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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10월26일 13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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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현의 그 노래를 들어라] (11)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
송전탑에 오른 현자비지회 동지를 생각하며

신경현(시인, 노동자) jinbo73@hanmail.net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
-송전탑에 오른 현자비지회 동지를 생각하며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
또 다른 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펼쳐져있던 발 밑은
언제나 무서웠고 세찬 물소리에 정신은 혼미해졌다
뒤를 돌아보면 늘 굶주린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움직임이 사지를 조여 왔고
어디에도 사람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잃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꿈 치곤 너무나 가혹했다
다시 기를 쓰고 문을 열고 나갔지만
역시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멀리 공장의 기계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기진맥진한 숨소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은 안으로 잠겨 있어
식은땀을 흘리며 퀭한 작업등 아래를 오가는 그림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갇혀 있었다
밝은 대낮이건 깜깜한 밤이건
그 곤한 그림자들의 행동반경은
작업등 그 시린 불빛 아래 멈춰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자들이 꾸는 꿈 또한 악몽이기 일쑤여서
늘 서로의 얼굴에 말라 붙은 식은땀을 닦아주면서
길고 긴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답답하고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어도
곧 다가올 겨울 칼바람 앞에
덜렁 내던져지는 것이 무엇보다 두려워서
실체를 잃어버린 그림자들의 노동은
앙상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 문은 잠겨있었을까
누가 그렇게 기를 쓰고 이 문을 잠궈 놓았을까
곰곰이 따져 물어 볼 시간도 없이
갇혀 지낸 날들이 왜 억울한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림자들, 오늘 밤도
흥건한 땀에 젖은 채 되풀이 되는 악몽을 꾸러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데 이 계절엔...
그러나 이 계절에 노동자들은 살이 찌기는커녕 피골이 상접할것 같은 배고픔에 신음하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을 보면서 붉은 눈시울을 흘리는 노동자들이 넘쳐 난다.
김밥을 싸들고 산으로 들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 소풍도 가고 가끔 책도 읽으면서 한가로운 가을 햇살을 맘껏 마셔도 좋을 이 계절에 가난한 민중들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마른 기침을 하고 있다.
울산의 자동차 공장에선 몇 년을 비정규직 철폐의 염원을 담아 싸워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가서 처절한 농성을 하고 있다.
심야 노동철폐를 하자고 회사와 합의한 유성기업의 지회장도 수십미터 고공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회사측의 노조탄압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농성을 하고 있다.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약탈과 자본의 착취아래 시인은 오늘도 서정시를 쓰지 못하고 날선 저항시를 쓴다. 참혹한 세상에서 이 가을의 서정은 또 다시 다가올 저항과 혁명의 분노의 한 지점으로 오고 있다. 모두들 바쁘시더라도 이 가을, 피눈물 넘쳐 나는 노동자 민중의 고통에 한번쯤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도 함께 내주시길 바란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jinbo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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