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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3월22일 15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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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일재 선생 1주기] (1) 노동자 평의회의 길을 향하여
2010년 이일재 선생 인터뷰

뉴스민 편집국 newsmin@newsmin.co.kr

[편집자 주] 오는 24일은 지난해 향년 89세로 생을 마친 故 이일재 선생의 1주기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그는 생을 마치기 전까지도 노동자운동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해방 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과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고, 대구 10월 항쟁에 주도적인 활동을 했다. 한국전쟁 전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고, 1968년에는 남조선 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옥살이 했다. 출소 이후 민주노총 지도위원,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지도위원 등을 맡으며 노동운동에 한 평생을 바쳤다.

그의 1주기를 맞아 <레프트대구> 1호와 2호에 수록된 그와의 인터뷰를 <레프트대구>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 싣는다. 첫 번째 글은 2010년 5월 1일 발간한 <레프트대구> 1호에 실린 인터뷰 글이다. 노태맹 레프트대구 편집위원이 이일재 선생과 ‘노동자 평의회’ 운동을 중심으로 인터뷰한 글이다. 두 번째 글은 2010년 12월 3일 발간한 <레프트대구> 2호에 실린 글로, 천용길 레프트대구 편집위원이 인터뷰한 내용을 각색한 글이다.

1) 노동자 평의회의 길을 향하여
2) 오늘 우리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 [출처: 뉴스민 자료사진]

왜 아직도 ‘노동자’인가?

노태맹: 2009년에 나온 선생님의 책 『노동자 평의회와 공산주의의 길』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 책에 2004년에 스신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보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질문부터 하도록 하죠. 왜 노동자입니까? 얼마 전 어떤 글에서 민주노총 대변인이 노동자성을 낡은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즉 ‘임노동자 내지 프롤레타리아의 변혁능력을 특권화한 맑스의 변혁주체론’과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들고 이를 비판하면서, 이 두 가지 모두 근대적 담론 속에 포획되면서 발생하는 이론적 통속화의 결과라고 한 것입니다. 민주노총 간부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놀라운데, 선생님은 아직도 노동자가 변혁의 주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일재: 노동자는 노동하는 사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동자는 역사적인 개념으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의 착취의 대상인 임금 노동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대치 상태는 지속됩니다. 피지배계급으로서 노동자의 싸움은 결코 자본주의 제도 자체의 지양 없이는 해결되지 않거나 해결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본가 계급에 적대적인 노동자 계급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과 지도성의 이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노태맹: 현실적으로 노동의 분화, 계급의 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노동자라고 부르던 대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자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입니다. 이들을 우리는 단지 이들이 임금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변혁의 주체로 생각해도 될까요?

이일재: 최근 계급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다중이니 비물질노동이니 하는 개념들이 남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자본가와의 대치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형식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그러합니다.

노태맹제가 이렇게 정리해보아도 될까요? 왜 아직도 노동자 계급인가 그것은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 아직도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 생산과정에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생산의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것, 자본의 이익 추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해와 상반된다는 것, 더욱이 미시 전자기술의 생산과정으로의 도입이 확산되면서 고정자본의 회전 기간이 급속히 짧아지게 되어 자본은 노동 과정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더욱 절박해졌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계급적 적대는 실제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여전히 노동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 등등.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이일재: 그렇게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는 모든 문제를 계급으로 환원하는 계급 환원주의자는 아닙니다. 가령 여성, 환경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폐절되어도 여전히 인류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성은 우리가 버릴 수 없는 가치입니다. 노동자 계급성을 버린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의 정치 조직을 옭아매어 총자본의 의지를 비폭력적으로 관철하려는 반노동자 통일전선에 우리가 굴복한 것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가령 인민전선의 경우와 같은 것도 있습니다. 1935년 제3인터내셔널 7차 대회에서 디미트로프는 기조연설을 통해 반파쇼 인민전선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를 달래는 형식일 뿐입니다. 이로 인한 스페인에서의 인민전선은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와의 타협에 불과하였고 결과적으로 인민전선은 프랑코의 파쇼 정권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노동자 운동의 기초는 평의회 운동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도 이러한 논리들이 관철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와 노동자평의회 운동

노태맹: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우리에게 공산주의란 달성해야할 미래의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공산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길은 무엇입니까?

