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무너진다. 그래서 오늘 복음말씀인 마가 13장 1,2절은 마가복음의 집필연대가 언제냐에 대해 중요한 단서가 담겨 있다. 즉 성전에 대한 예수와 제자의 대화 장면이 장차 닥칠 비극을 예고하는 예언이냐 아니면 이미 닥친 비극을 서술하는 보도냐에 따라 복음서의 집필연대가 달라진다. 만일 13:1,2을 예언으로 본다면, 아직 성전이 무너지기 전이므로, 마가복음서는 70년 이전에 집필하였을 것이고, 반대로 보도로 본다면, 성전이 무너진 뒤이므로, 70년 이후에 집필한 셈이 된다.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기 전이냐 후이냐를 명확히 할 수 없어서 신학자들은 뭉뚱그려서 마가복음 집필연대를 70년경이라고 해왔다.
하지만 집필연대가 언제냐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서 관점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예루살렘 멸망이후라고 해석한다. 근거를 대자면 우선 성경은 앞날을 점치고, 들어맞으면 신통히 여기는 점쟁이 책이 아니다. 절체절명 위기상황에서 해답을 찾기에도 늘 숨 가빴다. 무엇을 미리 예고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또 하나는 신명기역사가의 관점이다. 신명기역사가는 바벨론포로 이후 이스라엘이 왜 망했나를 반성․회고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재조명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여호수아서부터 열왕기서까지 역사서라 불리는 책들이다. 마가복음 역시 신명기역사가의 관점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 후에 반성회고 형식으로 유다교를 극복한 대안예수를 조명했다고 본다. 일의 결말이 다 끝나야 정확한 회고와 평가를 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복음말씀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이 성전을 보면서 자랑한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13장 1절) 그런데 예수는 그 성전을 단칼에 부정한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13장 2절)
마가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은 참 철딱서니가 없다. 앞 절에서(12장 15절-19절) 예수는 성전전복사건을 일으켰다. "내 집(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라면서 장사꾼들을 내쫓고 상을 둘러엎었다. 결정적으로 그 일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자기들 스승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규탄하면서 성전의 진정성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금세 잊어버리고 성전 자랑질을 하니 말이다.
그만큼 헤롯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대단했다. 순례자들이 먼 길과 사막을 넘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예루살렘 근방에 이르렀을 때, 저 멀리서 찬란하게 빛나는 성전건물의 위용을 보고는 감탄하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경배했다고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백성들의 신심을 유발하는 성전을 지은 사람은 헤롯대왕이다. 헤롯은 오직 폭력으로 백성을 지배했다.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꼭 박정희 유신 때와 같다. 비판은커녕, 불평만 해도 잡혀가는 시대였다.
차지철이 "각하, 캄보디아에서는 삼백 만 명도 죽였는데, 우리도 탱크를 밀어붙여서 한 백만 명 죽여 버리면 됩니다"하니까 박정희가 동조했다지 않는가! 인혁당 열사들과 무수한 긴급조치위반자들은 그런 공포정치의 희생양이었다. 우리가 그런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 헤롯도 그렇게 백성들을 살육하며 공포통치를 했다.
한편, 권력의 화신 헤롯은 백성의 환심을 사려고 대형공사를 많이 벌였고,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공사였다. 크기는 솔로몬 성전의 두 배였고,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 올렸고, 건물외벽을 황금으로 발랐다. 벌써 싹이 노랗지 않은가! 최악의 권력자가 최고의 성전을 지었다는 이 지독한 역설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가 성전을 단칼에 부정하니 제자들이 충격 먹었다. 그래서 조용한 자리에서 물었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13장 4절) 제자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관심사도 항상 특별한 때와 특별한 징조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예수는 동문서답식으로 답한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3장 5절) 특별한 때와 징조는 따로 없고, 문제는 일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이다.
예수는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13장 5절) 라고. 즉 가짜 메시아에 속지 말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또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도, 놀라지 말라."이다. 즉 전쟁소문에 놀라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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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한복음2:19~21 예루살렘 건물성전을 허물라. 베드로전서4:17 마지막때 교회들의 멸망 | | |
가짜 메시아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허황된 약속으로 판단을 흐리게 하고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탐욕만 취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간다.
기원전 587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꼭 이랬다. 백성들은 전쟁 때에 성전이 이스라엘을 지켜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에 빠져버렸다. 희한하게도 그럴 때마다 부추기는 거짓예언자가 있다. 오늘날 권력과 자본에게 기생하는 무수한 빨대들이 있듯이.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절규했다. "이것이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주님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라"라고.
그러나 이렇게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는 되레 백성들의 미움을 사서, 붙잡혀서 살해의 위협을 당한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겠다고 했을까!(예레미야 5장 1절) 결과로 말하자면 예루살렘에 옳은 사람 한 명이 없어서 망한 거다.
하나님이 찾는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화려하고 우리 귀를 달콤하게 할지라도, 약자를 위하지 않고 오직 기득권세력에만 붙어서 나팔 부는 소리라면, 게다가 검증해보니 거짓투성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대세라 할지라도, '아니오' 하고 거부하고 양심과 정의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이다.
또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는 전쟁만한 소식이 없다. 오히려 독재자에게 전쟁이나 기근재난은 호재이다. 백성들을 합당한 명분으로 발가벗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세력과 거기에 기생하는 매체들은 진실을 숨기고 거짓나팔을 열심히 불어대는 데다가, 분별력 없는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가기 때문에, 건전한 상식과 이성으로 판단할 때는 턱도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거짓영에 휩싸여서 집단광기를 발휘한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보지 않는가! 독재자의 딸이자 역사의식이나 민주적 소양은커녕,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안 된 후보가 흔들리지 않는 고정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을!
그러므로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사람들 마음이 무너져 버렸다.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현상일 뿐이다. 역사의 교훈도 마다하고, 약자의 처지도 외면하고, 정의는 시궁창에 내다버리고, 가짜메시야 출현이나 전쟁소문에 부화뇌동당하고, 집단광기나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예루살렘성전을 자랑하거나 무너진 일을 애통할 것도 없다. 이미 사람세계가 망가졌는데, 성전이 대수이랴.
대선이 코앞이다. 영남사람들이 자랑하는 성전은 무엇인가? 역대 대통령들이 영남출신이라는 것? 참으로 부질없는 자랑이다. 지난 대선 때 분별 못하는 유권자들은 이명박이 구세주라도 되는 양 묻지마 투표를 했다. 그 선택이 나라를 말아먹은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을 하는가? 반성은커녕 여전히 같은 선택을 반복하겠다는 집단광기가 맹렬하다.
그렇다면 아직 끝은 아니다.(13:7) 우리에게 닥치는 비극은 진통의 시작일 뿐이다.(13:8) 벗어날 길은?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