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떼기시장도 이런 시장이 없다. 언제부터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고 이렇게 북적거리는지 모르겠다. 선거로 세상이 바뀔 것 같으면 부르주아지는 선거 제도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런던 시장의 이야기가 자꾸 귀가에 맴돈다.
세상에 이런 매트릭스도 다 있나. 선거라는 매트릭스에 갇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멘붕시키든 문재인 후보가 거국내각을 구성하든 선거는 덫이요, 늪이요, 매트릭스일 뿐이다. 선거가 아름다운 행위라는 입 발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매트릭스에 빠질 뿐이다. 그 늪 속에서 허우적대며 우리의 엄청난 권리를 양도해 봐야 대통령 후보들은 양도세 몇 천 원 내고 치워버린다.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면 노란 옷, 빨간 옷들과 뽕짝 가요가 거리에 넘친다. 늘 보던 지긋지긋한 풍경이다. 선거라는 밀물에 밀려 동네방네 확성기, 앰프 소리로 요란하다. 선거 도우미들은 평상시 노래방에서 갈고 닦았던 실력들을 거리에 내뿜는다. 전국 노래자랑 송해 선생의 위업의 결과다.
홍수에 집안의 이 물건 저 물건이 흉물스럽게 떠다니듯 후보의 이름들이 선거판을 떠다닌다. 듣보잡 공약들과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노란색 희망도 밀물 속에 떠다닌다. 과거 많은 선거들을 치르고도 학습이 되어 있지 않나 보다. 대통령 후보들이 밀물에 떠밀려 약속한 많은 이야기들이 도떼기시장이 파한 후 썰물 따라 사라져 간다는 것을 전혀 배우지 못하고 또 다시 미련곰탱이처럼 대선 후보의 손을 잡으려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다.
지난 대선 TV 토론을 보며 멘붕에 빠진 것은 필자만일까? 초등학교 아이들도 저렇게 토론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생각일까? 방송 진행 방식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토론에 나와 원고를 읽거나 시간이 남아도 시간 쓰기를 포기하는 대선 후보들을 보며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싶었다.
유력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후보가 반드시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에 든 것이 없으면 말을 잘 못하기 마련이다. 참모가 써 준 원고도 제대로 외우고 나오지 못해 버벅거리는 대선 후보, FTA에 문외한인 후보를 보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떠올리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런데도 이런 허접한 후보들에게 자신의 수 십 년 미래를 위탁한다니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12월 19일 밀물이 우리의 안방까지 덮치고 난 후 어떻게 될 것인가. 반값 등록금, 일자리, 복지 정책 등 숱한 공약들이 12월 19일 이후 썰물 따라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그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썰물 뒤의 상황이 문제다. 썰물은 모든 것을 잠식한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에 참여하라던 안철수 전 후보의 목소리도 골목상권을 보호하자던 구호도 재벌을 개혁하자던 외침도 모조리 쓸어가 버린다.
얼마 안 있으면 도떼기시장도 문을 닫는다. 북적거리는 장날에 물건 사러 밀려들어오던 사람들도 텅 빈 장바구니 들고 사라진다. 문을 꼭꼭 닫아버린 을씨년스러운 도떼기시장의 풍경 속에 서서 다시 원점에 서야 하는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선거 이후 1년 간 텅 빈 장바구니에 담긴 몇 마리 동태들을 먹고 나면 다시 칼바람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는 장바구니에 담기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와 자본이 그렇게 장바구니를 선거 선물로 채워줄 것 같았으면 진작 퍼 담아 줬을 것이다.
썰물이 모든 것을 휩쓸어간 후 무엇을 할 것인가? 훗날에도 또 다시 선거투쟁을 할 것인가. 밀물이 썰물로 바뀐 날 지금의 선거투쟁이 지역마다 새로운 투쟁과 저항의 기풍이 형성되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