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2월 19일은 “검은 수요일”이었다. 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에 뉴욕 증권 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했듯이,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에 한국 진보 진영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25년 두 달 전 이날에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가 터졌다면, 그로부터 25년 두 달 후 같은 날에 한국 진보 진영의 위기가 닥쳤다.
제도권 진보 진영 후보들 모두가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사퇴한 가운데, 노동자 후보로 완주한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가 각각 1만6천여 표 0.05%와 4만6천여 표 0.15%를 얻었다. 두 후보의 득표를 합친 6만2천여 표 0.2% 득표율은 1997년 권영길 후보의 30만 표에 턱없이 미치지 못할뿐더러 1992년 백기완 후보가 얻은 1%의 1/5에 불과하다.
물론 후보를 내세운 주체들마다 기대치가 달랐을 것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세력이 있는 반면, 오히려 기대를 호가하는 수치로 평가하는 단체도 있을 것이다. 또한 주체에 포함되지는 않을지라도 진보 진영을 지지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볼 때에도 이 득표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대의 아래 박빙의 열세에 있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진보 유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정당을 목표로 하는 만큼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수치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선거 기간 중에는 두 후보의 출마를 두고 비판하는 소리들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선거에 영향을 주어 그나마 미미한 진보 진영의 약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 중에는 선거 후 불어 닥칠 후폭풍에 대해 염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염려는 대개 ‘급작스럽고도 동시적인’ 출마와 관련된다.
진보 진영을 다시 세우거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동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가능하다.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정의당 혹은 진보신당을 통해 추진해나갈 수도 있다. 이들도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은 진보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종북주의로 비판받고 진보정의당이 자유주의 세력과 연대함으로써 사회주의 진영은 진보신당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수긍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주체들 밖에 있는 진보 유권자들에게 두 후보의 동시 출마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후보 선출과 동시 출마 과정에 대한 논의가 알려지지 않아 급작스러웠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그저 두 후보가 나왔으니 알아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진보 유권자들조차 객관적 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못한 것이다.
제도권 진보 정당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것이 적어도 운동 진영에게는 분명하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보여주었듯이 이러한 희망 소멸이 진보 유권자들의 판단과 일치하지는 않았다. 아직 정보를 충분히 획득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 선거를 새로운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홍보와 투쟁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는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본래의 목적에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진보 유권자들조차 진보 정치로부터 소외감을 먼저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검은 수요일’을 어떻게 벗어날지 뾰족한 해법이 없다. 제도권 진보 진영은 정당 세력화에 눈이 멀어 자유주의적 정권 교체에 영혼을 팔았고, 비제도권 진보 진영은 소그룹 엘리트주의적 폐쇄성에 갇혀 있는 듯하다. 모두 ‘내려놓는’것이 정가의 화두다. 진보 진영도 이제 모두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