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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1월19일 02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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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13)
‘최초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묘소와 기념관, 대구에 있어요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임란의병관. 대구시 동구 망우공원에 있다.

왜란 당시 전국의 의병은 2만 2천명 정도였다. 그 중 반 이 상인 1만 2천여 명이 경상도 의병이었다. 경상도 의병들은 부산포에서 한양으로 진격하는 왜군을 적의 수송로를 끊었고, 곡창 지대인 전라도 일대가 침탈되는 것을 차단하였다. ‘마땅히 나라를 위해 적을 토벌하는 것이니 적의 머리를 올려 전공을 세움은 의리상 옳지 않은 일’이라는 홍의장군의 말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오직 나라가 있음을 알았지 내 몸 있는 줄은 몰랐도다’라고 토로한 경북 고령 출신 김면 장군의 말처럼, 의병들은 당위(當爲)와 순국(殉國)으로 나라를 구했다.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부산포에 상륙한 지 불과 7일만에 (4월 21일) 대구를 함락했다. 불과 16일 후인 4월 30일에는 임금인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관병(官兵)은 믿을 수 없으니 들에 있는 자가 일어나야겠다’고 선언한 곽재우와 같은 인식을 가진 백성들이 떨쳐 일어나 의(義)롭게 민병(民兵)을 조직했다. 그것이 바로 의병(義兵)이다.

임란 발발 소식을 들은 곽재우는 바로 고향 현풍으로 달려가 선조들의 무덤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왜적들이 분묘를 발굴할까 염려한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개인 재산을 팔아 의병을 일으켰다. 대구가 함락당한 바로 그 다음 날(4월 22일)의 일이었으니, 전국 최초의 의병이었다.

대구는 왜군의 주력 부대가 북상을 할 때도 남으로 물러갈 때도 어김없이 지나간 행군로였다. 명나라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교통 요지 대구는 곡창 지대 전라도와 바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므로 군량 준비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국 군대가 번갈아 지나다닌 결과 대구 사람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대구직할시 편 <대구의 향기>는 ‘왜란 초에 벌써 왜적의 후방 기지가 되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이듬해 5월 왜군이 남으로 물러간 후에는 명의 대군이 주둔하였으므로 명군으로부터 입는 피해가 막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서사원(徐思遠, 1550∽1615)이다. 왜군의 침공을 받은 대구부사 윤현(尹睍)이 공산성으로 물러났을 때 서사원은 거기 모여든 사람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하지만 왜군의 주력 부대가 통과하고 또 후방부대가 주둔하는 대구에서 우리 의병들이 거리낌 없이 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대구 지역의 의병들은 대체로 팔공산 주봉 공산성 일대에서 활약을 했다. 서사원 의병장은 곡식 300섬을 청도의 오례산성에 보내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의병들을 돕기도 했다.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이강(伊江)서원에서 그를 모시고 있다.

서사원이 대구의 동북부에서 주로 활동한 의병장이라면, 남서부 일대에서는 우배선(禹拜善, 1569∽1621) 의병장이 두드러진다. 우배선은 전란 당시 불과 24세에다 벼슬도 없었던 관계로 그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국가 차원의 논공행상에서 ‘영남 3대 의병장’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과 함께 나란히 1등공신으로 책봉될 만큼 공이 컸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55권 27년(1594) 9월 24일 부분을 보면 임금이 ‘우배선과 안신갑 같은 자는 용감하여 선전하였으므로 수령을 삼았다’라고 말한 기록이 나온다.

 
▲망우공원에 위치한 홍의장군 곽재우 동상

왜란 때의 의병장 중에서 대구와 연고가 있으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홍의장군 곽재우이다. 장군은 대구시 달성군 현풍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묘소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다. 필마단기로 적진을 유린하고, 매복과 기습 등 다양한 전술 전략에 능통하여 ‘신출귀몰’, ‘천강(天降)장군’, ‘홍의(紅衣)장군’의 신화를 얻은 그는 국민 모두의 뇌리에 아주 익숙한 의병장이다.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신묘한 작전과 무용(武勇)으로 왜적을 줄기차게 격파해낸 그는 여러모로 ‘스타’성이 넘치는 인물이다.

홍의장군의 주된 활동 무대는 의령 일대와 그 이웃인 현풍·창녕·영산·진주였다. 장군은 1592년 5월 하순에는 함안군을 완전히 점령했고, 왜병과 싸워 연일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우(右)도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에 평상시보다 불편한 점이 없도록 하였다.

또, 10월에 있었던 김시민(金時敏)의 1차 진주성 싸움에는 휘하의 의병을 보내서 승리로 이끄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홍의장군의 활약은 왜군의 호남 진출을 저지해낼 정도였다. 정유재란 때에도 밀양·영산·창녕·현풍 등 네 고을의 군사를 이끌고 화왕산성을 고수하여 적의 접근을 막았다.

홍의장군의 생가(生家)는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에 있고, 묘소는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신당리에 있다. 그런데 홍의장군의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친 현풍(玄風) 곽씨 문중의 묘역 안에서 장군의 묘소를 찾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장군이 죽으면서 남긴 ‘예장(禮葬)을 하지 말라’는 유언 때문이다. 장례에 예식을 갖추지 말라고 하신 결과 무덤 자체에 봉분이 없어졌다. 무덤이 그냥 평지처럼 납작하다는 말이다. 웬만큼만 출세해도 축대를 구축하고 비석을 세우고 왕릉만한 봉분을 쌓으려 드는 게 세속적 행태인데, 사재를 털어 의병활동을 한 1등 국가공신의 무덤이 바로 앞에 가서도 찾기가 쉽지 않으니, 어찌 장군의 크고 넓은 뜻을 범인(凡人)이 쉽사리 흉내 낼 수 있으리오.

역사유적 답사에서 묘소 방문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를 반추하면서 오늘의 내 삶을 돌이켜보는 것이야말로 역사여행만이 가지는 장점인 까닭이다. 즉, 장군의 무덤은 대구가 가진 소중한 역사 유산이다. 달성군 현풍곽씨 홍의장군 곽재우는 ‘대구 사람’인 것이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묘소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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