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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6월22일 11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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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
총체적인 시각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심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문사회과학 강의

조덕연(자유기고가) deg1223@hanmail.net

오세철 교수는 사회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많은 고정관념이 있다고 한다. 이론과 실천 또는 순수와 응용이라는 틀로 학문을 구분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이며 오히려 진정한 이론을 안 가르쳤기 때문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즉, 가장 이론적일수록 가장 실천적이며 이론이 부족하면 이론을 알아야 하고 안다면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 그 억압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떤 구조 속에서 작동되는지도 모르고 그저 드러나는 현상에만 집착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향은 이론을 무시하고 실천적 함의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적 실천만을 주장하는 결과만을 낳고 있다.

하지만 이론과 실천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 책에 그대로 녹아있고 이를 통해서 많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흔히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학을 연상하고 사회과학이 무슨 과학이냐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사회과학에 대한 무지이며 이해의 부족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에서는 분과 학문으로 쪼개진 사회과학이 아닌 총체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과 국가자본주의(소련, 중국,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계급의식 획득과 더불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통한 계급무의식과 혁명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즉, 대중은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의 산물이며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더 깊은 구조에 대한 이론과 실천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객체이면서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계급무의식의 문제이며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만남의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

특히 저자는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결합을 시도한 빌헬름 라이히에 주목한다. 그래서 모든 조직의 지도자필수 과목으로 정신분석학을 강조하는데 정신분석학의 실천적 함의를 통해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 오세철 교수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21세기 자본주의에서는 인간 정신건강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조직의 책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 내에 상담기능을 강화하는 부서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모든 조직의 지도자가 상담가가 되어야 한다. 상담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이 기본이 된다. 그리고 정신분석학 이론 중에 욕구불만공격성 이론이 있다. 욕구불만이 커지면 공격성이 커진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욕구불만 해소장치가 필요한데 이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정신분석학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욕구불만 해소장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근원적 욕구불만의 원천을 해결하는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욕구불만의 원천은 결국 구조적(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인 문제이며 정신분석학은 인간해방의 학문이기 때문에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각을 기르는데 필수적이다. 결국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으로부터 해방시켜 모든 인간의 문제를 보는 이론으로 만들어야 한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은 칼 융이 대표적으로 활동한 ‘신프로이트학파’가 있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한다. 생물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도 강조하는데 사회적 요인 가운데도 미시적인 가족이나 인간관계 같은 요인을 강조한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사회적 요인의 거시적 측면을 더 중요하게 본다. 다르게 얘기한다면 신프로이트와 신맑시즘을 결합시킨 학파이다. 프로이트와 맑스의 공통점은 억압이라는 구조이다. 프로이트는 개인 억압을 얘기하는데 그런데 왜 모든 개개인이 억압을 하느냐 이것은 개인의 억압을 정당화시킨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가부장적 가족제도이고 이 가족체제를 정당화시킨 것이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이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미시를 거시로 극복한 발전도 있었지만 유토피아적 관념과 소부르주아적 실천의 한계와 정신분석학의 연장선상과는 거리가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3세대 빌헬름 라이히는 정신분석학자이다. 라이히는 에너지 이론을 보다 더 한 차원 끌어올린 에너지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발견한 에너지는 오르곤 에너지인데 사상의 발전을 통해 에너지 존재를 발견한다. 초창기에는 어떤 문제이건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나오는데 이것이 초창기 형이상학의 문제이다. 여기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무의식에 주목하는데 바로 정신분석학이다. 그 다음이 역사이건 사회이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다시 인간에 주목하는데 더 깊은 생물학적 본질, DNA에 주목한다. 생물학적 문제를 더 따지고 들어가면 모든 살아있는 체계의 문제로 가는데 바로 우주적 문제이다. 그랬을 때 인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시스템 속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오르곤 에너지이다. 동양의 ‘기(氣)’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오르곤 에너지가 차단되었을 때 인간의 경우는 암이 되고 자연계는 생태계 파괴가 일어난다. 오르곤 에너지는 한쪽으로는 성, 한쪽으로는 노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노동, 경제와 관련해서는 맑스가 이미 이론을 집대성 했다고 봤고 성, 가족, 종교,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분석하지 않으면 노동과 성이 어떻게 결합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성 이론의 집대성을 자기의 몫으로 본 것이다.

