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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3월20일 13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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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20)
요한복음 12:1-8 "그대로 두어라"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오늘 복음말씀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배경설명을 하겠다. 이스라엘에는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같다. 이스라엘 조상이 애굽에서 노예살이할 때, 야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출한 날이다. 그때 야웨 하나님은 애굽 땅에 처음 난 것이 모두 죽는 재앙을 내렸다. 이 재앙으로 애굽왕 바로의 맏아들부터 맷돌질하는 몸종의 맏아들과 모든 짐승의 맏배가 다 죽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집의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게 했다. 그날 밤, 야웨 하나님이 애굽의 처음 난 것을 칠 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하고 넘어갔다. 이날이 바로 유월절의 효시이다. (출애굽기 12장) 한자로 넘을 유, 넘을 월, 영어로 passover 이다. 모세는 이날을 영원히 지키라고 명했고, 이스라엘사람은 지금도 이날을 기념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바로 이 어린양에 비유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한 1:29) 이처럼 요한복음에서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와 그의 죽음을 상징한다. 오늘 복음 첫 말씀은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이다. 즉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이 예수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증언한다. 

오늘 복음 사건요지는 이렇다. 베다니에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베다니는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한참 음식을 먹고 있는데,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통째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마리아의 특별한 행위에서 주목할 쟁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매우 값비싼 향유를 한순간에 쏟아 부은 것이다. 과연 마리아의 행위는 낭비인가? 아니면 또 다른 뜻을 담고 있나?

둘째는 마리아가 향유를 발에 부은 거다. 원래 향유는 머리에 붓는다. 유명한 시편 23편 말씀에도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니"라고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마리아는 그 값진 향유를 발에 부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째, 마리아가 향유를 붓자, 옆에서 지켜보던 가롯 유다가 기겁해서 떠들었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라고.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한 데나리온이다. 일 년 365일 중, 안식일과 비가 오는 날 빼고 노동한 날이 대략 300일쯤 된다고 하면,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꼬박 일 년 품삯이다. 그런 거액을 마리아는 향유를 사서 한 순간에 쏟아 부은 것이다. 현대 자본의 세례를 받아 매사를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도 가롯 유다의 비명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게 있다. 말도 중요하지만 누가 말하느냐는 더 중요하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말의 가치는 천지차이이다. 사기꾼의 말과 진실한 사람의 말이 똑같을 수는 없다. 가룟 유다가 "왜 낭비하는가?"라고 하자, 복음저자는 특별히 가로를 치고 이런 부연설명을 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12:6) 유다는 상습적으로 공금을 횡령했다. 그런 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했다는 것은 그저 남에게 자기를 위장하는 말이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다의 속셈은 이랬을 것이다. "저 돈을 우리한테 기부하지. 그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 쓰고, 내가 횡령한 부분을 채울 텐데... 어휴, 저 칠푼이 같은 년, 아, 아깝다."

나도 매우 유사한 사례를 겪었다. 국가보안법 혐의로 나를 심문한 보안수사대 공안이 마지막 던진 질문이 이랬다. "피의자는 목회활동보다는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제주해군기지반대 등을 주장하고 목사신분을 이용하여 피의자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투쟁의식을 버리고 진정 회개하고 지금이라도 널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회빈민층약자의 아픔을 대신하는 참다운 목회자로서의 길을 갈 생각이 없는가요?"

공안이 진짜로 사회빈민층약자의 아픔을 염려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그는 그저 형식논리로 나를 자극하고 사회약자를 돕는 일과 내가 하는 일을 구분해서 이념적으로 깍아내리려는 속셈일 뿐이다. 공안말대로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은 사회빈민층약자를 돕는 일과 아무 연관없는 일인가? 지면을 많이 쓸 수 없어서 많은 설명을 하지는 못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니, 주둔군지위협정이니 하는 불평등한 조약으로 대한민국 스타일을 구기게 하는 주한미군을 내보내고, 기득권들이 더러운 먹이사슬을 수십 년 지배 할 수 있게 하는 분단체제를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이끌어내면, 불필요한 국방비와 분단비용을 선용해서, 서민대중빈민약자들의 삶의 질은 획기적으로 상승한다. 제주해군기지문제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진짜 민주주의국가이냐, 무늬만 민주주의국가이냐를 결정하는 시험대이다. 자고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는 국가치곤 민중의 삶이 편안한 나라는 없다.

예수는 가롯 유다의 태클을 제어했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마리아가 쏟아 부은 향유가 장사 날 용도라니?

오늘 복음 바로 앞 절에 그 전조가 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누구든지 그가 있는 곳을 알거든 알려달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요한 111:57) 이스라엘 권력들이 예수께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렇게 적대자들이 노리고 있는 가운데, 예수는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한 걸음씩 옮기는 중이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다. 예수 편에서는 딱 두 사람만이 그 길 끝에 죽음이 있음을 안다. 예수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어떻게 알았을까? 무엇을 깊이 사랑하고, 자신의 영혼과 에너지가 그 일에 최대한 가까이 있으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여성의 섬세한 감각이 작용했다. 예수의 죽음을 직감한 마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는가? 예루살렘행을 막는 일? 사나이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그럼, 성안에서 예수 신변을 경호하는 일? 연약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가는 마지막 길을 온힘을 다해서 기념하기로 했다. 그 결심이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으로 나타났다. 나드는 왕들이 사용하는 고급향유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마지막 길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마리아는 낭비한 게 아니라 예수의 길에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향유를 머리가 아닌 발에 부었을까? 예루살렘행 걸음이 죽음의 길임을 아는 이상, 신체 어디에 가장 애정과 경의를 바치고 싶을까? 발이다. 여성의 머리털은 존재감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신체이다. 마리아는 그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닦았다. 자기 마음을 바치는 최선의 이벤트를 연출한 거다. 자신의 행동으로 남성 중심의 잔치자리가 썰렁해지든, 성인 남녀가 신체를 접촉하는 스캔들이 나든, 구애받지 않았다. 오직 예수께만 정성을 쏟았다.

덕분에 예수는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왕이 쓰는 향유냄새에 빠져서 편안한 기분을 누렸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사람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 장면은 이곳이 유일하다. (아, 탄생 때 동방박사들이 왕의 예물을 바친 것 빼고) 나머지는 모두 예수가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푸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마리아는 예수 일생에 최고 선물을 했다.

마리아의 행위는 예수께 깊이 새겨졌다. 그래서 예수도 체포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 마리아가 자신의 발을 닦아 준 것처럼, 제자들의 발을 정성껏 닦아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발을 닦아 주었을 때, 틀림없이 며칠 전, 마리아가 예수의 발을 닦아준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처럼 마리아의 행위는 연쇄적으로 영향을 퍼뜨렸다. 

유대인들은 어린양을 잡아서 유월절을 기념하지만, 예수의 후예들은 마리아의 행위를 기억하여서, 예수의 죽음을 발과 같이 낮은 자리에서 기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침과 낮은 자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영원히 전했다.

자신을 바꾸든, 세상을 바꾸든, 고귀한 일은 거저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바치는 고결한 투신이 일의 밑거름이다. 입진보가 많은 우리 시대, 마리아의 전적인 투신 같은 행위가 있기에 그나마 우리 도시 대구가 이나마 운동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마리아 같은 동지들이여, 평안하시라.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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