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003년 2월 18일. 대구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참상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한다. 대구 도심 번화가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참사에 친인척, 지인, 친구의 친구가 희생자나 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 고통과 슬픔은 대구 시민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그 상처가 다 아물었을까? 유가족과 부상 생존자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트라우마를 비롯해,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인 110억 원의 국민성금, 피해자 단체간의 갈등과 반목, 무수한 지적에도 고쳐지지 않는 지하철 인력 충원과 시설 문제,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그날의 참상, 곧 완공될 도시철도 3호선의 안전문제까지, 10년째 대구 시민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이다.
<뉴스민>과 <티엔티뉴스>, <오마이뉴스>는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를 맞아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고 공동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2003년 2월18일 ‘그날’부터 2013년 2월 현재까지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과제를 되짚는다.
<글 싣는 순서>
① 유가족과 부상자들의 고통
② 10년째 이뤄지지 않는 그날의 약속들
③ 그날의 참사는 제대로 기록되었나
④ 대형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⑤ 10m 상공을 홀로 달리는 도시철도 3호선
- <뉴스민> <티엔티뉴스> <오마이뉴스> 공동취재단 -
대구지하철 참사가 10주기를 맞았으나 사고수습과 추모사업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국민성금 670여억 원 중 재단 설립 비용으로 책정된 약 110억 원(이자 포함)이 아직까지 집행되지 못한 채 묶여있고 참사 이후 대구시가 약속했던 여러 추모 사업이 당초 약속과는 다르게 시행됐다. 또 피해자 단체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추모식마저 둘로 쪼개져 진행됐다.
지하철참사 국민성금 670억…100억 이상 묶여
대구시는 사고 발생 이틀 뒤인 2003년 2월20일부터 모금에 들어갔다. 당초 모금액은 200억 원을 목표로 시작됐다. 하지만, 실종자가 계속 늘어나고 인명피해 규모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자, 정부는 모금 목표를 2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다시 500억 원에서 7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3월31일 모금 마감 결과, 4천여 개 기업과 단체, 450만 명의 국민성금이 모여 총 672억 원을 모금했다. 정부는 사망자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해 특별위로금을 지급하고 사고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경비, 추모공원 조성, 위령탑 건설, 추모기념관 건립 및 재단 설립 등 추모사업에 국민성금을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정부는 유족단체와 부상자단체 등 관련 단체와 협의를 거쳐 신원미확인 사망자 6명을 제외한 186명에 대해 1인당 2억2천100만 원의 특별위로금을 균등 지급하고, 부상자에 대해서는 총 75억5천800만 원을 부상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했다.
이어 대구시와 희생자대책위원회는 3월31일 대구시 중구 수창동 수창공원에 추모공원을 설립하고 추모공원에 희생자 묘역, 추모탑, 안전교육관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성금 100억 원가량을 사용해 추모재단을 설립하자는 합의도 이 때 이뤄졌다.
