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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7월06일 04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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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초록 일기
책 이야기

이영철(화가) grim-s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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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초록 일기. 41cm x 5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3년 작

책 이야기
나는 책에 대한 소유욕이 남다른 편이어서 늘 일반 서적보다 턱없이 비싸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미술전문 서적 때문에 애태운 적이 많았다. 그래서 전시회를 통해 작은 수입이라도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책부터 사 모았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사 모으다 보니 책 속으로의 여행을 통해 의식을 확장시킨 만족감 또한 적지 않았다. 대가의 명화 한 점 가격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요즈음이지만 눈 딱 감고 10만원 정도 만 투자하면 그 대가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이 수록된 화집을 가질 수 있으니, 사실 따지고 보면 책만큼 싼 것도 없다.

그러나 마냥 책이 좋을 수만은 없었던 것은, 필요할 때 언제든 내 서고를 빛내주고 있는 보물들이 이사할 때만 되면 느끼는 엄청난 부담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을 동원해서 한꺼번에 옮겨버리면 쉬울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되면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다시 분류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서 책만큼은 반드시 옮겨갈 곳 책장을 미리 정리한 후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직접 날라 곧바로 정리한다. 이 일은 책무게도 엄청나지만 바쁜 일정이 겹치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고행에 다름 아니다.

이때가 책을 많이 사고 낡은 것을 분류해 과감하게 버리지 못했던 것을 갈등하는 유일한 시기다. 그리고 생각한다. 만약 아주 급작스럽게 먼 곳으로 장기간 떠나야 하고, 전혀 책을 들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과연 마음속 깊이 안고 가야 할 진정한 나의 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늘 저들 속에 담긴 지식을 알고 모름의 문제를 넘어서게 하는 의문이다. 미련스럽게 붙들고 있는 저 많은 책 가운데 내 삶의 가치관을 형성시켜주고 크고 작은 추억도 함께 나눈 진정한 벗은 어느 책이었으며, 따라서 내 삶을 이끈 결정적인 열쇠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를 반성하게 한다.

마침내 나는 물욕과 소유욕으로 채워진 지난날의 책 사랑을 슬그머니 후회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엔가는 갑자기 여유가 생겨 허기진 듯 사들인 많은 책들...그래서 바삐 들춰보느라 햇빛 한번 겨우 보고 닫혔을 수많은 페이지가 떠오르고, 그 후 새로운 책들에게 밀려나 책장 어두운 곳에서 먼지만 켜켜이 쌓인 저들이 존재의미를 상실한 책은 그저 종이더미일 뿐이라는 아우성도 들린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 긴 시간과 돈, 정열을 바쳐가며 무엇을 모았다는 말인가? 인식의 촉수가 그 지점까지 뻗어 나갈 즈음이면 책무게까지 실린 진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인생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확연하게 존재시킨다고 굳게 믿어지는 것을 확장시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토록 열중해온 것들을 다 내다 버리고 나서도 남는 것이 진정한 자신의 본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돈과 명예, 지위와 권력 등 기득권의 가치들을 다 빼버리고도 바로 그 자리에 여전히 따뜻하고 소박한 인간이 남는다면, 정말 아름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무의미한 것과 다 내다 버리고 나서도 소중한 가치로 남는 삶이 따로 있다. 책은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슬그머니 내게 알려주었다.
 

이영철(화가) grim-s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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