이일재: 저에게 공산주의는 노동자 평의회 운동입니다.

노태맹: 간단하게 정리해 주셨는데, 그럼 노동자 평의회에 대해 질문해 보겠습니다. 평의회 운동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입니다. 제가 좀 정리를 해보자면 평의회, 러시아로는 소비에트라고 불리는 이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도시 국가, 이탈리아의 자치도시인 코무네, 프랑스어로는 코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640년 청교도 혁명 당시의 병사 평의회, 1789년 프랑스 혁명기 파리의 부르주아 평의회, 1848년과 1871년 파리의 노동자 평의회 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는 평의회의 기원은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혁명기의 페테르부르그의 노동자, 병사 평의회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1918년에서 1923년에 이르는 독일 혁명 기간 동안의 노동자, 군인 평의회 그리고 최근의 전후 제3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생산에 대한 노동자 직접 통제 운동에 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일재: 그렇습니다. 이들 평의회의 기본적 특성은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지향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권력을 인수하고, 조직된 노동자 계급이 생산 과정의 지배 관리자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국민으로서 의회, 정부 또는 행정 기관이라는 정치적 우회로를 통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경제 전반에서 그리고 산업 생산에서 주체적이고 지배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평의회 사상의 출발입니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적 산업 생산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목적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 평의회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노동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는 권력기구입니다. 지도하는 사람 따로 있고, 지도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결정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실천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노동자 계급의 집체적인 목적의식을 가진 노동자 계급의 권력기구입니다.

러시아 혁명 초기 많은 공장과 정부 조직은 평의회 조직이었습니다. 그것이 스탈린 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당과 정부가 임명한 관료들인 노멘클라투라와 기술 관료인 테크노크라트들이 지배계급으로 군림하여 관리 통제 지배하여 결과적으로 다른 형태의 착취와 수탈로 변해 버렸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국가 소멸을 사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는 국가의 공고화에 불과하였습니다.

노태맹: 평의회 운동의 정치적 조직 형태는 급진적인 직접 민주주의 조직 형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이일재: 문제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생과 사회의 주체라는 원칙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개인 각자가 스스로 뜻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그것을 공동으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이 이념이야말로 전원에 관계되는 일은 전원으로 토의되고 동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접민주주의의 실천을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지도부가 사전에 청사진을 그리고 관료적 조직을 확대해서 대중을 동원하는 식의 낡은 좌익의 방식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회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요구하고 자기들의 토의와 동의에 따라 목표와 방법을 결정하는 형식으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가령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공장도 모일 수 있는 단위가 모여서 같이 협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모두 다 같이 모여서 협의해야 합니다. 관료 조직은 해체되고 노동자 위원회가 복원되어야 합니다.

노태맹: 그러나 개인들 사이에는 지적인 차이들이 존재합니다. 모두가 동일한 강조의 이야기를 하지는 못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말을 잘하거나 지식이 뛰어난 누군가에 의해 의견이 지배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일재: 우리 사회는 현재 사회 교육의 기능이 취약해졌습니다. 사회로부터의 자기 교육과 자기 형성의 장이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또 토론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깨닫습니다. 물론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다면 지적인 차이는 점점 좁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뉴스민 자료사진

평의회운동, 아나키즘, 생디칼리즘

노태맹: 평의회 운동과 아나키즘 그리고 생디칼리즘은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나키즘은 모든 고정된 조직을 거부합니다. 노동조합 없는 새로운 조직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블랑키와 프루동에 의한 무정부주의는 륄레의 평의회 운동을 통해 계승된다고 합니다. 또 생디칼리즘은 생산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를 노동조합의 수중에 놓고자 하는데 이는 독일혁명 당시의 ‘순수 경제 평의회’를 지향한 뮬러의 입장과 유사합니다. 평의회 운동과 아나키즘, 생디칼리즘을 어떻게 분리해낼 수 있겠습니까?

