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이 이다해에게 보낸 마트료시카 인형 속의 반지 선물만큼 <아이리스2>의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다. 기억상실증이라는 진부한 설정과 장난감 총의 등장이 이 드라마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공중파 TV에 방영되는 드라마가 온통 막장으로 치닫고, 배우의 연기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만큼 시시한 드라마 비평도 없고, 플롯 짜임새의 부족함을 지적할 만큼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것도 아니기에.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욕하고 싶어 안달 날 수밖에 없는 것은 드라마가 너무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불편함, 메이드 인 삼성
NSS는 첨단 기술로 무장된 요원들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등장인물 대부분은 최신 장비를 통해 영상통화, 위치추적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드라마는 친절하게도 시작 전, 광고를 포함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뜬금없는 광고의 등장은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광고를 위해 장면을 삽입한 듯 보이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요즘 드라마나 영화 대부분이 PPL을 활용하고 있기에 <아이리스2>만 가지고 욕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온갖 가전제품에 박힌 삼성의 로고는 이 드라마의 가치가 삼성전자 종합 CF라고 여겨지게 한다.
등장인물은 모두가 삼성의 갤럭시노트2 휴대폰을 쓴다. NSS에서 집단 보급해 준 것인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전송하고, 그 영상을 바라보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갤럭시노트2와 스마트PC가 이다해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장면은 남성 시청자들을 분통 터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장혁이 집에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여 놓은 장면에 스마트PC는 왜 등장할까? 그것도 부팅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하면서까지. 첨단 기술력을 강조하고 싶다면 모든 메모를 스마트PC에 해 두는 편이 나았을 터인데. 포스트잇과 스마트PC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광고를 보는 시대가 끝났음을 느낀다. 1시간짜리 광고를 보기 위해 우리는 5분의 짧은 광고로 예행연습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불편함, 민간인 사찰 불법도청, 빅브라더의 자연스러움
헐리우드 영화 문법이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도 완벽하게 이식됐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상징하는 무수한 영화들(ex.엑스맨 시리즈)은 차이를 적으로 규정한다. 차이를 지닌 이들은 사회 부적응자, 사회악으로 규정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제거해내고야 만다.
드라마 <아이리스2>에서 아이리스는 NSS의 적이다. 사회 안정과 통일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로 등장하는 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NSS야말로 시민에게는 악이다. 불법감청, 도청에 있어 이들은 한 번도 구속영장을 청구한 적이 없다. NSS가 악으로 규정하고, 작전을 수행하면 그 어떤 행위도 용납 가능해진다. 심지어 ‘적이라고 여겨지면 즉각 사살도 가능하다’고 명령한다.
7~80년대 안기부의 세련된 확장판이 NSS인가? 개인정보는 국가방위 앞에서 뒷전이다. NSS는 언제나 긴급한 상황에 놓여있고, 긴밀한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다. 이들의 임무가 한 번 실패하면 전쟁까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청과 도청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지금껏 신나게 한바탕 개인정보를 가지고 놀다가 드라마는 면죄부를 찾는다. 9회 오연수(부국장)가 긴급명령을 내리자 김영철(백산)이 감시와 통제 사회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는 장면에서. 그러나 너무 익숙해진 후다. 이 긴급상황에서 도감청을 어찌 안 할 수 있으랴.
세 번째 불편함, 미스터블랙
전작에서부터 ‘아이리스’라는 조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백산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지도 않으며, 장혁과 이다해처럼 사랑을 중히 여기지도 않는다. 아이리스는 평화를 깨뜨리기 위한 조직으로 등장하지만, 그 목적이 불분명하다.
10회에서 미국 민간군수기업의 배후로 지목되며 미스터블랙의 정체를 암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심지어 미스터블랙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드라마가 끝이 날쯤이면 온갖 위협을 뚫고 아이리스의 음모를 NSS요원들이 막아낼 것임이 분명하다. 북한과 남한, 일본에도 숨어 있다는 아이리스의 목적은 단지 평화를 깨기 위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도 그럴까?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영토가 아닌 곳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심을 종종 받는다. 10년 단위로 반복해 일어나는 전쟁을 보면 이는 의심이 아닌 귀납적 사실로 확인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투자가 이루어진 곳에서 전쟁을 만들지는 않는다. 가령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유럽 등지에서. 한반도 긴장관계 고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면 주식시장과 펀드시장을 보라는 말이 있다. 금융자본만큼 예민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미스터블랙은 이름처럼 검은 존재로 등장한다. 자본을 상징하지도, 금융시장을 상징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말세론을 펼치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처럼 갈등과 내분 조장의 이유를 감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내면을 감추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아이리스’의 존재가 현존하지 않는다고 믿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