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003년 2월 18일. 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참상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한다. 대구 도심 번화가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참사에 친인척, 지인, 친구의 친구가 희생자나 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 고통과 슬픔은 대구 시민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그 상처가 다 아물었을까? 유가족과 부상 생존자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비롯해,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인 110억 원의 국민성금, 피해자 단체간의 갈등과 반목, 무수한 지적에도 고쳐지지 않는 지하철 인력 충원과 시설 문제,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그날의 참상, 곧 완공될 도시철도 3호선의 안전문제까지, 10년째 대구 시민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이다.
<뉴스민>과 <티엔티뉴스>, <오마이뉴스>는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를 맞아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고 공동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2003년 2월18일 ‘그날’부터 2013년 2월 현재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과제를 되짚는다.
<글 싣는 순서>
① 유가족과 부상자들의 고통
② 10년째 이뤄지지 않는 그날의 약속들
③ 그날의 참사는 제대로 기록되었나
④ 대형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⑤ 10m 상공을 홀로 달리는 도시철도 3호선
- <뉴스민> <티엔티뉴스> <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안심 행 1079호 기관사는 중앙로역에서 화재발생 소식을 접하고 밖으로 나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으나 불길이 확산되자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혼자 대피했다.
마주오던 대곡 행 1080호 전동차의 기관사역시 화재가 났다는 무선연락을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중앙로역에 진입해 정차했다. 화재로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출발하려 했지만 단전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불이 옮겨 붙으면서 대참사를 초래했다.
당시 전동차 내장재는 불연재가 아니어서 화재에 취약했다. 기관사 또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승객들만 남긴 채 혼자 대피해 비난을 샀다.
시설 보완했으나 안전요원은 되레 줄어
10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승객을 싣고 달리는 전동차 안은 안전할까? 대구시와 대구도시철도공사는 560억 원을 들여 모든 전동차의 시트를 방염 처리하고 전동차 내장재를 교체하는 등 차량시설을 개선했다. 이와 더불어 역사의 안전시설도 보강했다.
비상대응 매뉴얼을 개발하는 한편 승객의 긴급 신고수단과 모의운전연습기를 개선하는 등 제도개선에도 진전이 있었다. 특히 승강장에는 방독면과 공기호흡기를 배치하고 제연(除煙=연기배출)벽을 설치, 측광타일을 붙이는 등 화재 발생 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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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 이후 대구시는 지하철 안전시설물을 확충하는데 주력했다. | | |
하지만 화재사고 당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기관사 1인 승무제’는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14년 개통될 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기관사가 없는 무인운전시스템이어서 사고발생 시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잖다.
‘기관사 1인 승무제’는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참사와 같은 사고가 났을 때 수백 명의 승객을 상대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게 한다. 기관사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데다 사고발생 시 기관사 혼자서 종합관제센터와 교신하는 한편, 승객들을 대피시켜야 해 초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
대구도시철도 59개 역에 근무하는 역무원의 수도 줄었다. 59개 역에는 현재 615명의 역무원이 근무한다. 한 개 역당 역무원 수는 평균 10.5 명이다. 이는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한 개 역당 평균 12.1명과 비교해 2명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역무원은 3개조로 나뉘어 24시간 근무를 한다. 보통 2명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인원이 전체 역을 순찰한다. 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조치할 여력이 없는 구조다.
중앙로역에 근무하는 한 역무원은 “12명이 4인 1조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나, 안전순찰활동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안전시설 확충도 중요하나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예산문제를 들어 인력 추가 배치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대구시민들, 대구지하철 안전 피부로 못 느껴
“효율성 보다 공공성과 안전성 우선해야”
지난 10년 새 대구지하철이 안전해졌다고 믿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이상식(65, 남구 대명동)씨는 “비상구 표시와 유도등이 설치됐지만 계단 입구 등에 대피 유도시설을 더 보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일영(70, 동구 신천4동)씨도 “시설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모르지만 시민들은 피부로 못 느낀다”며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방독면이나 마스크 등 안전장비가 충분하고,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지난 15일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에 앞서 담화문을 발표하고 “지하철 안전을 위해 추가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대구시를 어느 도시보다 안전한 지하철을 운행하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나 학계에서는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 부분 보다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승용 대구지하철노조 위원장은 “10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우발적인 방화로 시작됐지만 다양한 대응들이 모자랐다”며 “대구시와 공사가 경영수익만 고려해 안전인력을 추가 배치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대구지하철노조가 중앙로역 화재사고 이후인 2004년 1인 승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파업했지만 지도부 13명만 해고됐고 아직까지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구시는 시설보완보다 안전요원 확보가 더 절실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원화 경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도 “대구시가 지난 10년 동안 하드웨어에 많은 돈을 투자하며 안전 확보에 노력한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시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소프트웨어적인 안전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전동차 내장재를 불연재로 변경하면서 측광타일과 유도등을 설치하고 통신을 이중으로 하는 등 시설개선을 위한 노력은 했지만 현재 지하철역에는 유도등보다 더 밝은 광고판이 수두룩하다”면서 “안전매뉴얼도 쉽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나 그런 부분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다중이용시설은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사용이 불편하면 무용지물”이라며 “시설뿐만 아니라 행정기관, 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이 나서 안전교육 등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러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