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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10월24일 12시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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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공부 못하면 서서 일한다”
[기고] 갤럭시노트 만 개 만들었는데...난 살 수가 없었다.

아요(인권운동연대) friendya13@naver.com

어릴 적, 아빠가 밤늦게 술 먹고 들어오는 날이 싫었다. 술 냄새가 싫었고, 흐트러진 모습과 혀 꼬부라진 말로 주저리주저리 잔소리 같은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그때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잘 들어 이놈아...너 공부 못하면 서서 일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그냥 귓등으로 스쳐버린 이 말이 다시 떠오른 건 세상을 바꾼다는 ‘노동자’의 집회 현장에서였다.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관리자라고 불리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가리켜 ‘앉아서 일하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서서 일하는 사람과 앉아서 일하는 사람, 노동자와 회사원, 공장은 서서 일하는 곳이고 회사는 앉아서 일하는 곳이었다.
 
아빠의 염원대로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대학진학률이 80%인 ‘좋은’ 시절을 만난 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운동’이라는 것을 만났다. 독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별로 납득되는 이유도 없었지만, 모두가 읽어야 한다기에 ‘전태일 평전’과 ‘자본론’을 보게 되었다. 타고난 냉소주의자인 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붉은 희망을 가슴에 품지 못했지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백 년 전 세상과 삼사십 년 전 세상이 이렇게 같다니! 저 멀리 영국과 한국이 어찌 이리 같단 말인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일하는 아이들, 온 가족이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 이런 소름 끼치는 평행이론... 그러나 학문의 열정을 불태우며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보고 싶은 호기심을 가로막은 사건이 생겼다. 사글세(열 달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것으로 전세와 함께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한국의 독특한 주거임대형태)를 내야 하는데 모아 놓은 돈이 없었다. 급하게 2주 휴가를 받아 돈 벌러 갔다.

주변 인맥을 이용해 들어간 공장은 삼성 갤럭시노트 10.1의 판떼기(몸체 뒷판)를 만드는 도장(페인팅)공장이었다. 삼성의 하청 구미 공장에서 다시 하청을 받아, 일류기업 SAMSUNG이라는 로고 인쇄 작업은 공장 내에 또 다른 업체에 하청을 준다. 내가 하는 업무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 앞에 서서 플라스틱 판떼기를 빠짐없이 꽂는 것이다. 빠뜨리면 안 된다. 실수하면 무조건 안 된다.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아침 8시 반까지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했다. 물량이 많으면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 출근하면 오늘 만들어야 할 물량이 미리 정해져 있다. 그것을 반드시 끝내야만 퇴근할 수 있다. 하루 14~15시간을 꼬박 서서 일한다. 한 제품 라인이 다 돌아가면 쉬는 시간 10분 정도가 주어지는데, 화장실 갔다 오거나 물 한잔 먹기에도 빠듯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비로소 공장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거리의 나무와 꽃도 볼 수 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점심시간 동안은 종일 옆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와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정말 ‘찢어질듯’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만큼 아프던 다리가 3일이 지나니깐 적응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 ‘역시 단순반복적인 일이 나에게는 맞다’면서 지인들에게 나의 놀라운 적응력을 자랑할 때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통성명하고 관리자들과도 친분을 쌓아갔다.

‘내가 너(갤럭시노트)를 하루에 만개를 찍어 내도, 난 너 하나를 살 수가 없구나..이것이 바로 소외라는 것이구나...’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하루하루 깨달음의 나날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웃으면서 일하는 나에게 몇몇 관리자분들은 인력용역업체를 통해 직원으로 들어오라는 러브콜을 보내주었다. 나의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으로 나의 공장생활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좋지만, 임금체불이 계속되고 있고 부도가 난다는 소문이 무성한 이 공장을 삶의 터전으로 믿고 살아가기에 마냥 웃으며 일할 수 없을 것이다. 공장을 떠나는 날, 내가 웃으며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딱 2주 동안만 일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미안했다.

나는 ‘잠깐’ 일을 하러 여기 공장에 온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장 라인 앞에 서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삶을 난 단지 ‘관찰’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나의 동료는 웃으며 일한다고 칭찬받는 내가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 토요일, 일요일 일하면 돈이 더 붙는다고 ‘기꺼이’ 일하려는 나 같은 일회용 노동자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장시간 야간노동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공장은 “그래? 너 나오지 마!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아”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마찌꼬바(영세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삶은 불안정하다. 하루 이틀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않는다. 다음날 용역업체에서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그만두는 사람은 또 다른 공장을 찾아 떠나지만 별 차이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삼일도 못 채우고 떠나는 사람을 두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짧은 공장체험으로 나에게 무엇인가 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뀐 것이 있다면 출근길에 잠깐이라도 자리가 나면 앉으려고 달려간다는 것이다. 정말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리가 아파서 도무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도 아줌마, 아저씨가 타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데... 저렇게 종일 일하고 집에 가서 또 일하시겠지... 저분들도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면 서서 일해야 된다고 말씀하실까?’

우리는 힘들고 위험한 노동에 대해 그런 노동을 바꾸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고 나와 내 자식이 그것을 피하기만을 바란다. 매일매일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가 자식만은 ‘노동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야간 일을 마다치 않는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우리 삶이 다른 이들의 노동을 통해 이뤄지고 모든 노동은 소중하다는 것을 아빠가 직접 이야기해 줬다면 어땠을까? 누구보다 이 세상을 정직하게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노동자라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술주정으로 이야기해 주었더라면, 나는 아빠가 마시던 소주 맛을 조금은 더 일찍 알았을까? 작은 아쉬움과 큰 변명을 해 본다. 아직도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 것을 속상해하는 아빠에게, 내가 이 일을 하기에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음을 아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 역시도 아빠처럼 지나가는 말로 우물쭈물할 테지. 예전에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요(인권운동연대) friendya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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