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긍정하지 말라, 함부로 꿈꾸지 말라 - 뉴스민
뉴스민 로고
무제 문서
뉴스 오피니언 기획/특집 지역광장 사진/영상 주말판 노는날  
 
뉴스홈 > 오피니언 > 논설
뉴스관리툴 2013년01월14일 11시57분    
글자크기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논설] 긍정하지 말라, 함부로 꿈꾸지 말라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경멸하려면 ‘내 꿈’을 경멸하는 것부터

전근배(편집위원) re-left@hanmail.net

▲D제약 박** 광고 중에서

가치와 입장을 떠나 저는 광고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D제약에서 판매하는 대표적인 피로회복 드링크 박**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일부러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하는 이 광고가 최근 2013년 버전으로 새로 방영되었습니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광고는 “풀려라, 피로!”, “(군대) 꼭 가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000으로 산다는 것” 등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주제로 일상을 소소하게 때로는 재치 있고 감동적으로 담아냅니다. 매우 매력적이며 전달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한숨 쉬어지고, 가슴 한쪽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날개를 달아드립니다’, ‘청춘차렷!’과 같은 광고문구가 유행하고, 부작용의 위험에도 에너지음료 제품은 일약 음료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습니다. 편의점에서뿐 아니라 전국 외식업계에서도 이제 이와 같은 에너지음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경제침체 속에서 소주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린 음료가 에너지음료라니 그 위세가 대단합니다. 힐링이 일종의 ‘말씀’이었다면, 스파이더맨, 슈퍼맨, 헐크와 같은 초인들이 그려진 캔 안에는 우리 시대의 ‘실로암못(예수가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기적의 샘)’이 있습니다. 만성적인 지침과 힘듦… ‘피로’는 어느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유명사이자, 우리네 삶을 표현하는 가장 적당한 형용사가 되었습니다.

출판업계에서 꼽은 2012년 ‘올해의 책’, ‘대통령 당선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1위’로 선정된 베스트셀러의 이름 역시 <피로사회(한병철지음, 김태환옮김, 문학과지성사)>인 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질병이 있다’는 글귀로 시작하는 책을 통해 국민들은 가시적인 규율과 통제의 사회, 적대성과 부정성의 사회를 지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 자신이 살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저자는 외부적으로 강요당하거나 착취당하는 복종적 주체를 넘어 스스로를 강제하는 상태, 성과를 위해 착취자이자 동시에 피착취자가 되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가 되었음을 서술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충분히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망가지고 탈진할 때까지 스스로를 소진하게 되지만, 그 과정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용적이며,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다만 부쩍 늘어난 알 수 없는 짜증, 신경질적인 행동, 원인 모를 피로, 영구적인 우울 상태에 빠져있는 자신의 모습만 어느새 발견하지요. 사람들이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지배기구가 소멸한 사회라고 무리하게 전제하는 저자에게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논리정연한 전개, 그러나 결국 벗어날 방도가 없어 보이는, 저자의 해석은 우리를 더욱 우울의 심연으로 몰아갑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본주의의 호황기 속에서 부친이 반공이데올로기라는 뚜렷한 외부적 적대선에 기대어 ‘잘살아보세’를 외칠 수 있었다면, 갈수록 심화하는 불황기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양비론적 입장에 기대어 통합, 중도, 민생에서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인수위 출범 1주일째,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과 전문인사가 아닌 측근인사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겸허한 자세, 군림하지 않는 태도를 강조하면서도 현 정부와의 갈등 최소화를 강조하는 그녀의 행보는 여전히 비밀스럽습니다. 강정해군기지, 쌍용차 국정조사, 현대차 비정규직문제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정희의 리더십이 가시적이었다면, 그녀의 그것은 대선 이전부터 지금까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박정희의 리더십이 틀에 박아 의도적으로 모형을 만드는 묵직한 프레스였다면, 박근혜의 리더십에선 진한 고카페인의 향이 납니다.

