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
최악(最惡)과 차악(次惡)의 선택은 항상 우리를 무기력하게 합니다.
얼마 전, 자립생활 준비하고 있는 한 회원 활동가가 방문하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근배씨는 누구 뽑을 거에요?” 이 복잡한 물음에 “글쎄요”라고 습관적으로 답했습니다. 그 활동가는 아무래도 자신은 2번을 찍을 수밖에 없겠다며, 반드시 1번이 되진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꼽았습니다. 국회 구성이 그러니 대통령이라도… 말을 덧붙입니다. 별 말 하지 못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투표는 5분, 후회는 5년’이라며 투표하자는 분위기로 떠들썩합니다. 주말 시가지에서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청년‧시민단체의 집회와 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앞두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결의대회가 동시에 열렸습니다. 시가지는 청년 유권자들의 투표 독려 구호, 이주노동자들의 “We are not slave(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We are not animal(우리는 짐승이 아니다)"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선거유세차량에서 들리는 큰 목소리와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최신곡들이 거리를 채웁니다. 시민권의 행사를 위한 집회와 시민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목소리, 여러 잡음들이 한데 뒤섞여 이질적이면서도 오묘한 꼴라주를 만들어 냅니다. 스산한 날씨, 조용히 참석해 있다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검증되지 못한 민주주의, 검증되지 않은 ‘열망’
하나의 명제를 옳은지 그른지, 사실에 의거하여 확인하는 일을 우리는 ‘검증’이라고 합니다.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따라 인정되는 명제만이 확실하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확인할 수 없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 ‘정말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나’라는 딜레마는 항상 우리를 논란에 빠뜨립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과거와 현재의 언행들 속에서 대조하고 추측하는 것 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때문에 과거나 현재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그를 짐작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닌 유권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지금 선거의 검증이 ‘변화 가능성’에 대한 문제라면, 유력한 두 후보에 대한 그것은 이미 실패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징후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거의 시작에서는 정치적인 수사가 난무하더니, 이제는 후보 간의 네거티브 공방을 넘어 대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사기극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반값등록금 공약은 대학 구조조정을 통한 장학금 지급으로 둔갑했고, 확장된 의료‧복지정책들을 실제로 가능하게 할 재벌개혁과 부자증세는 재분배 문제가 아닌 재벌 사랑정책으로 전락했습니다. 양 후보는 TV토론을 통해 이념적인 잣대를 배척해야 한다며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인 전략과 판단이라 하기에는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대목입니다. 큰 철학적 차이가 없어 보이는 두 후보의 행보는 대선이 아닌 당내 선거를 방불케 합니다.
국민들이 요구했던 이번 선거의 대표적인 검증 잣대는 ‘경제 민주화’였습니다. 하지만 이념과 철학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던 잣대는 대척점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분명한 입장도 분간하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두 후보는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무자비한 진화가 문제였다고 지적하는 지금, 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보입니다. 새 시대, 새 정치에 대한 입장은 두 후보가 배척했던 이념에 기초해야만 가능한 것이지만, 지극히 기능적인 포장술에만 몰두하여 국민들을 현혹하기에 바쁜 실정입니다.
실패한 검증, 마타도어는 후보가 아닌 국민들이 당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기억하고, 다시 기억하고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이 TV토론을 보는 것만큼이나 개운치 않은 심정일 것입니다. 부친의 군왕지지를 가진 예사롭지 않은 공주와 컴퓨터로 자미원국을 찾고자 하는 노련한 영주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 낡은 대선정국은 자칫 열띠어 보이지만,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을 묘한 무기력함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 하지 않았음에도 두루뭉술한 표현들에 기대하다 결국 뒤통수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쉽사리 떨칠 수 없습니다.
19일이 다가오면서 어느 후보가 당선될 지 확실성은 커지고 있습니다만, 모순적이게도 정권 연장이든, 정권 교체이든 우리의 삶이 정말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통합’이란 말로 짜여졌던 이 엉성한 꼴라주가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그리고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의 선거를 통해 얻었던 교훈들을 깊이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