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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2월05일 14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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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17)
누가복음 4:21-30 "자기의 갈 길을 가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오늘 복음말씀 줄거리 요약부터.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 갔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 1-2절 말씀을 낭독하고, 이 말씀이 오늘날 당신들에게 이루어졌다고 선포했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비참하고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은혜의 해(희년)가 선포됐다는 말씀이다. 희년은 레위기 25장에 있는 말씀으로,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모든 노예를 풀어주고, 모든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되돌려주는 해이다. 예수가 낭독한 말씀은 메시아시대에 성취될 말씀으로, 진실로 민중들이 오매불망 고대하는 소식이다.

예수께서 나름 고향사람들에게 최고로 애정표시를 한 거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고향사람들이 예수의 메시지를 거부한다.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말투에 묻어 있듯이, 예수가 별 볼 일 없는 집안이라는 핑계를 대고.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서 예수가 고향사람들의 행태를 꼬집자,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날이 안식일임에도, 극도의 증오심으로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셨다. 오늘 복음이야기 경과는 여기까지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어째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흔쾌히 동조하지 않았는가이다. 둘째 어째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증오에 찼는가 하는 점이다. 

나사렛 사람들의 행태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주후 6년에 나사렛에서 6킬로 떨어진, 갈릴리의 수도였던 세포리스에서 메시아 이름의 폭동이 있었다. 로마지배 하에 팔레스타인에는 예수 말고도 많은 메시아가 등장했고, 그를 앞세운 봉기가 늘 있었다. 그때 나사렛 사람들은 로마가 세포리스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똑똑히 목격했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뒤 나사렛은 메시아 관련 소리가 나면 들뜨기보다는 극도로 몸을 움츠리게 됐다.

나사렛 형편이 꼭 대구 같지 않은가. 1946년 10월 항쟁은 해방 이후 첫 민중항쟁이다. 그 진원지가 바로 대구이다. 미군정의 정책이 일제 때보다 더 나빠졌고, 식량난에 처한 대구 민중이 들고 일어난 게 기폭제가 돼서 전국으로 항쟁이 번져갔다. 그런 전통에 힘입어 해방 이후 대구는 야당도시로 유명했다. 그러나 저항정신이 충만했던 대구는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결정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인혁당 재판으로 8명이 다음날 바로 사형집행당하면서 대구의 민주시민들과 활동가들은 급속도로 위축당하고 말았다.

작년 11월 경북대에서 아이쿱이 주최한 이야기자리에서 서해성, 한홍구의 말로는 박정희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고향사람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본보기를 보였다고 했다. 그 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까지 정치권력이 영남을 기반으로 흘러오면서, 경제, 정치, 법조, 관료, 학계 등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주류들이 구축해 놓은 카르텔에 대구경북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관되면서, 대구는 저항의 도시에서 권력이 무엇을 해도 순응하는 퇴행도시로 변질하고 말았다.

이런 기류가 수십 년 흐르면서 유독 대구만의 정서가 만들어졌다. 첫째는 중앙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대구학부모들의 교육열도 서울 강남 못지않다. 지역과 인맥으로 구축한 카르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일단 학벌이 뒷받침해줘야 하므로 그야말로 인생을 걸고 돌진한다.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대구를 방문한 박근혜 당선인과 지지를 표하는 대구 시민들.

둘째는 권력에 대한 동경심이다. 대구경북이 오랫동안 정치권력을 장악해 왔기 때문에 그 영향이 대구민중들에게도 스며들었다. 그래서 선거만 하면 어떡하든 권력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는 강한 집단정서가 작용한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 호남보다 압도적인 인구와 선거구 덕분에 조금만 결집하면 과반을 넘기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구민중이 단단히 착각하는 게 있다. 주류가 심어놓은 선전에 고스란히 세뇌돼서, 자신의 계급과 관계없이 권력과 자신이 한 편이라는 동질감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주류카르텔에 속한 엘리트들은 무한혜택을 받았지만 대구민중이 잘 된 것은 결코 아님에도, 자신들도 엘리트들과 한 편인 것처럼 속으며 사는 거다. 이렇게 대구민중들은 주류엘리트들에게 철저히 대상화돼 버렸다. 실로 대구의 불행이다.

나사렛 회당일은 어떻게 돼 가는지 보자. 예수는 본질을 던졌다. 어둠의 세계에 하나님나라가 도래했다는 복음이 그 실체이다. 이적은 그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전혀 엉뚱하게도, 나사렛 사람들은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고작 이적이나 보여 달라고 한다. 가버나움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 나사렛에서도 해 보라고. 아, 인간들의 이 말초적인 호기심이여! 복음을 눈요깃감으로 치부해 버리다니! 여기서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라는.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설적 존재로 흠모하는 두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꺼냈다. 출처는 열왕기상 17장과 열왕기하 5장이다. 직접 열어보라. 엘리야는 극심한 흉년 중에 사렙다 마을의 과부를 먹여 살렸고, 엘리사는 아람나라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단순한 이야기만 나온다. 그런데 예수는 이 두 사건에 의미를 부여했다. 해석의 내용인즉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모두 지나치고, 오직 이방인 과부만 살 길을 얻었다고. 엘리사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를 지나치고, 오직 이방인 나아만만 고침받았다고. 무슨 말인가? 예수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적행위 이면에는 이스라엘 본토인을 배제하고 이방인을 우대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겼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나사렛 고향사람들이 나를 박대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그래서 어차피 너희는 하나님의 자비를 얻지 못하고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냉정하게 꼬집은 것이다.  

자기들 장단에 맞춰주지 않고 되레 나쁜 말을 하는 예수를 곱게 볼 대중은 없다. 결코.
 
예를 들어 내가 '어버이연합'같은 자리에 가서 설교하면 그들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온갖 쌍욕을 하고, 심지어 테러까지 자행할 것이다. 내가 예의는 차리겠지만, 그들더러 "잘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의 무지와 맹목과 이용당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말할지언정. 그래서 그들은 병 고치는 일도 삼가는 거룩한 안식일에 조금의 주저함 없이 극도의 증오심으로 예수를 죽이려고 설쳤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구구절절이 말할 수는 없으나, 투쟁의 현장에서 갈 길이 안 보일 때, 또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인생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사는 거다.

어느 시대나 하늘의 소리에는 귀를 닫은 체,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오로지 땅의 이해에만 집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그리고 다수의 입장은 여론이 되고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래서 정의, 평화, 진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늘 소수자 입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복음에 나오는 나사렛 사람들이나 오늘날 권력과 밀착해 있는 대구사회 정서는 그런 시대의 산물이다. 사람을 오직 가문과 배경, 연줄과 인맥으로만 보는 시대에서 다르게 사는 것은 참으로 고달프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한다. 우리가 누구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누가 3:22) 이렇게 하늘의 소리를 들은 사람은 결코 땅의 소리에만 순응할 수 없다. 권력이 쉴 새 없이 떠드는 거짓나팔 소리에 개의치 않는다. 오직 양심이 지시한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강정펜스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양심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것, 고독하고 두려운 것, 상식이나 다수와는 늘 긴장관계일 수밖에 없는."

대구의 민주시민들에게 요청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비뚤어진 일들이 오래가면 사람들 생각도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오늘날 대구는 고담도시가 돼 버렸다. 그러므로 왜곡된 가치가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양심에 호소하고 정의를 외치고 정의가 현장에 실현되도록 활동해야 한다. 이것은 오롯이 대구의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갈 길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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