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유명하다. 예수께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신 이야기다. 오늘 복음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와 귀신이다. 등장횟수가 예수는 16번, 귀신은 12번 나온다. 본문을 풀기 전에 해석원리 하나를 말하겠다.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 문자적인 표현 뒤에는 은유적인 뜻이 담겨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은유 뒤에 있는 원뜻을 찾아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
오늘 복음이야기에는 어떤 은유가 숨어 있나 한 단서가 있다. 예수가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귀신에게 이름을 묻는 곳은 여기뿐이다. 즉, 귀신이름을 알리고 싶은 의도가 있다는 거다. 귀신은 '군대'라고 답했다. 여기 군대는 레기온이라고, 육천명의 병력을 거느린 로마군대 단위이다. 이 미친 사람에게는 호전적인 로마군대와 같은 귀신들이 무수히 달라붙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재작년 봄(2011년 5월)에 왜관 캠프캐롤 미군부대에서 근무한 퇴역군인이 자신이 근무할 때인 1978년 늦봄, 부대 안에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양심고백한 일이 알려졌다. 그때 대구경북 시민단체들이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책위'를 구성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를 뜨겁게 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인, 2011년 5월 29일,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주민설명회를 했는데, 나는 "미군기지 현황과 미군주둔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그날 서두로 오늘 복음이야기를 했다.
복음저자가 귀신이름을 레기온이라는 로마주둔군으로 지칭한 것은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지배 현실을 의식한 것이라고 했다. 복음서에 유난히 귀신들린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로마군대의 식민지지배에서 오는 억압, 백성에 대한 온갖 해코지가 낳은 결과라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복음서에 나오는 로마제국 지배하에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온통 주한미군 군대귀신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헤매는 현실이라고, 이 군대귀신을 우리도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한 후, 건너는 도중에 큰 풍랑을 겪지만, 뚫고 건너서 갈릴리호수 맞은편에 있는 거라사 지방에 닿았고, 뭍에 내렸다. 매우 강한 의지로 이 동네에 왔다. 실상 예수는 유대관습하에서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곳에 왔다. 어떤 점이?
첫째는 이방 땅이다. 거라사는 이방의 데가볼리(열 개의 도시) 중 한 도시이다. 군대귀신 추방이야기가 은유적이라는 데는 지명도 한몫한다. 예수가 당도한 곳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거라사', 마태복음은 '가다라' 라고 했다. 그런데 두 도시 모두 갈릴리 호수로부터 각각 55킬로, 10킬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돼지떼가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와 배치된다. 하지만 복음저자가 지리적 조건과 맞지 않는 곳을 지명으로 쓴 까닭은 중요하지 않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하나 사실적 묘사보다는 전체 의미파악에 있다고 봤다. 요점은 예수께서 이방 땅에 들어갔다는 거다.
둘째는 무덤이 있다. 시신은 가장 부정한 사물인데, 그 시신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이니 얼마나 부정하겠는가.
셋째는 돼지떼가 있다. 돼지는 가장 부정한 짐승이다. 그런데 그런 돼지가 떼로 있으니 부정 중 상부정이다.
넷째는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 귀신들린 사람은 악한 영이 머물러 있으므로 역시 매우 부정한 사람이다.
부정한 것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네 가지가 겹쳐 있다. 유대인 처지에서는 아예 상종할 수 없는,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배제된 땅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떤 곳인지를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일부러 그곳으로 갔다.
예수가 뭍에 내리자,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만났다. 이 사람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를 보자.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
복음저자는 이 귀신들린 사람이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배제당한 상태를 설명한다. 옷과 집에서는 격리됐고, 되레 전혀 친숙하지 않은 무덤에 자기 몸을 의탁한다고. 게다가 이 사람은 귀신에게 완전히 포획돼서 자기 몸이지만 전혀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실체는 귀신뿐만 아니라 독재파쇼정치에도 있다.
한겨레신문 '길을 찾아서'에 연재 중인, 동일방직 노조지도자 이총각의 회고 중에, 조합원들이 노조탄압에 맞서서 이렇게 외친다. "여덟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주면 그만이지 내 몸 가지고 왜 내 맘대로 못해요" 그렇다. 내 몸 가지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야 옳은 세상이다. 그것을 억압하는 세력이 누구든, 귀신이든, 독재파쇼든 우리는 뚫고 나가야 한다.
오늘날 권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자본의 소비마케팅에 세뇌된 현대인들은 자기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에 매수된 매체선전이 내 정신세계에 침입해서 '본디 나' 대신에 저들이 원하는 인간상에 호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응시하고,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예수는 이미 이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추방했다. 그러자 귀신이 큰 소리로 호소한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귀신을 말을 검증해보자. 예수와 귀신은 정말 상관이 없는가? 오늘날도 악한 권력은 정의활동을 하는 종교인에게 똑같이 말한다. 2013년 3월, 한겨레신문 보도에, 악의 축으로 떠오른 국정원의 원세훈이 이런 말을 했다. "일부종교단체가 종교본연의 모습을 벗어나 정치활동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페북에 이런 소감을 남겼다. "평생을 교회울타리에서 살아온 나도 그들이 말하는 종교본연의 모습이 뭔지 잘 모르겠다."라고.
골로새서 1:16 말씀에 따르면, "만물이 그분(예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즉 귀신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의 뜻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귀신으로 대변되는 거짓체제는 당장 예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뜻밖의 상황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귀신들이 들어간 돼지떼들이 비탈을 내달아 호수에 빠져서 죽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현장에 나와서 일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런데 거라사 주민들은 예수께 마을을 떠나달라고 간청한다.
이건 또 뭔가? 마을사람에게는 오랜 세월 가족과 마을을 심란하게 하고 고통에 빠뜨린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긍휼은 안중에 없었다. 귀신이 들린 것은 할 수 없는 일, 남은 사람이나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현실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런 체념 섞인 결정은 매우 왜곡되고 비뚤어진 현실에 대해서조차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이 멀쩡하게 되었음에도 한 사람이 온전하게 된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몰살당한 돼지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더 크게 마음을 차지해 버렸고,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예수께 마을을 떠나달라고 요청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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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대학생 30여명은 21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차도를 통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출처=유튜브 민중의소리 영상 갈무리] | | |
오늘날이라고 다를쏘냐. 권력이 자행하는 온갖 비민주탈법불법범죄가 연일 터져도 사람들은 그저 무덤덤하다. 그저 내 한 사람, 내 가족이 권력의 악행에서 무사하고, 자기 실속이나 차리면서, 권력의 악행에 항의하여 민주를 세우는 일은 남들이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얌체 심보가 대세일 때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그러는 만큼 남들도 똑같이 그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그런 싸가지 없는 마을이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귀신이 나간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예수는 그 사람을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네게 하신 일을 다 이야기하여라", "그 사람이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낱낱이 온 읍내에 알렸다"고 했다.
귀신이 들려서 오랫동안 집과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이 사람이 온전한 몸으로 귀가했을 때, 그 부모의 기쁨은 어땠을까. 그 공동체는 결코 다시는 귀신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예수의 해방을 몸으로, 입으로 확실히 실천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이 사람으로 온전히 사는 세상이 되도록 할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하는 만큼 귀신은 평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