이것을 해명한 책이 ‘파시즘의 대중심리’이다. 분명 1919년 독일은 객관적 조건들로 봤을 때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혁명이 실패하고 오히려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맑스주의만으로는 명쾌한 설명을 할 수 없고 그 당시 독일의 가족, 교육, 종교를 통해 독일 노동자를 철저하게 분석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성격에는 계급이 없다.’고 한다. 노동자건 중산층이건 딱히 계급만으로는 구분되지 않고 자본가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파시스트가 있다고 한다. 이 파시스트에는 공격성과 굴종성이라는 양면성도 지니고 있다. 바로 대중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했다고 끝난 게 아니라 혁명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혁명의 주체들부터 진정한 인간들로 바뀌어져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억압되었던 것을 깨뜨려야 하는데 이것이 라이히가 강조한 ‘성 정치’ 운동이다.

‘비판적 교양인을 위한 오세철 강의’ 1부에서는 이념/이론/방법론의 총체적 구조로 접근해야 역사, 사회, 인간의 총체적 관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고 이것이 사회과학의 임무라고 한다. 이때 이념은 역사/사회/인간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이다. 이념이 전제되어 있지 않는 사회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가치중립적이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결국 보수주의이다. 왜냐하면 어떤 입장을 은폐하고 자기들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사/사회는 총체적으로 관련 맺고 변동하기 때문이다. 이념이 전제됐을 때 이론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이론은 이념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다음 이념과 이론을 다 포괄하는 방법론이다. 방법론은 방법과 다르며 방법론은 진리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그런데 흔히들 수학이나 통계학 등의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얘기하는데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이념과 방법론을 배제하고 이론만 떠들고 있는 현실이다.

사회과학의 맹점은 분과사회과학으로 쪼개져있고 역사적 관점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총체적 관점을 회복하고 역사적 관점을 회복해야 한다. 총체적 관점을 회복하기 위해서 연계 학문을 만들거나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의 공통의 언어는 ‘구조’이다. 구조는 총체적이고 탈바꿈이며 자아규제이다. 탈바꿈에는 구조의 굳어진 면만 보고 구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구조적 결정론이 있고, 변혁을 일구어 나가는 능동적 인간을 전제로 굳어진 구조만 보지 않고 연속적으로 끊어보는 발생적 구조주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역설적으로 계란으로 바위도 깰 수 있다. 자아규제는 구조는 자기 스스로의 본능, 리듬을 가지고 있고 다른 구조와 끊임없이 경계 지으려고 한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공통의 언어는 행동과 의식이다. 행동은 실천 속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런데 행동은 드러나는 현상이며 행동 뒤에 숨겨진 것이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갈등과 모순이다. 갈등은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끼리 쟁투로써 드러나는 현상이다. 모순은 법칙과 법칙 사이의 대립인 본질이다.

사회과학에서 방법론은 첫 번째, 형식 논리로부터 변증 논리로의 발전이다. 사회는 주체와 객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식 논리(자연과학의 방법론)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구분하고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변증 논리(사회과학의 방법론)는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계속 운동을 하고 있다고 보고 진리에 다가간다. 두 번째는 자연과학은 실증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실증주의는 오감을 통해서 사물에 다가가서 과학적 진술을 얻어내고 진술 사이의 법칙적 관계를 구명한다. 인문학은 법칙의 배후에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해석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회과학은 의미를 해석하고 비판하는 비판적인 방법론에 기반을 둔다. 비판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전제하는데 이는 실천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이것이 사회과학의 본질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지식의 원천을 이성이라고 보는 합리주의와 지식의 원천을 감각이라고 보는 경험주의의 순환적 과정을 통해서 법칙을 찾아낸다. 인문학은 지식의 원천을 직관이라고 보는 신비주의에 기반한다. 사회과학은 세 가지의 통합이다. 지식의 변동에 대해서도 자연과학은 진화론적 변동관이다. 어떤 지식이 있다면 그 후에는 보완된 형태의 지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반면, 지식의 변동은 단절적이라는 사회과학의 입장인 혁명적 변동관은 그전까지 있었던 체계가 자체의 모순 때문에 구조적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가들이 나오면서 다른 체계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 다음 변동관은 각자 개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학이라는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으로써 인문학의 입장이다. 결국 방법론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념과 방법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회과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검증만능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에 통계만능주의이다. 검증만능주의는 귀납만 하고 연역은 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구대상과 직접적인 경험과 대면을 통하지 않고 연구하고 있는 점이다. 세 번째는 윤리적인 문제이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스폰서, 문지기(연구자와 스폰서 사이에 끼어드는 세력), 시민이 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권력 불평등이 존재하고 그런 관계속에서 연구결과가 나오니까 시민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 네 번째는 한 시점, 한 공간, 한 연구자, 하나의 방법으로 너무 쉽게 연구한다는 것이다. 한 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연구해야하며 한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수의 공간을 연구하는 비교연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수의 연구자와 복수의 방법론을 구성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양적방법론과 질적방법론이 있는데 양적방법론에는 연역과 귀납이 있고 연역을 위해서 수학이 나왔고 검증을 위해서 실험을 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를 실험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혁명을 얘기하고 개별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하는 것은 심리학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심리학 실험은 방법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즉, 양적방법론은 문제가 있다. 인간의 목적의식을 이해하는 질적방법론에도 연역과 귀납이 존재한다. 연역은 이론 표본 조사를 통해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을 섭렵하면서 자기 나름의 독창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검증을 위해서는 참여관찰이 있다.

