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 신당동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김형기(32살, 남)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로 상하체를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김씨는 대부분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이다. 김씨는 그동안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제도에 따라 월 180시간의 활동보조인서비스를 받았다. 국민연금공단은 올해 법이 정한 수급 유효기간 2년이 도래한 김씨에 대해 방문조사를 실시했고, 방문조사 결과 김씨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시간은 월 180시간에서 120시간으로 감소했다.
김씨는 “내게 방문한 조사원은 판정인정조사표도 작성하지 않고, 30분 동안 농담만 하고 돌아갔다”며 “이용시간이 하락할 수도 있느냐는 물음에 그럴 일은 없을거라 해놓고 결과는 60시간 하락이었다. 180시간도 부족한데 60시간이나 줄이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대구시는 달서구를 중심으로 30명 이상의 중증장애인이 김씨처럼 방문조사 이후 활동보조인서비스 시간이 줄어드는 피해를 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법, 2년마다 수급 장애인 갱신…올해 3만명 갱신해야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르면 활동지원 수급 장애인은 2년마다(2회 이상 같은 등급으로 수급자격 인정받은 경우 2회부터 3년) 서비스 필요도에 따른 재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 3월부터 활동지원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으로 이용자 3만명에 대한 대규모 수급자격 갱신절차가 진행 중이다.
장애인단체는 그동안 1급 중증장애인에 한해 지원되는 활동지원서비스에 유효기간을 두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해왔다. 의학적으로 이미 ‘중증’, ‘1급’임이 증명된 이들에게 매번 생활의 어려움이나 장애 정도를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인권 침해 요소가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 지난 4월에는 최동익 의원(민주통합당)에 의해 재심사 과정에서 조사원이 장애인을 모욕, 협박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 의원은 “방문조사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시각장애인에게 ‘적정시간보다 더 제공받고 있기 때문에 삭감하러 왔다’고 말하거나, ‘재판정으로 제공되는 시간에 이의제기를 하면 그 시간보다 더 줄어들테니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협박하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며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재발방지를 요청했다.
“2년 뒤 재심사한다는 말 못하게 완전히 제도를 뜯어고쳐야”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하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0일 오전 11시 대구 달서구 이곡동 국민연금공단 대구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에 대한 이해, 인권에 대한 이해도 없이 행정편의주의에 빠진 연금공단이 장애인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며 국민연금공단을 규탄했다.
박명애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억울하다. 시간이 줄어들어서 억울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하는게 억울하다”며 “활동보조인제도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었나. 며칠을 굶어가며, 우리 살을 태워가며, 우리 피를 말려가며 만든 제도인데 어떻게 이렇게 장난질을 칠 수 있단 말이냐”고 강하게 장애인의 실태에 대한 고려 없이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는 정부 당국을 비난했다.
박명애 대표는 “어떻게 얻어낸 제도인데 절대로 물러날 수 없다”며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2년 뒤에 재심사한다는 이야기를 못 하도록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유효기간을 두고 2년마다 갱신을 하도록 한 법 자체가 문제”라며 “국민연금공단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시간이 우리에게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 그리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중증장애인은 ‘필요 없음에도 활동보조를 이용하고 있거나, 필요 이상으로 이용하고 있는 자’로 치부되어, 자신이 얼마나 살기 힘들고, 자신의 장애가 얼마나 힘든지 매번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며 “우리에게 수급자격 갱신은 인정점수 1점 차이에 따라 우리의 삶이 전혀 달라질 수 있기에 그 자체로 공포”라고 지적했다.
또, “수급자격갱신 인정조사를 위탁받은 국민연금공단은 애초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었으며, 제도 자체가 가지는 중요성, 인정조사표에 대한 숙지, 장애인의 삶과 인권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그러니 정작 장애인 가구에 방문해도 그 조사가 현실을 반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활동지원제도를 파행으로 몰고 있는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분노한다”며 “우리는 활동지원제도를 바로 잡고 중증장애인 생존권 확보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