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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6월22일 10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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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24) 팔공산
세월 흘러도 변함없는 대구의 명산, 보물의 창고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외지인들은 “대구” 하면 섬유도시(17.8%), 사과(17.2%), 보수성(15.9%), 덥다(12.3%), 팔공산(6.4%)을 떠올린다고 한다(영남일보 2011년 5월 3일). 하지만 섬유와 사과는 이제 대구의 ‘상징’이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보수성과 더위를 자랑거리라고 할 수는 없으니, 팔공산밖에 남는 게 없다. 그렇다면, 외지인들에게 갓바위와 동화사를 보유한 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팔공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팔공산 동봉 풍경

팔공산은 대구의 북쪽머리 산이다. 남쪽머리 산은 비슬산이다. 개교한 지 105년이 넘어 대구경북 지역 현대교육사의 산 증인 역할을 하는 계성고등학교의 교가도 이를 증명한다. ‘앞에 섰는 건 비슬산이요, 뒤에는 팔공산 둘렀다.’

팔공산은 앉은 면적이 122㎢, 능선의 길이가 20km나 된다. 그래서 둘레에 ‘여덟[八]’ ‘고을[公]’이 있다는 데 착안, 산 이름이 ‘팔공’산으로 정해졌다고 믿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팔공산이라는 이름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공산 둘레에는 해안(解顔, 둔산동 解顔초등학교), 하양(경산시 河陽읍), 신녕(영천시 新寧면), 팔거(八居, 북구 칠곡 八居산성), 부계(군위군 缶溪면) 등 다섯 고을[縣]만 있었기 때문이다. 

 
▲신숭겸유적지 입구

그런가 하면, 본디 ‘공산’이었는데 동수대전 이후 ‘팔’이 붙어 ‘팔공산’으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동수대전에서 순절한 신숭겸 등 여덟[八] 장군을 기려 ‘팔공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이 전투에서 여덟 장군이 순절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대구은행 사외보 <향토와 문화 제1권>에 ‘팔공산의 지명 유래’를 쓴 문경현 전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팔’공산 이름이 “사대주의 모화(慕華)사상가들이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중국 안휘성 봉대현 동남쪽에 있는 팔공산에서 북조 전진왕 부견과 남조 동진 효무제 사이에 대전투가 벌어졌을 때 부견이 참패를 했는데, 왕건이 견훤에게 처참하게 진 것을 이에 비견하여 산 이름을 그렇게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공산에 본 이름 ‘공산’을 찾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팔공산' 대신 본래 이름 '공산'으로 부르자

공산은 신라 5악의 하나였다. 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 북악(태백산), 중악(공산)이 바로 그것. 신라는 이 다섯 산의 산신에게 공식 제사를 지냈으니, 이 산(山)들을 신령(靈)스러운 영산(靈山)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특히 공산(公山)을 국토의 중심에 있는 가장 신령스런 산으로 숭배하였으므로, 아버지처럼 여겨 부악(父岳)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대구사람들은 팔공산을 진산(鎭山)으로 여겼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큰 산이 자신들을 진호(鎭護)해준다고 믿고 그 산을 신성시했는데, 대구에서는 팔공산이 바로 그 진산이었던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 노을
 

공산 등산로의 대표는 동화사에서 염불암을 거쳐 동봉과 비로봉으로 가는 길이다. 영천 은해사에서 오르는 길, 갓바위를 거쳐 능선을 일주하며 동봉에 이르는 길, 부인사에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 그리고 가산산성을 거쳐, 또 수태골을 타고, 케이블카 아래로 등등 숱한 길이 있지만, 역시 대표격 등산로는 동화사에서 염불암을 거치는 바로 그 길이다. 왜냐하면, 공산에 온 이상 동화사를 둘러보지 않고 하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팔공산 동화사 염불암 전경

동화사는 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지휘했던 곳이다. 그래서 사명대사의 진영(眞影)도 보관되어 있다. 또, 국가 지정 ‘보물’도 많다. 봉황문 앞 절벽의 마애불좌상,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 금당암 뜰의 3층석탑, 당간지주와 부도, 비로암 3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은 신라의 보물이고, 대웅전, 아미타회상도, 사명대사 진영,  보조국사 지눌 진영 등은 조선 시대가 남긴 보물이다. 예술성은 없지만, 세계 최대의 불상이라는 ‘상품성’으로 관광객 유치에는 금메달 몫을 하는 통일대불도 동화사의 ‘물건’이다.

▲팔공산 파계사 전경

팔공산에는 동화사 말고도 고찰이 많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절이 파계사이다. 동화사에서 아주 가깝다. 이 절은 중요민속자료 220호인 영조대왕 도포가 발견된 곳으로 조선 후기 왕실(王室)의 소원(願)을 빌어주는 불당(堂)― 원당(願堂) 사찰이었다. 1751년에 영조가 우의정 이의현을 파견하여 지은, 영(永)조를 위해 기(祈)도하는 기영각(祈永閣/문화재자료 11호)이라는 부속건물이 있을 정도이다. 그 외에도 보물 992호인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고, 영원(현응)스님 부도를 지나 한참 가파른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부속암자 성전암에는 영조가 11세 때 쓴 慈應殿(자응전)이란 편액도 있다. 

