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아닌 노동자’ 건설노동자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일본어인 ‘노가다’의 뜻을 국어사전은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과 ‘막일’을 잘못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건설노동자를 낮춰 부르는 것이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누가 그토록 여러 번 그 도시를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브레히트의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중

멀리 역사 속 건축물을 찾지 않더라도, 주택이며 아파트며 빌딩 따위에는 건설노동자의 땀이 녹아 있다. 그럼에도 하루에 2명씩 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했던 건설노동자가 이제 일터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섰다. 회사의 이익이나 안전이 아닌, 노동자가 안전하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건설노조 현장위원회 사무실 첫 개소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동자 대표 선출…노동자 안전 직접 통제

6월 29일 오후 4시 반. 대구 금호지구 LH아파트 신축현장 현장관리소 뒤편 컨테이너 앞마당에 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금호지구위원회 사무실 개소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4일간 총파업을 벌이며 노동조건 향상을 꾀했던 건설노조에도 지구위원회 사무실을 개소하는 일은 처음이다. 파업을 거치면서 노조는 조합원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지구마다 현장위원회가 꾸려져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성과로 금호지구위원회에 사무실을 얻어낸 것.

특히, 금호지구위원회는 사무실만 얻어낸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법률상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했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안보건위)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산안보건위 노동자 대표도 직접 선출했다. 안전장구도 회사가 주면 주는 대로 받던 관행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줄 더 좋은 제품을 요구했다. 급기야 노동자들도 건설 현장에서 처음 본 방역도 시행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LH금호지구위원회 김진용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대표

사무실 개소식에서 김진용 금호지구 산안보건위 노동자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금호지구위원회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김진용 대표는 “처음에는 (대표) 못 한다고 뺐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겁이 났다”면서도 “우리가 근로기준법 50%도 못 챙겨 먹는데 옳은 일이라면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대표직을 맡게 됐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막상 대표직을 맡고 나자 그는 산안보건위 활동에 온 신경을 다 쏟게 됐다. 최근 스마트폰을 샀다는 김 대표는 틈만 나면 위험한 현장 사진을 찍고, 산안보건위 법률을 검색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금호지구위원회에는 약 150명의 노동자가 일하는데, 그 가운데 형틀 목수 100여명은 모두 조합원이다. 조합원이 아니면 현장에서 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업체에서 도급을 받아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먹는 이들이 사라졌다. 고용권을 노조가 가지다 보니 자연스레 산안보건위 활동도 가능하게 됐다.

“산안보건위를 잘 몰랐다. 업체 안전관리자가 있어도 노동자 안전에 신경을 안 썼다. 산안보건위 활동 시작하면서 안전장비 지급기준도 바꾸고, 일지도 직접 쓰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우리 동지가 한 사람이라도 아파서 못 나오면 우리가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 대표의 말에서 노동자의 자주성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측의 노동자 길들이기는 NO, 우리가 직접 선택한다"

산안보건위는 김진용 대표를 포함한 노동자 위원 4명과 사용자 위원 4명으로 구성됐다. 정기 회의를 한 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사용자 위원에게 기대는 마음 따위는 애초에 없다. 산안보건위를 꾸리기 전 사용자 측은 노동자 안전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에 하나씩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보통 1만 8천~2만원의 안전화를 받았다. 이걸 신고 물이 젖은 바닥을 돌아다니면 물이 흥건하게 젖어 들어온다. 본드가 약해서 금방 떨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메이커 제품의 4만원대 안전화를 지급하라고 했어요. 지금은 노동자가 들어와 호수만 적어주면 바로 지급하고 있어요. 안전벨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선정하겠다고 하니까 사측이 샘플 3개만 가지고 왔어요. 2주 전에 카다로그를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샘플만 가지고 온 거죠. 화를 냈더니 인터넷으로 출력해서 가지고 오더라. 이 나이에 바클이 어디 있고, 후크가 어디 있는지 보이겠느냐. 노동자 우롱하냐고 쳐다도 안 보고 나왔어요. 그렇게 몇 번 요구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안전벨트를 선택하게 됐어요. 사측이 노동자 길들이려고 하면 그대로 하지 않아요. 우리 동지들 안전과 관련된 것인데 우리가 선택해야죠”

