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맑스주의는 오류이고 버려야 할 사상으로 취급받아 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한 사상은 맑스주의밖에 없다. 2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아직도 주류경제학은 자본에 대한 개념 정리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전파의 사상이 용도 폐기된 후 한계효용이론으로 무장한 신고전파 이후 주류 경제학의 대상은 생산, 분배, 소비, 유통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공급과 수요로 전환하면서 복잡한 수학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이 뭔지,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지속하고, 지금과 같이 경제위기 상황이라면 맑스주의는 여전히 현실을 해석하고 변혁하는데 유효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새움에서 진행된 맑스 직전의 사회주의에서부터 현재까지 맑스주의 흐름을 개괄할 목적으로 한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강의는 인터넷에 올려져 있다.)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맑스주의는 아주 오래된 다른 사상만큼이나 많은 분파가 있다. 이는 맑스주의가 정치적 실천운동 과정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맑스주의 내에서도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분파들이 많다 보니까 워낙 광범위하고 내용이 방대하여 그것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역사적 유물론을 교과서 형식으로 서술하지 않고 치열하게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모순에 가득 찬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고민했던 행동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 쟁점위주로 서술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맑스주의와 관련된 정확한 용어의 개념 정리는 맑스주의에 대한 많은 왜곡을 불식시키고 맑스주의에 근거한 실천과 사고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그래서 서두에서 용어의 개념 정리부터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 맑스-엥겔스의 사상, 제2인터내셔널 논쟁, 러시아혁명, 코민테른, 중국혁명, 웨스턴 맑시즘,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흐름을 현실의 실천 속에서 일어난 쟁점을 중심적으로 다루었다.
실제로 용어의 개념 정리는 의사소통에도 중요하지만, 사회주의권의 붕괴이후 용어 사용의 혼란은 현실적으로 맑스주의의 쇠퇴와 자유주의를 강화시켰다. 그래서 서두에서 개념 정리를 하고 본문으로 들어간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의 반대로 부의 사회적 소유라는 의미가 강하며 다양한 주장이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공산주의는 원래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적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점에서는 일치하며 공산주의에 비해 사회주의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고타강령 초안 비판’에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구분하고 추후 소련에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사회주의,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를 공산주의로 부른다. 한편 진보는 생산력의 발전, 거기에 상응하는 정치/문화의 발전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진보를 옹호하지만, 진보, 보수의 틀로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소련 붕괴 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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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역사 강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에서 아시아 공산주의까지, 한형식 지음, 그린비 출판, 2010. 7. 20, 정가18,000원 | | |
물론 이 책을 본다고 당시 논쟁을 모두 이해하거나, 그 논쟁들의 본질과 의미, 혹은 당시 인물들의 사상을 모두 깨달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고전들을 읽으면서 이 책에 기술되어 있는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이해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음은 맑스-엥겔스 사상과 제2인터내셔널 논쟁의 간단한 요약이다.
맑스 이전 시대에서는 정치 노선으로서의 사회주의(바뵈프, 블랑키)와 경제 노선으로서의 사회주의(생시몽, 푸리에, 프루동, 바쿠닌)를 소개한다. 저자는 여기서도 독재라는 용어의 정확한 개념을 정리한다. 독재(dictatorship)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동안의 권력사용이라는 의미가 어원에 있고 일반적으로 지배(rule)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정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 세력인 정치 체제이다.
하지만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민주주의의 부정처럼 보이면서 공산주의는 독재 옹호,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옹호로 왜곡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맑스-엥겔스 사상은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각 시기의 차이와 특징을 설명한다. ‘188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설명하려던 경제 현상은 사적 소유, 상품생산이다. 맑스는 이 현상들을 소외라는 개념을 통해서 해석한다. 그런데 이 텍스트에서는 사적 소유, 상품 생산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것이 소외를 낳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맑스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의 소외다.
논리적으로 봤을 때 소외되지 않는 원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인간의 유적 본질(인간은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계몽주의적 인간관)’이라는 관념론적 개념을 제시한다. 따라서 소외는 사회적 과정이지만 인간의 주체적 측면에서 나타나고 해결된다. 이처럼 초기에는 토대에 조응하는 상부구조에 대한 불철저와 관념론적 인간관의 측면도 나타난다.
그 후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앞의 관념적 인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독일이데올로기’에서는 소유 형태의 변화가 인류 역사의 변화 원동력이라고 인식하는 유물론적 역사 이해를 한다. 역사의 과정은 역사의 끝에 도달하게 될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목적론적 역사관(기독교, 헤겔의 역사철학)을 지양한다.
