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어젯밤의 늦은 야근과 뒤이은 술자리를
고스란히 기억하듯 그의 와이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어젯밤이 그랬듯
고단함이 묻어나는 얼굴로 그가 풀어놓는
일요일 오후의 시간을 어색하게 보내기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은 듯
그는 자주 어설프게 웃었고
별 수 없이 일요일 일하러 나온 우리도
심해 정어리 붉은 등살에 붙은
물질로 만들었다는 혈액개선제의 효능을
어색하게 듣고 있었다
준비해온 전단지와 자료들 사이 끼여 있던
약효에 대해 그는 확신을 이야기했지만
벌써 오십은 넘어 보이는
피곤한 눈동자는 자꾸 흐려지고 있었다
식약청에서 유일하게 건강기능 상품으로 인정한
약을 자신도 먹고 있다며
오래 앓아온 당뇨가 거의 사라졌다고 이야기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병력까지 팔고 있는
그의 혈액개선제는 심드렁한 관객의 몫이 아니라
그의 몫이 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무리를 지어 거친 파도를 건너 온 정어리나
늘 발밑이 위태로워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둥 바둥 주춤거리며 살아왔을 그의 생이나
어차피 오십 보 백 보
십중팔구, 오늘 팔아야 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 터덜거리며 걸어가야 할
구겨진 그의 어깨가 구겨진 와이셔츠 틈새에
숨어 있는 게 보였다
*사는 게 참 힘들다.
그래도 꾸역 꾸역 살아가야 한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을 두려워 할 지언 정 죽지 못해 안달 할 필요까진 없다. 절망 다음에 바로 희망이 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아간다는 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갈 데 까지 가보는 거다. 가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며...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