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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4월15일 15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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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22)
사도행전 5:17-32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3월 31일 부활주일 이후부터 5월 19일 성령강림주일까지 기독교회는 계속 부활절이다. 즉 부활정신을 상고하는 절기이다.

신약성서 네 복음서에 나온 부활이야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네 복음서 모두 부활 자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오직 결과만 알리는 선언이 있을 뿐이다.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부활소식은 이게 전부이다. 어떻게는 없다. 대중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났는가 하는 건데 말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우리의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한다. 오직 부활을 기정사실로 하고, 그다음 이야기만 펼쳐 나간다. 부활 이후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부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 21세기 오늘날도 부활은 여전히 신비의 영역이다. 우리 관심은 부활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 들기보다는 예수부활 소식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예수 부활 이후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이 어떻게 부활정신을 구현했는지를 보겠다. 바로 여기에 부활의 생명력이 있다.

이야기 전개는 이렇다. 대사제와 사두개파가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감옥문을 열고, 탈출시켜 주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여기서도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할 것이다. 한 성경주석은 "성령의 해방활동을 주님의 천사로 인격화했다"고 말했다. 그럼 됐지 않은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

▲경찰에 자진출두한 박래군, 이종회 용산참사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사진:참세상]

비슷한,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용산참사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범국민대책위가 있었다. 투쟁은 길어지고, 해결이 잘 안 되는 사이에 정권은 공동집행위원장인 박래군, 이종회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은 그만 한남동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갇히고 말았다.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두 사람은 탈출을 결행했다. 그리고 무사히 탈출해서 명동성당으로 거점을 옮겼다.

탈출경위가 궁금해서, 서울에 갔을 때 명동성당을 찾아가서 박래군씨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자세히 말하지는 않고 다만, 그냥 걸어 나왔다고 했다. 병원 앞에는 경찰이 항상 있었는데 말이다. 신앙의 차원으로 말하자면, 천사가 그들의 눈을 감겼다고 할 수밖에.
 
천사는 사도들을 풀어주면서 명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여라!"라고. 이 말을 들은 사도들은 새벽임에도 집으로 가거나 잠수타지 않고 천사가 명령한 대로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을 가르쳤다.

무슨 정신이 사도들을 이렇게 몸 사리지 않게 하는 것인가? 성전은 지배자들의 땅이지만, 그곳에는 지배세력의 선전에 놀아나는 민중이 있다. 사도들에게는 그들을 깨우치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한편, 사도들이 빠져나간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지배세력은 사도들을 심문하러 데려오라 했다. 경비원들이 갔다 와서는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한다. 그들이 당황해 하는 사이에 또 다른 수하가 와서 "그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보고를 하자, 경비대장이 즉시 달려가서 사도들을 다시 연행해 왔다.

그리고 대사제와 사두개파는 사도들을 공의회(산헤드린) 앞에 세워놓고 신문을 한다. 산헤드린은 로마와 함께 민중을 착취하는 이중 지배구조 중 한 축으로, 로마로부터 허락받은 유다의 최고 권력기구이다. 71명으로 구성됐고, 최고 두목 대사제는 황제에게 뇌물을 처발라서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상층귀족인 사두개파가 다수파이고, 평민 대표인 바리새와 지방장로가 구색을 갖추었다.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바로 사두개파의 등장이다. 이들은 뒤에서 사부작사부작 이권만 챙기는 세력이다. 그런데 어째서 앞장서서 사도들을 탄압할까? 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다.(누가 20:27) 그러나 사도들은 기회가 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다"며 예수의 부활소식을 떠들고 다니니, 방치하다가는 자기들 밥그릇에 악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나선 것이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행사할 때는 무슨 대단한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을 파헤치면 시기심 같은(5장17절) 졸렬한 동기가 작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배자들은 사도들을 끌어다 놓고 본격적으로 신문을 벌였다.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소. 그런데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소"(5:28)라고. 지배자들이 겉으로는 이렇게 점잖게 말했다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야, 베드로, 이 근본 없는 잡것아, 그리고 같은 똘마니들아,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우리 말을 씹어? 죽을래?"

그런데 지배자들이 언제 엄중히 명령했다는 말인가? 사실 사도들은 지금 두 번째 연행을 당한 거다. 적대자들의 겁박은 첫 번째 연행 때 했던 말이다. 사건은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대면했다. 앉은뱅이 거지가 적선을 요구하자, 베드로가 담대하게 선언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시오"(3장6절)라고. 이때는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지 얼마 안 된 때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베드로, 미켈란젤로 작

즉, 예수 이름은 아직 공개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담하게 이 이름을 외쳤다. 부활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놀란 대중은 벌떼같이 베드로에게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즉석 집회가 열렸고, 베드로가 대중연설을 했다. 그때 사제와 경비대장, 사두개파가 베드로를 일차 연행했었다. 하지만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멀쩡히 서 있는 생생한 증거가 있으므로 훈방 조치하면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즉 사도들은 두 군데서 명령을 받았다. 하나는 적대자들에게, 또 하나는 천사에게. 그런데 두 명령이 완전히 상반된다. 적대자들은 절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천사(하나님)는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라고. 이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너희들 말 듣는 것보다) 하나님께(천사의 말)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했다.

베드로는 예수가 잡혀갔을 때, 여종의 다그침에 예수 면전에서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정도로 비겁하고 겁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의 말에 주눅이 들거나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그들의 말을 맞받아치고 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도들이 이토록 달라진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들의 말이 보여준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5:30) 베드로는 사망을 이긴 생명의 힘에 휩싸였다. 그래서 권력자들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까지 한다. 바로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였다고. 십자가처형을 말한다. 자기를 신문하는 권력자 앞에서 그들의 잘못을 말하는 용기는 누구나 하는 행동이 아니다.
 
나도 며칠 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시대악법에 엮인 것에 분노하면서도 방어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굴하지 않고, 그들의 죄를 고발한다. 그래서 본문 다음 절을 보면, 지배자들이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부활신앙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엇인가? '두려움 없는 신앙'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예수부활 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쪽도 못 썼다. 그러나 예수부활을 전면적으로 자신들과 일치시키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예수운동의 용맹한 일꾼으로 변모했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형편은 다르다. 하지만 권력이 거짓으로 어둠을 양산하는 현실은 대동소이하다. 거기에 맞서는 길은 무엇인가?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이 선언이 나의 선언이 되기를 빈다. 그래서 이 암흑세상을 뚫고 나가는 빛으로 삼자. 이것이 예수부활의 생명력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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