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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4월13일 00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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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19) 대구와 6.25
전쟁의 흔적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1950년, 대구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따라서 전쟁의 흔적을 기념할 만한 대단한 역사유적은 애당초 있을 수가 없다.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났고 정부가 7월 16일 대구로 내려왔으니 대구는 도시라기보다는 그저 수용소 정도였다.

각급 학교를 비롯한 여러 시설들은 군 기관에 전용되었고, 밀려온 피난민들로 대구는 도로까지 몽땅 빽빽하게 메워졌다. 7월 21일에는 계성학교 운동장에서 침략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열렸다. 1954년 10월 31일에는 이 학교 교정에서 2군사령부가 창설되기도 했다. 계성학교 50계단 입구 왼편 길로 올라서면 그곳에서 2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둔 ‘2군 창설지’ 비석이 세워져 있다.

▲2군 창설지 표시 (계성고)

그러나 도시 자체가 전쟁의 현장이 아니었으므로 대구에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8일까지의 전쟁을 증언해주는 뚜렷한 역사유적이 없다. 전쟁 당시 팔공산이 북한군에 넘어가면서 시내 중구의 태평로 판자촌에 박격포탄 3발이 떨어진 적이 있고, 그러자 정부는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국민들에게는 피하라는 소개령을 선포했지만(곧 취소되었음) 그렇다고 해서 ‘없어진’ 그 3발의 포탄을 대구에 남은 전쟁 유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구 왜관철교
▲부서진 왜관철교

대구 시내는 아니지만, 전쟁의 흔적은 경북 칠곡군의 왜관철교와 유학산에 생생히 남아 있다. 서로 인접한 두 곳에 따로 전적기념관이 세워진 것만으로도 왜관 일대가 얼마나 처절한 전쟁터였는지를 한 마디로 증언해 준다. 

839m 높이의 유학산은 1950년 당시 3년에 걸친 전쟁 전체로 쳐도 1∽2위를 다툴 만큼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는 육군사관학교편 <한국전쟁사 부도>에 나오는 ‘낙동강 방어선은 서북 첨단의 왜관을 기점으로 하여 북측 면은 동해안의 영덕에 이르면서며, 서측 낙동강 본류를 따라 남강과의 합류 지점에 있는 남지읍에 도달하고… (그래서) 방어목적상 적의 진출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자, 궁극적으로는 작전의 주도권을 탈취하여 전세를 역전시켜야 할 반격의 도약대로서 절대적 의의를 지녔던 곳’이라는 표현을 통해서도 짐작이 된다. 누가 유학산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대구의 ‘주인’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유학산 전투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는 산 바로 밑 ‘다부동 전적 기념관’과, 1950년 8월 3일 북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미군이 폭파했던 왜관철교 옆 ‘왜관지구 전적 기념관’에서 방문객들에게 나눠주는 리플릿에도 ‘처절히’ 밝혀져 있다.
 
1950년 8월 5일,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은 주력인 제13사단, 3사단, 1사단, 15사단 등 군단 병력(2만1천여 명)을 다부동 일대에 투입해 호시탐탐 대구 점령을 노렸고, 백선엽 장군의 국군 제1사단과 미 제27연대가 적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200여 명의 병력으로 맞섰다.  (중략) 8월 13일부터 12일간 정상의 주인이 15번이나 바뀌는 328고지(포남리)전투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837고지(학산리) 탈환전 등 55일간 전투가 계속된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였으며, 이 전투에서 적은 1만7500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아군도 1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하략)
  
리플릿은 왜관철교 인근의 낙동강변에 대한 무참한 폭격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8월 16일 오전 11시 58분부터 26분 동안 B29 폭격기 98대가 출격해 폭탄 960톤을 왜관 서북방 67.2㎢ 일대에 융단폭격을 가해 적진을 초토화시켰다.’ 대략 교실 한 칸 면적마다 2kg의 폭탄을 투하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This bombing was recorded as the most enormous one since the World War ∐.’라는 표현도 보인다.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융단폭격이 가해졌다는 ‘증언’이다.   

▲유학산
▲유학산의 겨울

지금도 유학산에 가면 전쟁 당시의 유골을 발굴하는 현역 병사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산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의 내용도 이곳이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곳임을 잘 밝혀준다.

(전략) 유학산은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를 가장 치열하게 치른 곳이다. 8∽9월의 폭염 아래 수십여 차례의 피의 탈환전이 이곳 유학산 자락에서 벌어져 피아간에 수만 명을 헤아리는 젊고 고귀한 생명들의 희생을 가져왔다. (하략) - 칠곡군수

다부동전적기념관 앞 조지훈 시비의 ‘다부동에서’는 ‘살아 있던 사람이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고, 죽은 자도 산 자도 편안히 쉴 수 없는 땅’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대구는 전쟁의 직접적 폭격은 피해 갔으니 간고등어 냄새가 진동한 땅은 아니었다. 대구에 전쟁의 유적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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