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버지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풍경 속에서 쭈뼛쭈뼛 서 있는 무리에 시선이 멈추었다.
‘결함 있는 자동차로 어떻게 운전을 하란 말인가’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라면 아버지라 할 수 있고, 오빠, 삼촌이라면 그리 보일 수 있는 연배의 대구 개인택시조합이었다. 집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구호도 정확하지 않다. 그들의 소속도 잘 기억나지 않아 어렴풋이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기억을 잘 못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눈길을 바닥에 박고, 마치 끌려나온 듯한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눈치가 보여(심지어 ‘쳐다보면 그들이 민망해 하려나’라는 생각도 들어서) 나는 제대로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 어떤 구호를 내 걸고 있었는지 그저 곁눈질로 봐야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표정과 태도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여러분 집회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 항상 명심하시고, 조용히, 조용히 언성 높이지 말고 하시다 가세요…….’
선생님이 잘못한 아이들을 꾸중한 뒤 잘 타이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때 ‘왜 저 사람들이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집회를 하는데 저렇게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는가’와 ‘진정성’이라는 문구와 함께 질라라비 6월 모임에서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험도 많이 없었고, 평소에 진지하게 생각도 해본 적도 없었다. 집회가 경찰, 법에 익숙해진다는 것, 집회문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날의 이야기는 마냥 어렵게만 다가왔다. 사실 모임 내내 떠올랐던 생각은 집회를 나갔을 때 나와 친구들의 태도였다.
2011년,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 여름 경북대학교에서 반값등록금 투쟁이 있었다. 학교 선배들의 독려에 친구들과 함께 그 집회에 참가했다. 내 생각보다 큰 규모였는지 언론사에서 촬영팀까지 와서 취재하고 있었다. 그때, 소위 얼굴 ‘팔리면’ 안 된다며 바닥에만 시선을 두고, 카메라가 보이면 괜히 고개를 돌리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걱정을 했던 건, ‘아빠가 보면 안 되는데’였다.
물론 반값등록금. 대학생인 내가 목소리 내지 않으면 누가 내겠나 싶으면서도, 괜히 언론매체에 신상이 드러나면 안 될 것 같고, 혹시나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새누리당 앞에서 시위하던 택시기사 아저씨들도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집회가 주변 사람들에게 늘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조용히…, 그래 굳이 법을 어기면서, 벌금 물면서 해야 하나? 나만 조용히 있으면 일하는 데 지장 생길 일도 없고, 내 위치가 흔들릴 짓을 왜 사서 해’라는 소극적인 생각이었다.
바로 당장 내 위치만을 생각하면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규율과 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진정성 없이, 나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는 것일 테다. 어쩌면 법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자신에게 알맞은 핑곗거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법은 시위를 진압하고 제약하는 데 있어 쉽게 사용되는 것들을 말한다. 모든 법을 부정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런 소극적인 모습을 벗어나는 방법은 ‘진정성’이라는 무기가 그 해답인 것 같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지, 내가 이것을 나의 안위 때문에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이전에,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세가 아닐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비정규직이 일반화 된 오늘날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을 과제로 활동하는 단체다. 대구모임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회원과 불안정노동철폐에 관심있는 대구지역 노동자, 시민이 모여 매월 첫번째 월요일에 기관지 <질라라비> 읽기 모임을 진행한다. 7월 모임은 1일(월) 저녁 7시 30분, 대구 봉산동에 위치한 민중행동 교육관에서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단시간일자리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이들은 대구모임 손소희(011-9579-6207)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