그러나 중구 구민과 중구의회는 묘역을 포함한 추모공원을 수창공원에 조성하는 것이 지역 상권에 피해가 갈 것이라며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중구 구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대구시는 대체 지역으로 수성구 삼덕동 대구대공원 인근에 부지를 선정하고 추모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수성구민과 수성구의회도 사업 철회를 주장하면서 추모공원 조성은 표류하게 됐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추모공원 조성이 어려움을 겪자, 대구시는 2005년 11월22일 희생자대책위와 이면합의를 통해 대구시 동구 용수동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조성하기로 하고, 대외적으로는 희생자비상대책위가 추모공원 조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희생자대책위와 대구시가 당시 체결한 이면합의 내용에 따르면, 대구시는 희생자 묘역 약 4천300m²(1천300평) 부지에 192그루의 나무를 심어 수목장(樹木葬)을 하고, 추모탑과 유품전시관, 유족사무실, 2·18도서관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추모재단을 설립해 운영권을 유족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대구시, 추모사업 및 재단설립 약속 모두 뒤집어”
하지만 희생자대책위는 대구시가 이러한 이면합의 내용을 뒤집고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최근 무죄 판결로 일단락된 이른바 ‘지하철참사 희생자 유골 암매장 사건’도 대구시가 기존 약속을 깨고 희생자대책위에게 암매장 누명을 씌웠고, 추모재단 설립이 표류상태인 것 또한 대구시가 당초 약속과 달리 재단 출연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희생자대책위 윤석기 위원장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지하철참사 사망자 29명의 유골을 암매장했다는 대구시의 입장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암매장이 아니라 ‘이장’”이라며 “암매장은 남 몰래 시신을 땅에 묻는 것이다. 대구시장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장이 어떻게 암매장이냐”고 반박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둘러싼 분쟁은 대구시와 희생자대책위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암매장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민안전테마파크 인근에서 영업 중인 팔공산집단시설지구 상인들은 상권 침체를 우려해 묘역화를 결사 반대하고 있다. 유족 단체와 시민안전테마파크 인근 상인들의 충돌 또한 대구시가 참사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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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8일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식을 마친 희생자대책위는 희생자에 대한 헌화를 위해 대구시 동구 용수동 시민안전테마파크를 찾았다. 그러나 묘역화와 암매장 문제 등으로 상권 침체를 우려한 상가번영회가 헌화를 저지해 충돌이 벌어졌다. | | |
윤석기 위원장은 “추모재단이 설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대구시의 책임”이라며 “대구시는 유족회에 추모재단 운영권을 주기로 한 약속을 뒤집고, 재단운영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유족회를 범법자 취급하며 시민여론이 등을 돌리게 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구시 건설방재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여러 단체로 갈라진 피해자 단체 중 일부만 추모재단 이사로 참여하고 특정인이 상임이사를 맡아 추모재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시민 정서와 맞지 않다”며 “재단 구성에서 상임이사제를 없애고 피해자 단체들이 골고루 재단이사를 맡아야 한다는 게 대구시의 기본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구시 관계자는 “추모재단은 비영리공익재단으로 장학·학술 사업을 하는 것이므로 추모재단에 상임이사는 불필요하다”며 “이 문제가 해결되고 각종 민원이 최소화되면 당연히 출연증서를 발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자체 백서 발간 비용으로 국민성금 중 1억 원이 희생자대책위에 전달됐지만, 아직까지 백서가 발간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2003년 참사 직후 당시 피해자 대표와 중앙정부, 대구시는 국민성금 일부로 희생자대책위가 백서를 발간하기로 합의했다. 2009년 11월 대구시는 대책위에 인쇄비용 2천만 원을 제외한 8천만 원을 희생자대책위에 전달했고, 희생자대책위는 2010년 2월 백서를 출간하기로 했다. 그러나 희생자대책위가 출간하기로 한 백서는 올해 2월 현재까지 발간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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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6일 대구 중앙로역 역사에서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 발족식에서 발언하는 윤석기 희생자대책위 위원장. | | |
백서 미발간과 관련, 횡령 의혹을 비롯한 비난 여론이 희생자대책위에 쏟아졌다. 이에 희생자대책위 윤근 위원은 “대구시와 합의한 내용은 추모재단 설립, 대책위 사무실 설치, 추모벽 설치 등 여러가지가 있고 백서 발간도 그 중 하나”라면서 “그러나 대구시가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백서 집필 작업도 함께 중단됐다”고 해명했다.
또 그는 “희생자대책위에 전달된 8천만 원 외에도 다른 피해자 단체에도 1천만~2천만 원씩 백서 발간 비용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지지부진한 사태해결…피해자단체 간 갈등 격화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생겨난 피해자 단체들도 서로 갈등과 반목을 일삼으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고 있다.
