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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4월24일 11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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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3)
<말하는 건축가>, 공존의 방식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결혼 후 처음으로 장만한 우리 집은 변두리의 24평 아파트였다. 15층 아파트의 11층에 이사한 그날 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분명 바닥이 있는 공간이지만 내 몸이 붕붕 뜬 것 같았다. 지면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땅을 안 밟으면 공중에서 잠드는 어지러운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웃집의 닫힌 현관문도 완강한 소통 거부로 보였다. 바로 옆집에 이웃이 있지만 완전한 고립 속에 던져진 듯했다. 공중에 떠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상상하면 한 장의 거대한 엑스레이가 떠올라서 기괴했다.

여덟 살 때 이사한 우리 집은 서쪽으로 넘어가는 볕이 안방 깊숙이 들어와서 눈이 따가웠다. 멀리 파도처럼 밀려드는 산의 곡선이 바라보이는 일자형 그 집은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돌이었다. 일자형 구조의 중심은 안방, 안방을 기준으로 오른편에 부엌과 한 평 남짓한 부엌 방, 왼편에는 세 줄 용도로 지어진 작은 방, 안방 앞에는 두 사람이 앉으면 딱 알맞은 유리문이 달린 마루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까지 안방에서 다섯 식구가 같이 잤다. 부엌방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제 두 명이 자취했고, 작은 방에는 신혼부부가 세 들었다. 벽이 공간을 구획하지만, 창호지 사이로 자취생 오빠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안방으로 스며들곤 했다. 작은 방은 큰 소리로 부부싸움을 할 때면 ‘다른 식구가 사는구나.’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오래된 흙벽돌은 벽지 뒷면에서 흙 알갱이가 스르르 쏟아지곤 했다. 벽지에 구멍이 나면 벽을 향해 누워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벽을 후벼 판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걸리면 뒤통수가 얼얼하게 한 대 맞는다.

언덕 위의 우리 집은 아랫동네와 윗동네의 길목에 있고, 담장이 낮아서 지나는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게 집 안을 구경하는 위치였다. 거기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가끔 벌어지는 남매의 우렁찬 싸움이 마을 전체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도대체 우리 집에서 사생활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안방 깊숙이 스며드는 햇볕도 감시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높은 위치가 언제나 불리한 조건만은 아니었다. 아랫동네에 놀러 간 동생을 찾을 때 골목을 휘저으며 다닐 필요가 없었다. 집 앞에 나와 “ㅇㅇ야!”라고 한 번만 부르면 되고, 언덕 아래 옹기종기 붙은 집들의 마당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구멍가게 앞에 볕 바라기 하는 할머니들, 관광버스 운전기사 영호네 집에 누구누구 엄마가 모여서 수다 떠는지, 우리 집 바로 아래 큰 집 수돗가에서 누가 빨래를 하는지, 큰 집 밑에 있는 영애네 집에서 영애 남매가 싸우는 모습이 하나의 프레임에 잡혔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에서 아이들은 고무줄을 하고 사방치기를 하거나 땅 따먹기 아니면 편을 갈라 싸우기도 했다.

볼품없이 삐죽하게 솟은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모르던 그때, 집은 마당 있고 수도가 부엌 앞에 있어서 쌀 씻고 빨래하고 여름날 등목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화장실은 뒤쪽에 자리해서 어두우면 가기 싫은 곳이고, 대문도 항상 열려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물 한잔 마시러 혹은 마실 삼아 아무 때나 불쑥 들어오는 그런 곳이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사생활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 우리 집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 집에는 이웃이 배경처럼 있었고, 사람 사는 소리와 풍경도 시간의 변화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

<말하는 건축가>는 무주공공 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등 나눔의 공간미학을 실천해서 공공건축의 대가로 저명한 고(故) 정기용 건축가의 마지막 일 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정기용 선생님은 단지 집을 짓는 기술자로서 직업인 건축가가 아니라, 사유하는 예술가 같다. 그분은 공간에 사람을 맞추는 공간 중심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 공간과 시간, 사람과 풍경, 사람과 땅의 공존을 고민하는 건축가였다.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도 삶과 죽음을 진실하게 성찰했다.

특히, 마흔이 넘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조명처럼 들어오는 거실의 햇볕을 대하는 태도에서 삶에 대한 외경을 느꼈다. 집을 만드는 건축가임에도 그는 월세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외관이 화려하고 소음에서 멀리 떨어진 고층 아파트가 아닌, 자동차 소리와 지나는 사람 소리, 과일 트럭의 스피커 소리가 들리는 그 집에 대한 애정을 보면서 <집>이 소유와 물신의 대상이 되어버린 우리의 자화상이 겹쳐졌다. 이 땅의 문제를 다른 곳에서 찾을 게 아니라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은 건축에 관한 주장이면서 우리 시대의 과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주관이었다. 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 앞 계단에 앉아 주민 속에 묻혀 있는 건축가, 그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는 그분의 철학이며 건축 정신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어른을 만났다.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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