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진냥의 구성물질’을 소개합니다. 지금의 저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서요.
강철의 연금술사. 일명 “하가렌”. 일전에 소개한 <에반게리온>이 종교에 가까운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면 강철은 말 그대로 마니아가 빵빵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캐릭터 구조에 의한 매니아 형성에 관한 연구 :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캐릭터를 중심으로(이가영 외, 2006. 한국컨텐츠학회)」 등의 학술논문이 나올 정도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피규어(인형)는 물론이거니와 회중시계, 주인공이 한 목걸이 등도 다 판매된다. 의상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요등장인물들이 입는 옷이 모두 상품화되어 있어 사람들이 가진 애정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일본의 <소년 간간>이라는 월간지에 연재되었던 동명 만화가 원작이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강철의 연금술사>는 두 차례에 걸쳐 애니메이션화 되었기 때문에 인터넷에 종종 “오리지널을 봐야하나요, 리메이크를 봐야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첫 번째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의 연재가 중단된 기간 중에 제작되어서 중반까지는 원작 스토리를 따르다가 후반부는 애니메이션 제작팀이 자체적으로 만든 스토리이고, 두 번째 제작된 것은 원작의 결말을 끝까지 따르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나중에 만들어진 리메이크작이 원작 스토리고 ‘오리지널’이라 불리는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 원작과 스토리가 다른, 재미있는 말장난을 칠 수 있는 작품. 그래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뭐 굳이 따진다면... 나는 오리지널의 결말을 더 좋아한다.
어머니를 살려내려 했던 두 소년 연금술사의 이야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애니메이션은 연금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금술은 중세시대 납을 금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이자 지금의 화학이라는 학문의 원천을 제공한 일종의 사이비 과학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연금술은 대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후에 분자단위로 분해한 다음, 구조를 재구성해 다른 물체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마법 같은 기술로 그려진다. 하지만 질량보존의 법칙도 따르고 원래 분자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므로 쇠붙이에서 빵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제약도 존재한다. ‘등가교환’과 ‘순환’이 연금술의 가장 근본적인 대원리다. 그 등가교환에서 <강철의 연금술사>의 오프닝은 시작된다.
원체 유명한 작품이라 스포일러를 걱정하지 않고 스토리를 밝히자면,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이하 에드)은 12살 때 동생 알폰스 엘릭(이하 알)과 함께 죽은 어머니를 연금술로 살려내기로 한다. 친척도 없고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 지 오래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에드와 알은 아마도 슬프고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은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한번만 더 보고 싶다는 염원으로 두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았고, 연금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형제는 금기인 인체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살려내려는 작업은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알의 몸과 에드의 왼쪽 다리가 흡수당한다. 에드는 자신의 오른팔을 희생하여 알의 영혼을 갑옷에 정착시키는데 가까스로 성공하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통해 오토메일(기계신체)을 달게 된다. 어머니의 웃는 미소를 한번만 더 보길 원했던 두 형제는 이제 잃어버린 몸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에드는 연금술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국가연금술사가 되고자 하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결정을 비난한다.
“군의 개가 되겠다는 거냐?”
에드와 알에게 연금술을 가르친 스승은 군의 개를 제자로 둘 수 없다며 이들을 파문하기에 이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살고 있는 ‘아메스트리스’는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는 나라. 지금도 국경지대에는 계속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몇 해 전에는 내전이 있었고 군부정권은 국가연금술사들을 병기로 동원해 대규모 살상을 명령했다. 군인 신분인 국가연금술사들은 명령에 불복할 수 없었고 결국 전쟁에 동원되어 반란군인 이슈발인들을 인종청소 하듯 죽인다. 특히 ‘불꽃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로이 머스탱은 불을 조절하는 연금술사로 내전에서 큰 공로를 세워 '이슈발의 영웅'으로 불리지만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그래서인지 로이 머스탱은 언제 다시 내전이 터질지 모르는 이 나라에서 어린 에드가 국가연금술사가 되는 것에 마음 아파하며 도움을 주곤 한다.
로이 머스탱뿐만 아니라 전쟁에 동원되었던 국가연금술사들은 끔찍한 악몽과 가책에 시달린다. 전투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던 암스트롱 소령은 상부의 명령을 어겨 승진도 막혔지만 동료를 두고 도망쳤다는 아픔을 안고 산다. 그의 모습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군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전쟁의 처절함... 자꾸만 오버랩되는 현실
한편, 몸을 되찾기 위해 국가연금술사가 된 에드는 언제 전쟁터로, 군대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은 한국의 징병제를 떠올리게 한다. “군의 개가 될 셈이냐?”라는 반복되는 물음. 그리고 그저 그렇다는 말 외에 설명하지 않는 에드의 모습은 징병제 병영국가인 한국에서 비징집대상인 내가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굉장히 처절하다. 후반부에서 나는 매회 엔딩곡이 나올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독하다. 독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전쟁의 불안감은 점점 높아지고 그 전쟁이 의도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이 얼마나 무가치하게 여겨지는지를 분노가 아닌 처절함으로 말하는 하가렌.
힘을 얻고자 하는 집단은 사람들의 생명과 영혼으로 현자의 돌을 만들어 전 도시의 지하를 거대한 연성진으로 만든다. 무수한 죽음으로 만들어진 연분홍빛 현자의 돌이 지하에 흐르는 모습은 석유에 대한 욕망으로 일으키는 전쟁과도 흡사하다. 역사에 존재한 그 무수했던 전쟁 중에 지배세력의 탐욕이 아니라 정말 서로를 증오해 일어난 전쟁이 몇이나 있겠는가.
<강철의 연금술사>는 인간의 몸을 가지지 않은 알과 몸은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은 호문쿨루스(인조인간)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전쟁과 생명, 진리에 대한 추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는다. 또 대가는 어떻게 치러지고, 삶은 무엇인가 등 어려운 질문을 수두룩하게 담고 있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라인이 깔끔하게 전개되어 작품의 완성도 자체가 높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도 일본 만화에서 빠지지 않는 여성의 몸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드러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이 애니를 몰랐다면 내 인생의 20% 정도는 채워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사람에 대한 그리고 누가 전쟁의 대가를 치르는가에 대해 가르쳐준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