사회과학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거시의 축소판인 미시를 제대로 분석해야지만 거시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인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심리학부터 시작하지만 어떤 사회과학의 분과이론을 다루든지 이념/이론/방법론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분과사회과학에 들어가던지 그 안에는 현상을 다루는 이론과 본질을 다루는 이론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 대립의 문제는 결국 이념의 대립이다. 대체로 현상을 다루는 이론은 보수주의이고 자연과학이 이에 해당하고 이것을 인간을 단위로 깨뜨리려는 것이 개인주의 인문학이며 큰 것 전체를 뒤집어엎으려는 것이 사회과학이다.

심리학은 크게 철학적 심리학, 과학적 심리학, 초심리학이 있다. 이 책에서는 과학적 심리학 중에서도 정신분석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서양 사상의 발전 과정은 감성과 이성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그런데 19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정신분석학의 시기는 낭만주의라는 감성으로부터 합리주의/과학주의로의 전환의 시기였다. 즉, 거대한 서양 사상의 변증법적 변화 과정의 공백기에 나타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성과 감성 양면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감성의 기반은 정신분석학자와 환자와의 만남 그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며 이성의 기반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수용하여 성 에너지 법칙을 말한다. 정신분석학의 이념(인간관)은 현실 밑에서부터 현실로 올라오는 것이다. 현실 밑은 정신질환의 늪이고 여기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즉, 어렸을 때부터 (성)억압으로 희생이 되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그 사람이 현실에 잘 살아가게 하는 세속적 인간관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은 ‘성 본능의 억압의 구조’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인간은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한다. 즉 물 위의 빙산은 일부이지만 물 밑에 있는 빙산은 엄청난 크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걸 해명하지 않으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분석학은 이성과 감성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는 모순/갈등 이론이다. 그래서 인간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며 여기서 성격은 인간의 총체성이다. 프로이트는 성격이론을 통해 성격의 구조와 형성, 변화, 재생산을 설명한다. 이드(본능), 에고(자아), 슈퍼에고(초자아) 이 세 개는 각각의 법칙을 가지고 대립한다. 본능은 쾌락의 원칙, 자아는 현실의 원칙(자기 자신을 잘 보존하는 원칙), 초자아는 양면성이 있는데 자아가 지향하려는 이상을 향해서 나가는 자아 이상과 자아가 잘못되어 나가는 걸 막으려는 양심이다. 그리고 시간의 대립도 있다. 이드는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자아는 현재, 초자아는 부모의 초자아가 자식들에게 전수되기 때문에 과거이다. 즉, 현재와 과거의 대립 또는 과거끼리의 대립으로 성격구조를 설명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성격 형성은 네 가지의 시기를 가진다. 첫 번째 시기는 구강성격 단계이다. 이 시기는 태어나서 한 살까지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의 욕구는 입에 있다. 이 욕구를 어느 정도로 만족시키느냐에 의해서 성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너무 차단해도 문제가 되고 지나치게 만족시켜도 문제가 된다. 즉 정신분석학의 성격이론은 중용론이다. 두 번째 시기는 욕구가 항문에 있는 성격 형성 시기로써 두 살까지이다. 세 번째 시기는 고환 성격 형성 시기로써 서너 살 때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머니를 차지하려는 경쟁자로 본다. 이때 아들은 아버지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닮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동일시의 욕구이다. 그럴 때 아버지가 잘 이해를 못해서 구박하면 동일시의 욕구가 깨지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잘못된다. 이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한다. 딸의 경우는 어머니와 닮으려는 욕구가 있는데 이것이 잘못되었을 때 아버지와 딸 사이가 잘못되는 데 이것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처럼 태어나서 네다섯 살 까지가 주로 성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사춘기부터 죽을 때까지이다. 이때는 성기적 대상에 대한 욕구이다.

이 책에서는 빌헬름 라이히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정신분석학을 정신의학에서 해방시켜 필수과목으로 모두(특히 조직의 지도자)에게 권하고 있다.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저자의 모든 사상과 이론을 섭렵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저자의 의견에 100% 동의를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을 통해 모든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민과 실천의 계기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조덕연(자유기고가) deg12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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