카페인은 적당한 각성과 마비를 부릅니다. 직접 자각되지 않으며, 몸에는 해롭지만 무언가 고무적이고 긍정적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 전반에 긍정성이 만연하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존재, 부정적인 존재로 치부되어 배제되었던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노인 등의 집단은 오히려 같은 공간 안으로 들어와 ‘적당한 대우’를 같이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사회문화와 편견에 의해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객관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정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동시에 ‘(솔직히) 짐스러운 존재’로 냉정하게 놓일 것입니다. 최근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을 국민연금으로 일부 충당하면 된다는 내용이 사회갈등을 부추기자 기초노령연금 확대가 ‘객관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정서나 문화에 기댄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문제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보자는 식, 그 과정에서 정부는 약자의 입장인 듯하지만 어쩔 수 없이 중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결국 의도한 바를 끌어냅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이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희망고문은 어쩌면 그들이 찾아낸 지금 시대의 가장 적합한 통치수단입니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 에너지음료 권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한한 희망의 상징인 새마을운동을 이제 외부에서 내부로 전이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에너지음료 안 마시고, 참아보고, 의심해보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무리한 희망과 강요되는 긍정성, 과잉된 가짜를 거부해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결국 ‘내 꿈’의 덩어리입니다. 삼성과 LG 대기업 순위가 취업희망 순위인 우리 모두의 ‘내 꿈’말입니다. 틈 없이 일하고, 공부하고, 그럼에도 ‘꿈이 있으니 괜찮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라고 스스로 자위하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자각하면서도 그 외엔 달리 어쩔 방도가 없어 끝까지 가보는(설령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그것을 ‘열정’이라고 ‘희망’이라고, 어쩔 땐 ‘청춘’이라고, 결국엔 ‘인생’이라고 미화하는 사회를 경멸하려면 ‘내 꿈’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두고 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긍정이 당최 얼마나 많은 부정을 눈 감고 생겨난 것인지, 내 꿈은 또 얼마나 많은 현실을 회피하여야 꾸어지는 것인지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경멸할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가장 경멸스러운 사람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 니체

 

전근배(편집위원) re-left@hanmail.net

ⓒ 뉴스민 (http://www.newsmi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보도자료 newsmin@newsmin.co.kr

 
[논설] 실패한 검증, 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
[논설]진보 진영의 검은 수요일
[논설]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노동자민중의 과제
[논설] 청소년이 국가와 학교의 백댄서인가?
[논설]고독사, 고독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논설] ‘보통의 사회’에서 추방당하는 사람들
뉴스스크랩하기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논설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14562452  입력
다음기사 : [논설]4대강 사업, 전술적 수용 자세로 사회적 압력 행사해야 (2013-01-21 12:14:31)
이전기사 : [논설]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노동자민중의 과제 (2013-01-07 11:49:32)
많이 본 기사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최근 기사
열악한 대구 시민 복지…”복지기준선 필요...
낙동강, 맹꽁이 사라지고 큰빗이끼벌레만
청도 송전탑 공사 강행 1년, 피해 주민 “...
중구청, 대구 지자체 중 비정규직 비율 1위
국가는 유령이다: ‘유일자(唯一者)’ 막스...
“학교 급식인원 감소 예상된다”며 조리원...
민주노총 대구본부, ’10월 항쟁’ 답사 진...
삼평리 주민과 연대자, 송전탑 넘는 넝쿨이...
노조탄압 논란 ㈜오토..."시급 5,270원 알...
그리스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보여주는 열정...
뉴스민 하단메뉴
하단구분바

사단법인 뉴스민 | 등록번호 : 대구 아00095(2012.8.24) | 발행인 : 노태맹 | 편집인 : 천용길
창간일 : 2012.5.1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72-18 노동복지회관 2층뉴스민
TEL : 070-8830-8187 | FAX : 053)211-4719 | newsmin@newsmin.co.kr

뉴스민RSS정보공유라이선스정보공유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