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 난 뒤끝에는 미친년, 미친놈 생기게 마련이여. 세상이 돌아부렀는디 사람인들 온전헐 수 가 있가디. 그중에 특별히 더 모진 꼴 당해불면 미쳐불제.(p114)’
작년 겨울의 초입에는 그간 몇 번이나 엎어지고 엎어져,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영화 <26년>이 개봉했고 얼마 전 봄의 소식과 함께 한 작가의 책이 출간됐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 ⋯⋯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
망각의 사람이라 무슨 시즌별 기념일처럼 다가와야, 그제야 주억거리듯 상념에 빠지기 일쑤여서 사실은 내세울 ‘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역시나 또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 사사로운 여분의 사람인지라 기어코 끼적일 수밖에 없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고 있는 지금도, 그리고 앞서 생각만 하고 있던 비교적 여러 날의 시간 안에서도 혼자서 끙끙대 듯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사실 무엇을 안다고, 그리고 무엇을 한다고. 그래서 끼적이는 순간이, 이 써내려감이 사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부끄러워 쭈뼛 쭈뼛거리고 있다. 그럼에도, 어쩌면 조금은 우습게도 이것이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쓰고야 만다. 쓸 수밖에 없다. 좋고 훌륭한 그 ‘잘’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게는 쓴다는 행위가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할 줄 아는 게 이거뿐이라.
올해 오월 들어 생각보다 자주, 또 많이 눈가가 붉어졌다. 유난히 울고 있다. 어떤 날은 구석에 처박혀 꺽꺽- 울어댔다. 사적인 것들도 곁들어져 어느 누군들 온전히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냐싶은 마음에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 외로움에 또 그저 끼적이고 끼적였다. 허공에 떠돌 누군가의 말들이 생각나 울고, 어느 책 어느 페이지로 남겨져 사라지고 있을 마음들이 생각나 울고, 한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돌이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심해 울었다. 또 누군가는 그리워할 어떤 이의 날이 다가와 울고, 나물이나 다듬으며 웃었으면 좋겠는 백발의 그네들이 떠올라 울었다. 거참 눈물 참 징하게도 많구나, 싶게.
나는 내가 참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우선인 사람이다. 엄마도 중요하고, 우리 가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 어느 것보다도 먼저다. 무엇을 하든 즐거워야 하고, 내가 신이 나야 그 일도 함께 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내게 혹은 그런 우리에게 어떤 순간 가해지는 수많은 죄책감들. 어제는 웃었지만, 오늘은 미안하여 울고 내일은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행복할 우리에게 불쑥 불쑥 찾아오는 그 엄숙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똑똑한 세상이다. 지혜롭지 못하고 멍청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참 ‘스마트’한 세상이다. 야금야금 고약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세상이다. 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참 똑똑하게 처리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철저히 개인의 잘못, 개인의 문제로 치부 ‘받게’ 만드는 더러운 세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무서운 것은 폭력인지도 모르고, 사실 내게도 가해지는지 모르고 그 휘두르는 사람들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마냥 살아가는 ‘우리’다. 스스로가 얼마나 무심해지고, 무서워지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혹은 모르는 척 외면하며 잘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우리’가 아니라고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그 무서움을 알았으면 좋겠다. 너무 무섭다고 몸서리치면 좋겠다. 함께 발버둥치고 싶다.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말이야. 믿을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란 책의 글귀처럼 우리가 서로 꾸욱- 약속해주면 좋겠다. 괜찮다고,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지금은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고 있지만, 그것이 나와 당신이 함께 한다면 별일 없을 거라고. 그러니 괜찮아-라고 말이다.
어디선가 나와 당신을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우리는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나는 내가 너무나 귀하고 먼저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끼적이고 산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혼자만 잘 사는 건 무슨 재미겠는가- 생각하기 때문에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그런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이 깨지고 아픈 일이 있었으면 싶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높아지려고만 하는 길에 달려가는 당신이기 쉽기에. 그래서 한 번 아파 쓰러져 본 당신이 어느새 내 옆에 서서 함께 손 잡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당신을 꼭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내뱉는 수많은 말들 중에서 어떤 말들은 노래가 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의 눈물은 때론 노래가 되어 흐른다. 그것은 곧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희미해지고 매일 잊는 우리겠지만, 사실 가슴 깊은 언저리에서 내내 맴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머리카락 끝에도, 손톱 끝에도 구석구석 묻어 있을 것이다.
나는 바란다. 당신에게서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 망설임 없이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새벽녘에 괜스레 잠 못 들고 뒤척이며 어느 순간 울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같은 당신에게 내가 그런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아직은 어리고 많이 모자란 내가, 이기의 내가 언젠가는... 언제나- 말해 줄 수 있기를.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덧붙임의 글;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곧잘 ‘내가 그럴 깜냥이나 되나’, 싶어 울적해지곤 했다. 그런데 도리어 그런 글을 내가 읽을 수 있으니까 사실은 정말 기쁜 일이다, 싶다. 서투른 이 끼적임을 나의 온 몸을 가득 채워준 그녀들, 신경숙&공선옥 작가에게...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기를 바라는 오월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