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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5월23일 15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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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5)
<레미제라블>, 부르주아 혁명에 대한 찬가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올 여름 개봉을 앞둔 설국열차

얼마 전, 꼼꼼하게 촬영해서‘봉 디테일로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 열차> 예고편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새로운 빙하기를 맞아 생존자들을 태우고 끝없이 달리는 열차의 꼬리 칸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다루고 있다. 1분 2초의 짧은 예고편에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설렘을 느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반란’은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언제까지나 지배자의 처지에서 해석한 의미다. 그러나 반대쪽에 있는 피지배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것은 ‘혁명’이다. ‘혁명’과 ‘시위’가 낡고 후진 단어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어 다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개봉 당시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딸 아이 덕분에 나도 다수 관객 중의 한 명이 되었었다. 아이와 나는 <장발장>이란 제목으로 다이제스트 된 한 권의 책을 초등학교 때 읽었다. 둘 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읽었다. 생각나는 내용은 빵을 훔치고, 가석방된 장발장이 은 식기를 다시 훔치는 장면, 코제트가 등장하고 나중에 마리우스와 결혼하고,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의 주위를 맴돈다는 정도로 어렴풋하다.

옆에 앉았던 딸아이는 코제트의 엄마 팜핀이 수난을 겪는 장면부터 울었다. 옆에서 아이가 훌쩍거리는 걸 느끼고 되도록 영화에 집중하려 했다. 나는 에포닌의 마리우스에 대한 짝사랑이 짠했고,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 날 거리에서 혁명군이 혁명가를 부를 때부터 울었다. 종이 위의 역사가 재현되는 현장이 뭉클했다.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려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혁명군의 모습에서 80년 5월 광주와 87년 6월 항쟁이 겹쳐졌다.

배고픈 조카를 위해 단지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영혼까지 죄인 취급당하는 장발장을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생각났다. 프랑스 혁명 30여 년 전부터 부르주아는 법체계를 준비했다고 한다. 당시 살인보다 강력한 처벌 대상은 ‘도둑질’이었다. 부르주아에게 사유재산의 침해는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저항과 맞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성서의 십계명에도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지만, 부르주아의 탐욕스런 소유권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장발장의 죄의식은 조금 과장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충분히 근거 있는 죄의식이었다. 국왕이 곧 법이던 왕정 시대와 달리 부르주아의 법은 ‘네 행동의 준칙을 보편적 명령에 따르라’고 ‘양심’의 이름으로 내면화한다. 거기다 여전히 건재하는 십계명을 어긴 종교적 죄의식까지 더해졌으니 장발장의 죄의식은 이해할 만하다. ‘법’과 ‘종교’로 몸과 영혼까지 규율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제도적 폭력으로 빼앗은 자들은 보편적 준칙에 따른 죄의식 따위는 없는 데 반해 오히려 빼앗긴 자들이 죄의식을 느끼며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다.
 
 핏발이 선 눈으로 영화관을 나오는데, 아이는 마리우스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노래하다가 코제트의 한마디에 빠르게 회복되는 장면이 거슬렸단다. 마리우스는 돌아갈 곳이 있는 귀족 계급으로 감상적 비애에 젖는 시늉만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고, 그것을 완성하는 데 거의 100년이 걸렸다. 출연배우들이 <내일은 오리라>로 끝나는 혁명가를 광장에서 제창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란 점을 떠올리게 해서 씁쓸했다. 영화는 마치 ‘과거’에 기대어‘비참한 사람들(레미제라블)’이 노래한 ‘내일’이 ‘현재’이므로, ‘현재’(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찬가처럼 느껴졌다. 더욱더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그마저도 제대로 이룩하지 못하고 역사의 퇴행을 경험 중이란 것이다.

반동의 역사는 늘 있었지만, <레미제라블>이 2012년 대선 이후 치유가 되었던 이유는 <내일은 오리라>라는 노래 가사에 있었다. 유보된 변화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거저 오는 게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자신이 ‘비참한 사람들(레미제라블)’이란 자각을 잊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매일 변화의 시작이라고 여길 때, ‘내일’은 올 것이다.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혁명’에 대한 설렘을 일으키게 하는 봉준호 감독의<설국 열차>가 영화 <레미제라블>처럼 ‘혁명’을 상품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기다려 본다.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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