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권력에 순종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국가권력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5일 저녁 6시, 새누리당 대구경북시도당 앞에서 만난 이아무개씨(52, 여)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씨는 올해 8월이면 4년 계약 만료로 해고되는 영어회화전문강사(영어강사) 526명 중 한 명이다.
이씨는 2009년 8월 경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이씨는 몽골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몽골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한 이씨는 2009년, 딸 아이의 학업 문제 때문에 한국행을 고민하게 됐다.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야 할 나이가 돼서 한국에 들어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려면 한국에서 직장이 필요했고, 마침 정부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어요”
인터넷으로만 관련 정보를 얻었던 이씨는 당시 MB정부가 실용영어회화 교육을 사교육 시장에서 공교육으로 흡수하려는 목적으로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를 신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4년 동안 한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했고, 정년도 62살까지 보장이 된다고 했어요. 교직원과 동일한 처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서 3차까지 시험을 봐서 통과했죠”
시험을 통과는 했지만,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 필요가 있었다.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하기 전 영어강사의 직무교육연수가 따로 열렸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4년 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명확해야 했어요. 한국에 돌아올지 말지, 다른 직업을 준비해야 할지 말지를 정해야 했으니까요. 연수받는 사람들 중에 가장 먼저 물어봤어요. 4년 후에는 어떻게 되는거냐고. 그랬더니 교육청 관계자들은 ‘근무경력 보장될거다’, ‘다른 학교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거다’고 이야기 했어요.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믿었다. 이씨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영어강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매년 업무편람 내용이 수정되었는데, 매번 수정 방향이 이씨에게 불리하게 바뀌었다.
“채용할 때는 공고하지도 않았던 내용이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작년에 교육부가 4년을 더 늘려주겠다고 했다가 법제처가 반대해서 안됐다고 했어요. 법제처에 왜 반대하느냐고 물었더니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돼서 그런다고 했는데, 결국 내놓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건가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공공운수노조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 경북지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에서 이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영어강사는 모두 60여명이다. 2009년 경북에서만 274명이 영어강사로 고용됐지만 4년 동안 계약이 해지되거나 제도의 허점을 알고 그만둔 이들이 태반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60여명은 마지막까지 정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