동화사와 파계사 중간 지점에 있는 부인사도 가볼 만한 곳이다. 이 절은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가 1232년(고종 19) 몽고의 2차 침입 때 불에 타 없어져 버린 곳으로 유명하다. 또, 선덕여왕의 초상을 모시는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지금도 남아 있고,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에 선덕여왕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아마도 신라 당대에는 선덕여왕의 원당이 아니었을까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건물들이 전란 중에 모두 방화되어버린 탓에 하나같이 새로 지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예스러운 맛을 뽐내지는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팔공산 송림사 전탑
팔공산에서 가볼 만한 명소로는 송림사도 있다. 이 사찰에는 절 자체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알려진 5층전탑이 있다. 보물 제189호. 그리고 대웅전에는 문화재적 가치는 별로 뛰어나지 못해도 국내에서 가장 큰 목조(木造) 불상인 삼존 불상이 모셔져 있고, 편액도 숙종의 어필(御筆)로 추정되어 호기심을 끌고 있다.

송림사의 맞은편 산길을 30분가량 올라가면 도덕암에 닿는다. 이곳도 한번은 가볼 만하다. 팔공산 자락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점이 바로 도덕산 정상이기 때문이다.

또, 도덕암 경내에 있는 모과나무도 이곳의 자랑거리이다.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모과나무 뒤편에 있는 어정수(御井水)는 고려 광종(949∽975재위)이 직접 찾아와 마신 후 병이 나은 약수로 이름이 높다.

그런가 하면, 가산산성도 빼놓을 수 없는 팔공산의 명물이다. 국가 사적 216호인 가산산성은 찾기 쉬운 곳에 (전문가들을 만족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복원되어 있어 근래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진 답사지로 떠올랐다. 진남문 안으로 들어가 약간만 오르막을 걸으면 금세 관리사무소가 나타나는데, 그 이후는 곱게 닦인 임도를 줄곧 따라 나아가면 팔공산 ‘가[邊]’에 있는 산인 가산의 산성 전역을 밟게 된다.

임도를 오르면, 내성(內城)의 문 가운데 비교적 본래의 형태가 잘 살아 있는 동문이 먼저 나타난다. 그 외 중문, 서문, 북문은 크게 윤곽이 뚜렷하지 못하므로 애써 찾지 않아도 무방할 듯하다. 특히 눈이 쌓이면 북문은 찾을 길도 묘연하다.

다만 중문(中門)은 문 아래를 지나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아래를 지나야 가산바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산바위에 오르면 팔공산 능선과 대구 시내가 한눈에 ‘팍’ 들어오는 장관을 만끽할 수 있는데, 어찌 그 즐거움을 놓칠 것인가. 특히 하얗게 첫눈이 내린 날, 가산산성 경내 임도를 걸어 가산바위 위에 올라보라. 백설과 햇살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경관은 ‘천하제일경’이라 이름 지어도 절대 지나치지 않다!
     
“갑이네 을이네” 해도 팔공산 관광의 최대 명소는 단연 ‘갓바위’이다. 머리에 갓을 쓴 형상 때문에 공식 이름 ‘관봉석조여래좌상’보다도 흔히 ‘갓바위’로 불리는 이 부처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아 엄청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관봉석조여래좌상은 팔공산의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인 관봉 정상에 있다. 대표적인 답사로는 대구 쪽과 경산 쪽(선본사) 두 길이다.

이곳은 사시사철 기도 인파로 붐빈다. 특히 수능시험 직전에는 많은 학부모가 기복(祈福) 신앙의 차원에서 이곳에 올라 간절히, 애절히 빈다. 이 모습은, 한국적 교육열의 의미와 종교관의 진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 더 알아보기 / 봉서루, 봉황문

대웅전 앞 건물 봉서루, 보물 243호 마애여래좌상 앞의 봉황문…… 두 이름에 봉(鳳)이 들어 있는 것은, 동화사 창건시 이 절터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화사에서는 지금도 봉서루 앞에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둥근 돌을 놓아두어 답사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다.

* 더 알아보기 / 팔공산의 힘찬 줄기를 두루 보려면
 
팔공산 자락을 두루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산속으로 들어가면 전체 경관을 볼 수가 없으니 진정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을 꼭 찾아야 하고, 또 올라야 한다. 팔공산에서는 ‘군위 삼존석굴’로 넘어가는 한티재 정상 바로 뒤편, 동화사 봉황문 맞은편의 보물 243호 마애불좌상 (죄송하지만)머리 바로 위 능선, 도덕산 정상, 가산바위 위, 용암산성 옥천, 초례봉 정상 등이 바로 그곳이다. 용수동 당산약 그런 곳까지 두루 찾아 팔공산의 전경을 낱낱이 보았다면, 부 아래와 신무동 교육연수원 삼거리 포도밭도 제법 좋다. 만악(父岳)의 신령으로부터 “이제 하산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리라.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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