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6살인 원조 아이돌 토니안과 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의 열애가 넷심을 뜨겁게 달궜다.
언론은 16살의 나이 차이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혜리와 연애하는 토니안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토니안과 혜리의 연애를 바라보는 언론과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징역 5년형과 전자발찌 부착을 선고받은 고영욱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고영욱은 지난해 5월 연예인 지망생 A양(당시 18세)의 '성폭행 혐의'로 고소됐고, 이후 B양과 C양이 추가 고소해 병합 수사됐다. 해당 사건이 검찰 송치돼 조사를 받던 도중 D양의 성추행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해 결국 B양, C양, D양에 대한 간음 및 성추행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고영욱은 결심공판 당시 “피해자들과 성적 행위를 한 것은 도의적으로 잘못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위협이나 강제성은 없었다”고 호소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신은 위협이나 강제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는 그렇지 않았다. 고영욱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했다. 연예인 지망생인 피해자들에게 연예인이라는 고영욱의 지위는 충분히 피해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권력이었다. 권력이 있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성. 이 사건의 본질은 상대 여성이 미성년자라는 점이 아니라 바로 권력을 가진 남성이 원하지 않은 여성에게 행한 ‘성폭력’이라는 것이다.
토니안과 혜리의 연애를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시선은 성폭력 가해자 고영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다. 고영욱의 문제는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이지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혜리를 향한 시선은 그녀가 ‘미성년자’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언론의 시선은 고영욱이 피해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사실보다는 그들이 미성년이라는 점에, 토니안과 연애를 시작한 혜리의 성적자기결정권 보다는 그녀가 미성년이라는 점을 더 주목한다. 피해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고, 혜리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올해 ‘성인 라이센스’를 획득한 혜리가 라이센스 획득 전에 연애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 이 따가운 시선이 토니안을 향해 있지만 실은 혜리를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혜리의 소속사는 열애 사실 인정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혜리를 또 한 번 성적 주체가 아닌 미성숙한 보호대상으로 만들었다. 정작 혜리의 감정이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억압하거나 무시하거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성폭력 가해자 고영욱과 혜리를 향한 언론, 대중의 시선은 다른 듯 같다.
“12월 31일 11시 59분까지는 담배, 술, 콘돔을 살 수 없다가 1분이 지나면 살 수 있다. 1분 만에 갑자기 성숙해지는 것인가”라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누피’ 활동가의 말을 빌리면 혜리가 토니안을 사랑하는 데 19살이나 20살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폭력을 규정지을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되어야 하듯이, 우리는 혜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고영욱이 집요하게 미성년자만을 찾아 나선 데는 20세 미만, 특히 여성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허점을 파고 든 것은 아닐까. 성적자기결정권이 없는 상대를 만나는데 있어 중요한건 결국 힘 있는 남성의 결정과 판단 외엔 없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제2의 고영욱은 또 다시 등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