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돋보기 버튼을 누르시면 더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  | |
작품정보
꽃편지. 21.5cm x 33.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3년 작
비빔 혹은 섞임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상승작용을 일으킴으로써 구성원 모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일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실로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모더니즘 이후의 시대에도 종교, 사상, 산업, 문화,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비벼 넣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현대사회의 중추신경이라 할 만한 교통, 통신, 정보산업이 첨예한 속도경쟁에 빠져있는 요즈음은 휴대폰에 MP3, 컴퓨터, 게임기, TV 기능까지 합쳐놓은 디지털 복합기의 경우에서 보이듯 다기능 뒤섞기의 마법에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티플레이어가 주목받는 그라운드, 만능엔터테이너가 스타가 되는 연예계, 최첨단 메커니즘과 전통미학을 한 바구니에 담아내는 예술가 등등, 시대의 기호는 이미 거대한 비벼 넣기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그런데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대륙과 대양이 섞이고, 다양한 계절이 뒤엉킨 우리나라만큼 비빔에 관한 역사적 침전물을 자랑할 만한 곳도 드물다.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지리학, 성리학, 불교와 민간신앙, 민화, 단청, 조각보, 춤과 무예가 어우러진 택견, 늘 우리라는 말을 우선시하고 나들이 미닫이 등 반대개념을 하나로 묶어내는 언어습관, 자연 속으로 안기듯 만들어진 길과 정원, 건축물 심지어 막사발 하나에도 상생과 조화의 지혜가 장엄하게 비벼져 있음을 보면 우리문화 비빔예찬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인간생활도 타인과 서로 사는 맛나게 비벼지려면 그만큼 내 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덜어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배려이자 용서이고, 화해이며 융화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껍데기만 서로 물들일 뿐 결코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갈등과 대립, 미움과 분노는 그렇게 생겨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점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작은 그릇 속에서는 감칠맛 나게 비벼지다가도 거리나 사회 속으로 나서기만 하면 세상이란 곳이 마치 살벌한 전쟁터라도 되는 듯 서로 으르렁거리며 상처 주기에 바빠 도대체 큰 그릇으로 비벼지려고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시대는 이미 세상을 한 덩어리로 섞어놓았으나, 그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게 비벼져야 할 우리는 점점 견고한 이기주의의 성채 속으로 숨어드는 아이러니...비록 개인중심주의와 물질문명의 진보에 더 집착해온 서구식 뒤섞기의 밀물이 이 사회를 광범위하게 적셔놓긴 했지만,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상극의 개념도 하나로 묶어내는 화합과 공존의 정신성이 균형 있게 비벼져야 세상은 비로소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라 믿는다. 옷감과 색감, 사람과 자연도 서로 잘 섞일수록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며칠 전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왔다. 실크로드의 기착지인 이스탄불과 종착지인 경주시가 함께 진행하는 이스탄불-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2013행사 가운데 하나인, 경북-이스탄불 미술 교류전 기획에 필요한 실무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럽과 동양이 섞이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등 고대의 유적과 현대 디지털 문명이 하나로 융화된 거대한 시공간의 장엄한 합창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 얼마 후 신라 천 년의 문화와 역동적인 동시대 한국의 에너지가 그 속으로 밀려들어 가 일으킬 문화, 예술적 상승작용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이제 융합이 화두인 시대다. 그래서 우선 예술을 생산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곳에서부터 이렇게 누군가가 큰 숟가락을 들고 나타나, 이 맵고, 짜고, 싱거운 자들이 서로가 잘났다고 아우성인 시대 한 곳을 쓱쓱 비비고 섞어주는 일들이 자주, 그리고 지속적해서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