안전장비 지급과 관한 일화를 들려달라는 말에 김 대표는 사측과 대립한 과정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대답했다. 세세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그의 말에 빠지지 않는 한 가지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노동자가 직접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산안보건위 활동을 하면서 김진용 대표는 뿌듯함과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LH금호지구위원회 사무실

유토피아로만 여겨지던 현장위원회 활동, 조합원 자발적으로 배움 찾아

“얼마 전에 우리가 고용권을 잡기 전까지 현장을 우리가 통제하는 것을 유토피아로 생각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건설 현장에서 가능할 거로 생각을 못 했다. 20~30년이 지나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월 총파업을 앞두고 준법투쟁을 시작하면서 (현장을 노동자가 통제하는 것이) 현실에서 보이는 거에요. 한동안 노조 활동이 식상해 멀어졌었는데, 다시 뜨거운 마음이 끌어 오르더라구요.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 건설노조에 가입해 2006년 총파업을 겪으며 노조활동이 관성화 됐다는 생각이 들때 쯤, 그에게 지구위원회와 산안보건위 활동은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그가 자발적으로 움직였듯이 다른 동료도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문업체 상태가 열악해 안전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 그래서 원청회사에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노동자 24명이 모여 자발적으로 공부하자는 모임을 지난 23일 처음 가졌다. 김진용 대표는 이렇게 모인 이들에 대해 “누가 강제하거나 추천해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였다. 내가 배워 현장에 접목하고 싶다는 거다. 노동자 속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됐다. 예전에 노조에서 교육하면 열성조합원들 차출해 데리고 갔다. 그러고도 가면 잠만 잤다. 지금은 노트 필기하면서 하나라도 더 빼내서 현장에서 활용하려고 애를 쓴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예전에 상근자들이 다녀가면 ‘왔다 갔구나’하는 반응이었는데, 노동자 속에서 움직이니까 동료들이 우리가 (노조 활동) 하는 거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한다. 자랑 좀 하면, 우리가 노동조합 정신에 걸맞게 행동하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도 배우려고 하고, 같이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노동조합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었다. 그동안의 꾸준한 지구위원회 활동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김진용 대표는 “지구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면 이를 조정한다. 얼마 전에도 팀장과 팀원 간 불화가 있었다. 팀장이 전문업체 소장과 같이 다니기도 하고…그래서 지구위원회에서 팀장직을 박탈시켰다. 그러고 나니 아예 현장에서 나가더라. 동지들과 함께 일하는 곳에서 노동조합 정신과 어긋나는 이들과 갈등을 풀어 가는 것도 지구위원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지구위원회와 산안보건위 활동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렇지만 첫발을 디딜것이라고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기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금호지구위원회의 활동이 다른 건설 현장에서도 퍼져 나가길 가장 바라는 사람이 김진용 대표이기도 하다.

김진용 대표는 “우리가 시작을 잘해야 한다. 산안보건위, 현장위 활동한 조합원들이 다른 현장에 가더라도 노동자가 현장통제권을 쥘 수 있도록 금호지구위원회가 롤모델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기를 머금던 김 대표의 마지막 이야기는 노동자 의식과 연대의 참뜻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했다.

“우리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어요. 현장의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 우리가 직접 지적하며 바꾸고, 내 동지들 한 사람이라도 덜 다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집에서는 내가 노조 활동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그는 건설현장에서 도급팀장으로 일하다 2002년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도급 일을 그만뒀다) 노조에 안 들어왔으면 이렇게 좋은 동지들과 이렇게 즐겁게 일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