍력? 태양력? 조력? 지력? 발전소인건가? 아마도 대구예술발전소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전기가 아닌 예술을 발전시키는 공간이라고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다. 예술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주동력원이니 인력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 폭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자유로운 상상력과 과감한 실험정신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전시실과 레지던시 공간, 북까페, 세미나홀, 아카이브 전시관, 사무실, 다양한 장르로 배분된 운영위원과 관리담당 공무원으로 구성된 현재의 대구예술발전소는 시설과 깔끔한 외관을 갖추었지만, 특별한 개성이 없는, 체계적인 발전시스템을 상실한 난삽한 다목적 공간일 뿐이다.
이러한 우려는 오픈 행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수면으로 떠올랐다. 전시, 강연, 공연이 뒤섞인 오픈 행사는 이 공간이 예술창작자를 품으려고 하는지, 예술향유자들을 위한 서비스공간인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성격의, 어떤 장르의 예술을 품으려는 것인지, 어떤 층위의 예술향유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인지 그 방향성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했다. 오픈 행사의 각 꼭지를 담당한 전문가, 기획자들 역시 동상이몽 속에서 고군분투하였지만, 기초적인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은 공간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필자는 현재의 대구예술발전소가 발전을 위한 면밀한 검토와 시스템설계가 진행되지 못한 상태라고 진단하고 있다. 예쁜 벽돌부터 올리고, 세월이 흘러 번듯한 건물로 변모하였으나 속은 텅 빈 상태다. 오히려 '예술난장프로젝트'를 비롯한 리모델링 공사 이전에 공간을 활용하여 진행되었던 2008년 이전 예술창작자들의 실험이 훨씬 생동감이 넘쳤다.
과연 대구시의 진단도 이러할까? 아마 조금은 다른 것 같다. 대구시는 대구예술발전소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2008년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대구예술발전소에 투여된 시설비용과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 28일까지 5개월간 진행된 오픈행사는 중앙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여 진행됐다. 지원금이 딱 끊어진 시점에 문을 걸어 잠근 현재 상황을 대구시는 원료가 떨어진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기에 갖가지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끌어댈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대구신문은 지난 6월 5일 4년간 27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대구예술발전소에 인디밴드들의 창작과 공연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는 '뮤즈 인 대구 프로젝트'사업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대구시 연관 공무원이 중앙정부에 예산을 신청한 사실을 확대하여 해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대구시가 대구예술발전소를 운영하는 방식과 비전을 짐작게 한다.
만약 대구예술발전소에 대구인디밴드들을 위한 인프라를 조성하려면 지금까지 대구에 존재해왔던 인디씬의 영향력 있는 예술인, 단체, 기획자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선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구시는 이 과정을 생략한 채, 지정된 공무원의 기획서와 그 공무원의 좁은 네트워크에 의존하여 예산신청과정을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유세를 다니며 인디밴드를 예술2군으로 규정하고 예술1군으로 도약을 약속했다. 인디밴드를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으로 보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국민의 혈세를 미끼로 예술가들을 줄 세우는 공무원사회의 오래된 악습이며, 결국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보다는, 단시간 요란하게 타다가 원료가 바닥나면 사라지고 마는 소비적인 대안일 뿐이다.
페이퍼워크가 아닌 예술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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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예술발전소 홈페이지를 통해 레지던시 입주신청을 하자 '메뉴를 준비중 입니다'라고 응답한다. | | |
지금 대구예술발전소에 필요한 것은 번듯한 외관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전시행정이 아니다. 허름한 외관이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안목, 행정편의를 위한 페이퍼워크가 아닌 예술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한 소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구예술발전소의 오픈행사가 끝난 4월 30일에야 운영위원을 공개모집하였고, 6월 20일에는 수시대관 공지하였다. 첫 번째 운영위원회의는 7월 9일에야 비로소 열렸다. 시에서 예상하고 있는 본격 재개관 시기는 빨라야 9월 정도다. 수백억을 투여한 대형메머드 문화기반시설을 오픈하고도 5개월여의 공백을 만들 수밖에 없는 구멍 난 행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구시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시설공사와 오픈행사는 국비지원이었지만, 이제는 전액 시비로 운영되고 대구시립미술관이나 오페라하우스와 같이 집중 지원되는 문화기반시설과는 달리 예산규모가 작아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예산이 작아서 외부로 열린 기획을 진행할 예정이며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대구시가 대구예술발전소를 젊은 예술 혹은 자립예술이나 저변예술을 발전시키는 공간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예산이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젊은 예술가를 동원한다는 현재의 상황인식을 탈피해야 한다. 또한, 당장의 달콤한 기획으로 중앙정부예산을 가져오기 위한 노력에 매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민간전문가, 예술가, 단체, 기획자들과의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대구시는 이미 한참이나 늦었지만, 중앙정부를 향한 키보드질을 멈추고 대구예술발전소의 원동력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깊은 고민을 시작하기 바란다. 대구예술발전소가 무늬만발전소가 아니라 청정대안예술에너지를 생산하는 제대로 된 발전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늦어버린 발전소의 재개관, 서두르기보다는 자생적인 문화예술생태계의 경이로움을 관찰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