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길었던 며칠이 지났습니다. 마주치는 이들의 얼굴과 그들의 SNS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의 향기에서 안타까움과 분노, 실망과 두려움이 묻어남을 느낍니다. 차선을 선택한 사람이든, 차악을 선택한 사람이든, 또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든 모두에게 같은 모습입니다.
선거 하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바뀔 것 같이 기대하였기에,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모두에게 희망의 온도계는 저녁 6시가 넘어 영하로 떨어져 버린 것 같아 이해도 가고,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고,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내일을 함께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모두 지난 5년이 힘들었다지만 5년 전은 힘들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하여야 합니다. 청년실업은 계속 증가하였고, 대학등록금은 치솟았으며,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의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군비는 꾸준히 증가했고, 공공부분에서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누군가를 위하는지 모르는 FTA는 계속 진행됐습니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유신세력의 귀환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우리는 냉정히 스스로 질문하여야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현재 집권 세력과 맞서가며 만들어 낸 보편적 복지, 노동, 인권을 보수 세력 역시 눈 감지 못하게 한 것은 1번과 2번의 싸움이 아닌 우리가 거리에서 만들어 낸 민중의 역사입니다. 민중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한 번도 민중의 이야기를 듣지도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75.8% 투표율의 상징성을 아전인수격으로 헐뜯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결과를 보고 자유의 역선택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이 삶이고 현장이라면 조금은 그 결과를 날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허히 처음부터 자신을 다듬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일부 진영의 선거대응 방식입니다. 선거는 투표행위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점을 무시하는 선거전술과 선거 과정과 결과를 두고 ‘최선을 다했다’식의 자조적 해석. 자신의 역량에 대한 냉정한 판단도 없고,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던 언어의 범람. 틀리지 않았으나, 선거라는 공간에서 조금은 다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또다시 분열과 그들다움으로 아픈 가슴에 더 큰 못을 박는 분들이 있어 아쉬움은 더욱 짙어집니다.
날이 더욱 차가워집니다.
아직 철탑에는 우리의 영혼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고, 공장의 기계 소리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비명을 찍어 누르고 있습니다. 청년의 겨울은 방한 외피 한 장으로 견디기에 너무나 어려운 계절이 됐고, 차가운 겨울에도 장애인들은 몇 대 안 되는 저상버스를 기다리며 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지난밤의 탄식이 환호로 바뀌었다 하여도 바뀌지 않았을 자명한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의 분절은 애당초 없는 것처럼 우리 삶의 시계태엽은 결국 우리의 움직임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수첩에 할 일을 하나씩 더 적어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고픈 일을 하나씩 지워나갑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더욱 꼭 손잡고,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드는 내일은 그들이 빚어놓은 어제보다 아름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