현재 대구시가 인정하고 있는 지하철참사 피해자 단체는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2·18유족회,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대책위원회 등 3개 단체다. 하지만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미완의 과제들이 장기간 해결되지 않으면서 피해자 단체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갈등을 겪던 희생자대책위와 2·18유족회는 최근 두 단체를 통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희생자대책위 내부에서 갈등을 겪던 일부 세력이 희생자대책위에 반기를 들고 이탈해 3년 전 대구지하철참사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새 단체를 꾸렸다.
희생자 단체간 갈등은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이 수 년째 두 군데로 나눠 열리는 해프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경우 희생자대책위와 2·18유족회는 18일 오전 9시30분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부상자대책위와 비상대책위는 같은 시각 대구시 북구 복현동 경북대 글로벌플라자에서 각각 10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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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 및 생존자 단체는 18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위)과 북구 복현동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추모식을 각각 개최했다. | | |
각 희생자단체는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에 즈음해 사소한 언론보도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희생자 단체간 반목이 격화된 것은 특별위로금 지급 수준과 추모재단의 운영권 및 형태, 추모공원 부지 선정에 대한 이견 등 여러 측면에서 갈등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희생자대책위의 윤근 위원은 “비상대책위라는 단체는 불과 2년 전에 만들어진 단체로 대구시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단체”라며 “추모식은 물론 추모재단 설립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2·18유족회 강달원 회장은 “대구시의 제안을 수용하면 대구시는 그 때마다 다시 입장을 바꿔 피해자 단체들의 요구를 거부한다”며 “대구시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함께 뜻을 모았던 사람들조차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비상대책위 박성찬 위원장은 “희생자대책위는 백서 발간이나 위령탑 조성 등 추진 사업을 제대로 달성한 게 없다”며 “추모식도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함께 진행하자고 했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은 상태에서 자기들 문패만 달려고 해 결국 추모식을 따로 개최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성찬 위원장은 “희생자대책위가 설립하려는 재단은 ‘안전재단’의 형태로, 행정안전부는 안전재단이 추모사업을 벌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재단 형태를 ‘복지재단’의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안전재단' 형태로 재단이 설립되면 추모사업도 복지사업도 모두 하지 못하며 상임이사에게 월급만 주게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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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구시 북구 복현동 경북대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참사 10주기 추모식에서 발언하는 대구지하철 참사 비상대책위원회 박성찬 위원장 . | | |
희생자단체 간 갈등 심화는 대구시가 리더십을 발휘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구시는 반목하고 있는 각 단체 간의 대화와 협의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나, 참사 희생자와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지금까지 이 상황을 수수방관 해왔다고 지적한다.
경북대 건축학부 홍원화 교수는 “대구시는 참사 발생 당시에도 빠르게 현장을 장악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재단설립과 관련해 재단의 성격을 명확히 결정짓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애초 약속했던 추모사업도 지금까지 집행하지 못하는 것은 대구시가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지난 15일 대구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이제는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10년째 지지부진한 상태인 재단 설립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재단 설립을 비롯해 미해결 상태인 대구지하철 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나, 그동안 수수방관하던 대구시의 태도로 미뤄 김 시장이 쉽게 매듭을 풀 것으로 보는 시민은 많지 않다.
참사 10년…이제 '사고 도시'그림자 걷어내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년. 한 남성의 방화에서 시작돼 대구도시철도의 미흡한 대처가 맞물려 벌어진 이 초대형 참사는 대구를 '사고 도시'라는 오명의 그림자로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100억 원이 넘는 국민성금이 용처를 찾지 못한 채 10년 동안 묶여있고, 다시는 이런 참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맺었던 약속들도 어느새 빛이 바랬다. 그 사이 피붙이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던 사람들조차 서로 반목과 질시를 일삼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아귀다툼에 지하철 희생자들은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제 사고수습과 더불어 추모사업의 과제를 하루빨리 매듭짓고, '사고 도시'의 오명을 벗어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