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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5월11일 02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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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21) 수성구
수성구 답사 1번지는 국립대구박물관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글쓴이 주] 지금까지 대구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을 시대순(時代順)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지역별(地域別)로 현장 답사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연재된 ‘시대별 여행’을 다 읽으신 분은 먼저 대구박물관부터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향토역사관(달성공원)과 대구근대역사관(경상감영공원)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 ‘지역별 여행’을 출발하셔요.

‘지역별 여행’도 시대의 순서를 최대한 고려한 여정입니다. 대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①수성구(대구박물관) ②북구(경북대박물관)를 먼저 답사한 뒤 ③비슬산(빙하기) ④팔공산(신라) ⑤동구(고려) ⑥앞산(고려) ⑦하빈(조선 초) ⑧구지(임진왜란) ⑨가창(임진왜란) ⑩화원(식민지) ⑪중구(현대) 순으로 답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구박물관

수성구에는 대구박물관이 있다. 그러므로 대구광역시의 역사유적과 문화유산 답사를 떠나려면 수성구 지역부터 먼저 둘러보아야 한다. 박물관에 들르지 않고 현장부터 밟는 것은 책 없이 지식을 쌓겠다는 것과 대동소이한 ‘무리수’이기 때문이다.

대구박물관은 ‘국립’이다. 국립 박물관인 만큼, 방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말하지 않아도 될 법하다. 1994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은 수준 높은 전시회가 늘 열리고 있기 때문에, 상설 전시 유물을 감상하는 것 말고도 언제나 방문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대구에서 출토된 구석기와 신석기 유물도 모두 이곳에 있다. 대구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국보’도 감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박물관은 대구의 역사적 변화를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대구박물관엘 가야 한다. 즉, (대구 전역 답사 때에도 물론이지만) 수성구 답사는 대구박물관부터 천천히 둘러본 다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서가 바람직하다.

▲모명재

대구박물관 관람 후 도로를 건너 경북고 정문 옆의 2.28기념탑을 둘러본 다음, 모명재를 찾는 게 좋겠다. 모명재(慕明齋)는 왜란 때 명나라 장수로 참전했다가 귀화한 두사충을 섬기는 재실이다. 그의 묘소도 모명재 바로 뒤, ‘비 내리는 고모령’의 무대인 형제봉 기슭에 있다. 특이한 유적이므로 둘러볼 가치가 있다.
  
수성구에는 가볼 만한 묘소도 두 곳 있다. 한 곳은 범물동에 있고, 다른 한 곳은 수성못 바로 뒤의 산기슭에 있다. 전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선생의 묘소이고, 후자는 수성못을 만든 일본인 수기임태랑(水崎林太郞)의 묘소다.

▲서상돈 묘소
▲수기임태랑 묘소

모명재에서 대구박물관으로 되돌아와서 계속 직진하면 범물동과 월드컵경기장으로 나뉘는 삼거리에 닿는다. 서상돈 선생의 묘소는 이 삼거리를 내려보고 있는 천주교 묘지의 중턱에 있다. 묘지 입구로 들어가도 선생의 묘소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판 등은 없지만, 관리인에게 물으면 대뜸 대답해준다. 아마도 묻는 이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하지만 막상 선생의 무덤에 당도해 보면 묘역이 너무나 초라해서 일견 허탈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당대의 부호였던 선생은 국채보상운동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물쓰듯 돈을 내놓았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무덤은 이렇듯 검소하게 남기라고 유언했기 때문이다. 서상돈 선생 묘소 앞에서 문득 자신의 무덤에 봉우리를 하지 말라고 유언했던 홍의장군을 떠올리면서, 사람에는 상품, 중품, 하품의 세 등급이 있다는 공자의 말씀이 ‘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기임태랑의 묘소는 수성못 바로 뒤에 있다. 이 묘소 역시 규모나 치장 상태가 소박하다. 10년 공사 끝에 1925년 수성못을 조성하여 농사에 큰 도움을 준 수기임태랑(미즈사키 린타로)은 1939년 사망하면서 대구에 묻히기를 원하였고, 그래서 수성못 뒤에 묘소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그의 묘소에서는 해마다 일본과 한국에서 찾아온 이들이 정중한 제사를 지낸다. 묘소 앞에는 관련 사진들이 작게 전시되어 있다.   