이일재: 간단히 아나키즘은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 평의회 운동은 총체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결정은 총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아나키즘은 자본과 국가의 폐지를 이야기하지만 이행에 대한 사고가 없습니다. 아나키즘은 국가를 장악하지 않음으로써 국가가 소멸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자체가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단일 조직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향합니다. 생디칼리즘은 프랑스 노총의 시초가 됩니다.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과 결합하면서 생디칼리즘은 아나코-생디칼리즘으로 불리는데 이것의 특징은 공장 점거와 총파업 투쟁입니다.

노태맹: 제1인터내셔널이 해체되면서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노동자 운동은 정당 중심으로 바귀고 제2인터내셔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당 건설인가 총파업 투쟁인가를 두고 아나코-생디칼리즘과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 논쟁은 로자와 레닌을 거치면서 지양되고 변모되는데, 서로 근접하는 양상을 보여 어쨌든 요즘은 서로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의회 운동이 이행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일면 이것이 지나치게 의지주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가령 로자의 붕괴론을 발전시킨 그로스만의 붕괴론을 둘러싼 판네쿠크와 마틱 사이의 논쟁을 보면 그렇습니다. 판네쿠크는 경제 위기란 노동자 계급의 주체적 행동의 객관적 결과라고 봅니다. 이러한 논의는 오페라이스모로 계승되면서 트론티는 노동 거부가 이윤율 하락을 추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마틱은 그로스만의 붕괴론을 옹호하면서 경제 위기란 노동자 계급의 주체적 행동의 객관적 조건이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판네쿠크 등의 입장은 의지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의 입장은 노동자 평의회 운동에서 노동자들의 의지주의적 요소가 얼마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일재: 의지주의는 로자가 가장 싫어했던 것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엥겔스는 인간은 가능성 있는 것만 현실성으로서 문제 삼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자생성이고 주체성입니다. 이것은 의지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평의회 운동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볼 때 평의회 운동은 부르주아지의 권력이 취약할 때, 부르주아지가 위기에 봉착할 때 자생적으로 나타납니다. 위기의 정세 속에서 평의회 운동은 생활 속에서 진화하며 자라나옵니다. 물론 그것은 당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둘째는 평의회 운동은 국가 권력을 부정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자율성입니다. 관료 조직은 없어져야 하고 그 속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노동자위원회와 현장조직의 재건

노태맹: 현재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이일재: 노동자들의 자주성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습니다. 파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중심이 아니라 노동자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가 라고 묻는다면 혁명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80년대 현대자동차 파업 때 그곳에서 광장에 모인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의회적인 형태입니다. 그 중심은 현장 조직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현장 조직들은 차기 노조의 집행부를 노리는 개개의 정치 집단일 뿐입니다.

노태맹: 지금의 노동자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 계급에 많이 착종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진정성을 추출해 낼 수 있으며, 노동 대중들의 자발성 혹은 봉기적 측면들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의 현실화 속에서 그것들은 어떻게 구성적으로 조직될 수 있을까요?

이일재: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 중심에서 노동자 위원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노동자 위원회를 중심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 속에서 스스로를 교육하고 단련해 내어야 합니다.

노태맹: 당은 필요하지 않는 것인가요?

이일재: 당은 필요하지만 국가 권력의 장악을 위한 당은 아닙니다. 중요한 시기에 그것은 참모부 역할을 할 뿐입니다. 물론 부르주아 권력이 존재하는 한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은 존재해야 합니다. 국가가 소멸된다면 그 당도 소멸할 것입니다.

노태맹: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평의회 조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이일재: 사람들은 지금 현재 노동자 평의회가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 묻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질 때도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먹혀들지 않을 어림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노동조합은 자본가와 결탁한 반 노동자적 모습을 공공연히 보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무능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변혁의 정세입니다. 이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으로 되지 않습니다. 노동자 평의회가 요구되는 정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모습은 현장 조직의 재건입니다.

노태맹: 마지막으로 후배 노동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죠.

이일재: 현재의 노동조합은 우리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부패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부르주아들의 첨병입니다. 노동조합은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들을 회유하고 감시하기 위해 합의라는 이름하에 이뤄지는 조직일 뿐입니다. 다시 노동자들에 의한 현장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앞서 말하신 것 같이 노동조합의 노동자 평의회로의 전환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노동조합이 같이 존재해도 나쁠 것은 없습니다. 다만 평의회의 정신이 노동조합으로 스며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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