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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2월13일 20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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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할머니의 상경기, “싸우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히면 돼”
8년째 이어지는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성지훈 기자 newscham@jinbo.net

설이 지났고 많은 이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바쁜 타지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고향은 ‘태어나 자란 곳’ 이상의 의미다. 국어사전도 고향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고향을 지키려 싸우는 사람들도 생겼다.

▲ 출처:참세상

“고향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

경북 밀양 산골마을 단장면과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노구를 이끌고 고향을 지키는 싸움을 8년째 이어가고 있다. 한전이 신고리 - 북경남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2006년부터다. 한전은 2006년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송하고 영남지역의 안정적 전력공급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송전철탑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전의 발표 직후부터 주민들은 싸움을 시작했다.

일부에선 보상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강짜’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일찌감치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난 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15억에 달하는 돈으로 주민들을 매수하려던 한전직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추운겨울 낮선 땅 서울 한복판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인 할머니들은 “그저 평생 살던 땅에서 살다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보상금 같은 건 상관없”단다.

짧은 연휴를 끝낸 12일, 잠시 비워두었던 한전 사옥 앞 농성장에 밀양 할머니들이 다시 짐을 풀었다. 한전이 공사재개를 알린 후 지난 달 31일부터 이어지는 농성이다. 4개 마을이 사흘씩 번갈아가면서 농성장을 지킨다. 이날은 여든을 훌쩍 넘긴 ‘덕촌댁 할매’가 농성장을 맡았다. 서울은 밀양보다 더 춥다. 할머니 건강을 염려한 이들이 “피켓시위는 말고 농성텐트 안에 계시라” 했더니 덕촌댁 할머니는 “우리 일인데 당연히 해야 한다”며 부득불 피켓을 집어 든다.

할머니들은 이 싸움이 보상금 몇 푼 더 받으려는 싸움으로 비치는 일을 경계했다. “고향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덕촌댁 할머니는 “한전 놈들은 고향이 별거냐, 정들면 고향이니 송전탑 무서우면 이사 가라고 하지만 나는 몇 대째 밀양서 살고 있다. 고향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한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덕촌댁 할머니는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오래 고향을 지켜온 그녀의 시부는 돌아가시기 전 고향산천을 잘 지키다 자손들에게 전달하라 말씀하셨다. 덕촌댁 할머니는 “이대로 송전탑이 세워지고 고향을 잃으면 죽어서 어르신들 뵐 면목이 없다”고 한다.

노구를 이끌고 삭풍을 맞는 할머니들이 걱정스러워 마을의 젊은이들이나 자녀들은 무얼하냐 물었더니 “70이면 마을에선 가장 젊은 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나마 있던 젊은 사람들은 적은 보상을 받고 떠나기도 했단다. 소 한마리 당 30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고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할머니들은 “보상을 받아 나가면 이제 고향이 없어지게 된다”며 “얼마가 됐든 고향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고. 설 명절에 만난 자녀들도 할머니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단호히 말한다. “싸우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히면 된다”고.

▲ 출처:참세상

대안을 제시해도 묵묵부답인 한전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한전 측이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려는 까닭은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영남권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는 한전 측의 주장이 억지라고 지적한다.

한전의 주장대로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의 밀양구간 공사가 완공돼 올 9월 완공예정인 신고리원전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한다 하더라도 북경남변전소에서 청도-화원-대구로 이어지는 분기공사가 여전히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청도구간 공사 역시 주민들의 반대에 막혀있어 신고리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실제 전력계통에 병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전증설과 송전탑 건설의 이유로 한전 측이 제시하는 전력난 우려도 확실하지 않은 근거에 기반한다.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기요금 등 수요예측 전제를 비현실적으로 잡아 전기수요증가율은 5차 계획보다 높게 잡아, 결과적으로 기준수요가 매우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기요금인상률을 물가인상률의 1/3로 반영하는 등 기본적인 수요예측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송전탑 대책위와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실 등이 제안한 전자파 피해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노선과 기존선로 이용방안, 지중화 송전선 건설 등의 대안도 한전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열린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공청회에서도 송전탑 관련 대책은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한전은 송전탑이 반드시 필요한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빨리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2012 국정감사, 김중겸 당시 한전사장 발언)만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송전탑 대책위의 이계삼 사무국장은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대로라면 온 나라가 원전과 송전탑으로 가득차게 된다”면서 “모두 죽자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 출처:참세상

손자뻘 용역들과 싸워가며...

밀양의 할머니들은 한전의 막무가내 공사 밀어붙이기에 맨몸으로 맞서는 중이다. 공사가 진행되던 2011년 겨울, 송전탑이 세워질 곳에 나무를 베던 용역직원들을 할머니들은 맨몸으로 막아 나섰다.

할머니들은 추운겨울, 손발이 얼어 퉁퉁 붓도록 팔팔한 용역직원들을 따라다니며 나무를 못 베게 막았다. 와중에 산길에서 넘어진 할머니들에게 용역들은 “저 자리에 불을 놓으라”고 협박을 했다고. 할머니들은 “손주뻘되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아가면서도 지켜야 할 땅”이라고 말한다.

한전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한전은 10억 상당의 금액을 들여 주민들을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역협력 사업비 지급에 따른 경과지 변경 요구에 대해서는 당초 경과지를 수용하는 것으로 하며, 마을을 경과하는 철탑 공사가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적극 협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공개된 것. 이 합의서에는 송전탑이 백지화 돼도 10억 5천만 원을 반환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어 매수혐의가 더욱 짙어진다.

한전직원들이 주민들을 만나 “국가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느냐”는 으름장을 놓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사현장을 책임진 한전직원은 주민들에게 “아무리 애써봐야 이 자리에 송전탑이 세워지지 않으면 열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또 다른 직원은 “3대가 한전에 다니지만 주민들이 싸워서 이기는 것을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단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조소다.

한전 앞에서 할머니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길 바란다”고 적혀있다. 지난 해 1월 분신한 이치우 할아버지의 동생은 “공사가 재개되면 노모와 함께 형이 죽은 밭에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상금 몇 푼의 투쟁이 아니라 삶 전부를 걸고 하는 싸움인 것이다.

덕촌댁 할머니는 “전 세계 어디를 봐도 팔십 먹은 노인들이 나라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무엇이 문제인지 높은 건물 안의 이들은 모른채 보상금만을 얘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다.

평생을 살아온 땅을 지키고 그곳에서 살다가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가장 근원적인 삶. 어쩌면 돈이나 개발이익 같은 말들은 그 근본을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낸 부수적인 것들이다. 덕촌댁 할머니는 용역들과 싸움을 한판하고 난 밤에도 손전등을 들고 밭으로 간단다. 일일이 손전등을 비추며 마늘 싹의 숨통을 틔워주는. 그녀들이 원하는 것이란 거액의 보상금이 아니라 손에 흙을 묻힌 만큼 거두며 살아가는 그 가장 정직한 삶이겠다. (기사제휴=참세상)

▲ 출처:참세상

성지훈 기자 newscha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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