▲이서공원

그런가 하면, 수성구 답사에서 절대 빠뜨리면 안 될 곳이 한군데 있다. 이곳의 이름은 ‘이서(李漵)공원’. ‘이서’는 사람의 성명이니, 공원의 이름만 듣고도 이곳이 이서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이서는 정조 때인 1776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해마다 홍수 때문에 대구사람들이 큰 피해를 보는 것을 보았다. 그는 1778년 개인 재산을 들여 새로 제방(堤防)을 쌓는 등 공사를 벌여 시내 중심부를 관통하는 물길을 신천(新川) 방향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대구 중심부는 홍수의 범람으로 말미암아 해마다 피해를 보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된다.
 
당연히 이공(李公)의 둑[堤] 쌓은 선정을 추앙하는 이공제비(李公堤碑)가 세워졌다(1797년). 그 후 처음 세워진 비가 허술하다 하여 1808년 다시 세워졌는데, 이는 1986년 신천대로 공사 때 흙 속에 묻혀 있던 두 번째 비석이 발견되면서 밝혀졌다. 그리고 2000년 10월, 상동교 아래에 소규모 공원을 만들면서 비도 옮기도 비각도 짓는 등 숭모 분위기를 조성했다.

▲상동고인돌

이서공원 맞은편의 상동 주택가 안에도 꼭 답사할 만한 곳이 숨어 있다. 수성못 놀이공원과 안상규벌꿀 사이의 공터에도 있지만(기념물 12호), 그에 비해 규모와 품새가 훨씬 뛰어나 답사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고인돌 유적이 정화팔레스APT 뒤에 아파트 단지의 부속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고인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대구 사람들이 신천변을 따라가며 조성된 너른 들판에 모여 살았다는 사실을 잘 증언해준다. 또한, 집터와 고인돌을 복원하여 교육용으로 전시해 두었으므로 자녀와 동행한 답사 여행이라면 꼭 가볼 만하다. 찾기도 쉽다.

상동 청동기 유적지는 무덤 위에 두꺼운 강판 유리를 얹어 두었다. 낮에 보면 유리 안에는 높은 하늘과 고색창연한 무덤 유적, 그리고 현대인의 고층 아파트가 시퍼렇게 뒤엉킨 채 모여 있다. 그 광경을 보노라면, 시간이란 무엇이며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뇌리를 스친다. 물론 그 시각에도 창공의 흰 구름들은 정말 무심한 표정으로 흘러간다.

* 더 알아보기

고산서당 : 이황과 정경세가 강회(講會)를 연 서당으로, 서당의 이름도 퇴계가 지었다고 전한다. 대구시 문화재자료 15호 건물로, 수성구 성동 산 22번지에 있다. 그러나 위치가 외진 곳이어서 이쪽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렵다.

▲욱수동 공룡발자국

욱수동 공룡발자국 : 시지고교 뒤편 개울에 있다. 이 공룡발자국은 2011년 성명여중 박두광 교사가 발견했다. 또, 시지 보성아파트 단지 안에는 고인돌도 3기(기념물 9호) 남아 있다.

독무재, 하효자정려각 : 망우공원 인근의 청기와주유소 뒤편에 있다. 독무재(獨茂齋)는 벼슬을 마다하고 향리에서 후진 양성에만 몰두한 하시찬(夏時贊, 1750∽1828)을 추모하는 집이고, 하효자정려각은 효자 하광신을 기려 조정에서 세운 것이다.

▲고모역

‘비 내리는 고모령’ :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옥살이하고 있는 두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어머니[母모]가 자꾸만 고개를 돌려 대구감옥 쪽을 바라보았다[顧]는 고개[嶺], 힘센 오누이가 자꾸만 싸우자 참다못한 어머니[母]가 집을 나가면서 되풀이되풀이 집쪽을 바라보았다[顧]는 고개[嶺], 그렇게 두 개의 전설을 지닌 고개가 고모령(顧母嶺)이다. 그래서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형제봉 건너편 망우공원 안 인터불고호텔 들머리 삼거리에 세워졌다.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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