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남았습니다. 2011년 팔거천 구간에 처음으로 궤도빔을 얹은 지 21개월 만인 지난 6월 5일 새벽, 대구 3호선 전 구간의 궤도빔 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달 중순께 기지 내 차량반입을 시작으로 10월부터는 시운전이 실시된다고 하니, 2014년 하반기 본격 개통까지 대략 1년 남은 셈입니다. 감사원의 3호선 부실특혜 지적과 혈세로 만든 한국형 경전철 외면, 예산낭비라는 언론의 뭇매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 김범일 시장님의 3선 도전도 이제 1년 남았습니다.
김 시장님의 눈에야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고 아우성인 시민단체들의 행동이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4대강 강정보 희망 숲 만들기 행사에서는 나무를 심으시다, 워렌버핏 회장이 대구에 왔을 적엔 태극기를 든 환영객으로 변신하고, 이제는 개통도 되지 않은 모노레일을 두고 ‘사랑한다’며 전투적으로 홍보하는 ‘자발적인’ 주부님들을 보며 적잖은 시민이 놀라는 만큼 말입니다.
하지만 지하철 역사와 차량 간 5센티미터 틈새에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 갑자기 닫히는 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던 사람들, 지하철 선로로 추락해 사망한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은 사람들, 자동화가 얼마나 스마트하지 않고 몇 번이나 물어물어 가야만 하는 불편한 것인지 경험한 사람들, 어디서든 손을 놓치면 환경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 힘든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 지하철을 이용하며 차별적인 시선과 발언, 행동, 폭력에 시달렸던 장애인들에게 사람 없는 3호선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3호선의 무인운영 모노레일 방식은 애초 교통약자들을 배제한 설계였습니다. 지상 또는 지하로 다니는 교통수단의 특성상 유사시 대피방안에 교통약자들이 갖게 되는 제약은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유모차, 전동스쿠터, 전‧수동 휠체어 등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시민이나, 연령 또는 장애로 인해 주변 환경을 쉽게 인지,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CCTV를 통한 감시형 안전이 아니라 접근 가능한 구조와 직접적인 지원인력입니다. 일정한 속도와 탑승패턴의 규율을 전제하는 무인 자동화의 특성상, 정해진 속도와 패턴을 벗어나는 이들은 언제든지 위협에 노출될 것입니다. 그것이 공중에서 비상구 없이 달리는 모노레일이라면, 기관사가 없고 역무원이 비어 있는 교통수단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65세 이상의 고령자, 장애인, 임산부, 어린이, 영, 유아 동반자와 같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 불리한 계층을 교통약자라 보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대구시 인구 100명 중 25명은 이 교통약자 인구에 속합니다. 역사 추락사고로 일어난 장애인이동권투쟁을 통해 국어사전에는 ‘이동권’이라는 없던 낱말이 생겨났습니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이 말이 만들어지기까지 사회가 배운 것은 ‘장애인에게, 교통약자에게 편리해야 모두가 편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非)교통약자들을 중심으로 지어진 3호선이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2012년 2월 ‘대구도시철도 모노레일 도입에 따른 승객 대피시간 예측 및 구간별 위험지도 작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모의피난 실험에서 굴절차를 이용해 지상으로 대피하는 데에 평균 44초가 걸렸습니다. 구조원 1명, 승객 단 2명이 말입니다. 피난 슈트를 이용하는 방법에서는 설치시간이 73초, 1명당 약 10초가 걸렸습니다. 이미 사고가 났을 경우라고 생각하고,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균 20대의 젊은 남녀 비장애인이었습니다. 완전히 위험을 지각하고 차분한 피실험자들이 단순 대피시간에만 2명당 44초라면, 250명이 탑승하고 있다고 할 때 최소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피난 슈트로도 40분이 넘게 걸리는 셈입니다.
연구에서 밝히듯 다양한 조건과 신체, 심리적 변화를 배제하고, 각 사고구간‧위치별 특성, 출동과 도착시간, 승객들의 탈출시간을 예상했을 때에 가능한 최적의 피난시간임에도 말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1079호 차량에서 발생한 불이 1080호에 옮겨붙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며, 1080호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데에는 10분도 길었습니다. 사실상 알아서 생존하거나 운이 좋게 위험상황이 제거되길 바라야 하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이런 결과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난망해지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10주기 직후 희생자들을 ‘통구이’로 칭하며 오열하는 유족의 사진을 올려 논란이 있었습니다. 대구에 새로 지어지는 3호선에서도 ‘한 300마리 바싹 구워줬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허튼짓 보다 위험한 것은 무인운전, 무인역사, 비상대피로 부재, 안전설비 미확충이라는 시민의 핵심적인 문제제기에 여전히 묵묵부답인 대구시 입니다. ‘무인운전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 해결책’이라며 예산의 문제를 마치 첨단과학적인 양 선전하는 대구도시철도건설본부입니다.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던 지하철 참사. 우리는 적절한 초기대응과 대피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너무나 지독한 결과에서 얻어낸 당연한 교훈이었습니다. 대구시와 도시철도 관계기관이 처참했던 지난 참사를 진정 공유하고 있다면, 안전의식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모순적이게도 사고에 대한 담대함만을 키운 게 아니라면, 역 이름 짓기, 모노레일 길거리 홍보 따위의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안전에 80점, 90점이란 없습니다. 100점이 아니면 0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