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이야기 좀 하겠다. 이를 교회에서는 간증이라고 한다. 독자들은 인생살이에서 달콤한, 또는 격심한 유혹을 받은 적이 있나? 나는 있다. 신학을 다시 하기 전, 세어보니 17년 전 일이다.
직장일로 동료와 함께 지방에 갔다. 그런데 동료가 다른 사람을 대동했다.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인데 꽤 높은 직책이었다. 동료는 일 도움도 받고, 포교도 할 목적으로 그 사람을 데려 온 것이다. 가는 길, 오는 길이 고행이었다. 비록 세파에 시달리며 변변한 신앙인은 못돼도 기독교정체성만은 확고한 사람에게 다른 종교를 믿으라는 게 될법한가.
이 사람들은 내려가는 길에는 신사적으로 접근하더니만 의도가 통하지 않자, 올라올 때는 노골적,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우리 종교에 들어오면 인맥도 많으니까 사업도 훨씬 잘 될 것이다’는 등 여러 말로 졸라대는지라, 일도 잘 안 되는데 차라리 그 덕 좀 볼까 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유혹이 있었다. 입회서에 이름만 써 달라는 것이다. 신자의 의무, 도리,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그저 이름만 써주면 나는 나대로 한 사람 포교했다는 체면이 서고, 당신도 별로 손해 볼 것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운전 중에 너무 시달려서 남은 길이나마 편하게 가고 싶은 심정으로, 삼손이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들릴라에게 시달리다 못해서 확 말해 버린 것처럼(사사기 16장), 확 써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때 나를 막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비전향장기수 어르신들이다. 이름 석 자를 지키려고 평생 온갖 고난과 역경을 감내한 분들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요 몇 시간 시달린다고 내 이름을 팔아서야 하겠는가 하는 단호함으로 거절했다. 그 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들은 광분했지만, 묵묵히 견뎠다. 장기수 어르신들이 전향서에 이름 안 써서, 영혼을 지켰다고 말씀한 것처럼, 나도 그때 이름 안 쓴 일은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가 악마에게 유혹당하는 이야기이다. 매우 익숙해서, 교인들은 결론까지 다 알고 있다. 세 가지 유혹은 식욕, 권력욕, 명예욕을 상징한다고. 그러나 알면 뭐하나. 유감스럽게도 예수는 훌륭하게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지만, 예수의 후예들은 시험 족족 패배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의 실상은 이 세 가지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문제는 어디 있는지, 왜 우리는 번번이 시험에서 패배하는지, 그런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우선 던질 질문이 있다. 악마의 말은 맞는가이다. 그리고 이적을 행할 때, 무엇을 위해 그런 일을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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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기, 채색 삽화, 국립 박물관, 독일 뉘른베르크. 왼쪽에는 악마가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고 유혹하고 있으며, 가운데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며 유혹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악마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자신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며 유혹하고 있다. | | |
악마가 예수께 던진 첫 번째 유혹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3절)이다. 이때 예수는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몹시 시장하였다. 유혹자가 어떤 유혹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약점을 파고들어 온다. 생뚱맞게 아무거나 미끼를 던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굶주려 있는 예수에게 악마의 유혹은 너무도 솔깃했다. 그런데 진짜로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악마도 예수도 그 일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아니다. 어떤 물질이 자기 성질을 뛰어넘어서 다른 물질이 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악마는 마술을 부려 보라는 이야기이다. 마술은 실체의 변화가 아니다. 잠깐의 눈속임이다. 예를 들자. 어제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마술쇼는 이랬다. 새 장 안에 새가 있었는데, 마술사가 가림천을 가렸다가 펼치니 새가 아닌 사람이 나타났다. 그럼, 새가 사람으로 바뀐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속임수를 쓴 것이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사람들은 자기가 속은 것을 알면서도 즐거워한다. 눈요기로 즐기는 것이다. 악마가 예수께 던진 유혹은 그런 차원이다. 진짜 그렇게 해서 굶주림을 면하라는 요구라기보다는 잠시 쇼를 해서 허기를 잊어보라는 사탕발림이다. 악마는 이렇게 무가치한, 허상에 힘을 쓰게 한다.