공산주의 사회는 구체적 모습이 완결된 형태로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역사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운동의 결과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자립적 영역이 아닌(그 자체로 생겨나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형태의 문제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여기에서 토대에 의해서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핵심 테제가 정식화된다.
‘프랑스 내전’에서는 ‘공산당 선언’에서는 없는 ‘노동자계급은 단순히 기성의 국가기구를 접수하여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표현이 나온다. 즉 기존의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난 후에 그것의 성격이나 내용을 변화시켜야만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에 들어맞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 맑스가 주목했던 파리코뮨의 특징은 상비군을 무장인민으로 대체하자는 주장, 행정부와 입법부 통합, 소환권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강화, 인민들의 발의권, 교회 재산 몰수, 선거를 통한 사법 공무원 선출, 노동자 보호입법, 노동자의 직접 경영, 모든 행정의 공개와 민주적 절차, 여성들의 적극 참여 등이다. 아무튼, 파리코뮨은 새로운 정치형태로 이런 특징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의미한다. 이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부르주아에 대한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기존 국가권력이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형태가 모색되는 사회주의로 가는 정치적 이행기를 의미한다.
제2인터내셔널 시기는 맑스주의의 황금기이고 동시에 맑스주의의 여러 분파가 갈라지기 시작하는 분기점이다. 특히 수정주의 논쟁, 총파업 논쟁, 반전 논쟁, 식민지 논쟁을 통해 사민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로 갈라진 시기이다. 현재 정치권 일부에서도 사민주의 논의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사민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나 개인들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전쟁에 찬성, 방관한 사민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럼 제2인터내셔널의 역사 현장으로 가 보자.
- 반전 논쟁
반전 논쟁은 독일 사민당처럼 전통적인 방어 전쟁의 논리를 주장하면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측과 총파업 등의 수단을 써서 공세적으로 전쟁 시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측으로 나뉜다. 독일에서 방어 전쟁 논리를 고수한 핑계는 러시아 때문이다. 러시아는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혁명운동을 붕괴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노동자의 파업으로 자국 정부를 약화시키면 러시아 노동운동도 같은 정도로 압박을 가해야 하는데 러시아는 노동운동이 미약해서 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가 승리, 독일 노동운동은 붕괴하리라는 점이다. 이 논리의 바탕에는 서유럽은 근대화를 먼저 달성한 보편문명이고 러시아는 후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유럽중심주의가 있다. 1907년 제2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대회가 열리고 여기서 군사주의와 국제 분쟁과 식민지 문제에 대한 결의안 2개가 채택된다. 군사주의와 국제 분쟁에 대한 결의안은 전쟁이 일어나면 노동자계급은 혁명을 일으켜서 자국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대응으로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난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은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전쟁에 찬성한다. 이 결의안을 받아들이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은 1차 대전을 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측은 서유럽 중심의 사민주의로, 받아들이는 측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완전히 나누어 진다. 즉 서유럽 사민주의 기원은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했거나 적어도 승인, 방관했던 세력이다.
- 식민지 논쟁
19세기 말부터 선진 자본주의 국가 경제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서면서 상품 시장, 원료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동원 비유럽 지역을 점령해간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대응방식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식민지 논쟁이다. 사회주의의 원칙적 입장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이다. 그러나 이 시기 제국주의 모국에서는 자본과 노동 간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었다. 지배계급은 계급갈등 완화를 위해서 복지정책을 시행한다. 식민지 수탈의 결과로 얻은 막대한 이익 일부가 복지정책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그렇게 되자 노동자계급은 의회주의, 개량주의 전술로도 충분한데 굳이 혁명이 필요하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레닌은 ‘제국주의’를 내놓는다. 제국주의 결과 모국의 노동자들 생활수준은 향상되었고 이것을 물적 토대로 해서 수정주의가 성장했다. 그래서 수정주의는 노동귀족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레닌에게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하면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성격을 변화시킨 새로운 단계로 필연적이고 본질적이다. 자본주의 모순은 선진국 내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그와 동시에 제국주의와 식민지 피억압 민중들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레닌이 수행한 이론적 작업의 의미이다. 사민주의와 공산주의는 식민지 논쟁에서도 다른 입장을 취한다. 식민주의를 찬성, 유럽 내의 사회주의 운동에만 집중했고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에는 무관심한 사민주의는 결국 제국주의에 투항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반면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진국의 사회주의 혁명과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으로 설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