빵을 얻기 위한 정직한 방법은 봄에 씨를 뿌려서 그 후 많은 수고를 한 후에 가을에 곡식을 추수해서 만든다. 이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놈들은 사악하게도 돌에서 빵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온갖 거짓 빵이 발생한다. 예수가 대응한 말씀,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4절)라는 말씀을 풀자면, 사람이 빵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사람은 참된 빵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악마의 말 중에 검증할 게 또 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다. 물어보자.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렇게 해도 되는가? 장엄하게 자신을 구하는 기적이나 자신을 과시하는 무엇을 해도 되는가? 사기꾼, 장사꾼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업을 수행할 때, 재능, 기적, 권세를 발휘해서 사람들을 강요하는 일을 절대 행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마케팅 잘하는 사람을 능력이 있는 종으로 떠받드는 교회현실이 위험한 거다.
악마의 두 번째 유혹은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보여주고서, "네가 나에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주겠다."(6,7절)이다.
다시 묻자. 악마의 유혹은 맞는가? 이 세상은 악마에게 속해 있지 않다. 이 세상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이런 세계를 악마가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악마가 찬탈했다. 악마의 다른 이름은 찬탈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악마는 인간의 마음만 빼앗을 뿐이다. 그래서 악마도 자기 것이 아닌 줄 알기에 트릭을 썼다.
어떤 트릭인가?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보여줬다고 했다. 항상 가짜들은 속이기 쉽도록 순식간에 처리한다. 가까이 보고, 꼼꼼히 보고, 오래 보면 거짓은 대번 들통이 난다. 그래서 가짜는 잠깐 사이에 얼렁뚱땅 지나간다. 악마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속여서 노예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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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 1255-1319)의 광야에서 유혹 받으시는 예수(The Temptation of Christ on the Mountain, 1308-1311), 나무에 템페라, 미국 뉴욕, 프릭 컬렉션(New York, Frick Collection) | | |
악마의 세 번째 유혹은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9절)이다. 그런데 악마는 유혹하는 말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시편 91:11,12이다. 골자는 "네가 뛰어내려도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너를 손으로 떠받치므로 너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악마가 하나님 말씀까지 끌어대며 유혹하니 넘어갈 법하다. 여기서 성경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각을 발견한다. 하나님말씀을 자기 편리대로 문맥을 무시하고 자구대로 인용하는 위험성이다. 내가 근본주의신학과 이를 신봉하는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도 이들이 이런 일을 단골로 범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세심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예수가 악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뛰어내렸으면 어떻게 됐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두개골은 박살이 나고, 끔찍한 형태로 죽었을 것이다. 정말 악마의 말이 유효하다면,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불쌍한 어린 학생들을 모두 이렇게 받아주면 참으로 좋겠다.
시편 말씀을 끌어들인 악마의 논리는 뭐가 문제인가? 주권자는 하나님이다.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 일부러 위험을 자초해서 하나님말씀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주권침범이다. 나와바리 침범은 어디든 용납이 안 된다.
예수가 악마에게 대응한 말씀들은 모두 이스라엘 조상이 광야에서 불신앙 사건을 겪고 난 후, 모세가 교훈으로 준 신명기(오경 중 다섯 번째 책) 말씀들이다. 먹을 게 없어서, 마실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호되게 심판을 받은 후에 나왔다. 즉 좋은 환경에서 피상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모두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나온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사람들의 형편을 모두 담을 수 있고, 살아 있고 힘이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말씀은 인생을 구원한다. 가까이하시기를.
악마는 자기 의중대로 살기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런데 그 유혹의 내용이 모두 속임수이다. 악마의 말에 진정성 있는 말은 한 개도 없다. 잠깐 동안 눈을 홀려서 판단을 흐리게 하고, 마음을 뺏을 뿐, 모두 거짓이다.
언제 유혹에 넘어갔고, 언제 나를 지켰던가? 사심에 가득했을 때와 사심에서 벗어날 때이다. 그러니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내 안을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