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강정평화대행진때 일이다. 밤새 얼려놓았던 생수병이 한 시간도 안 돼 다 녹아버릴 만큼 날씨가 뜨거웠다. 제주도를 일주하면서 해군기지건설반대와 백지화, 전면재검토를 널리 알리는 취지가 아니라면 모두들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걷다보니 나중에는 걷는 것만도 힘에 부쳤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깃발을 들었는데, 그것도 다른 이에게 넘겨줬다. 그때 절감했다. 길을 걸을 때는 자신을 최대한 비워야 한다는 것을.
강정평화대행진의 경험을 살려서 지금은 '2012 생명평화대행진' 이름하에 전국 주요도시를 순례하고 있다. 순례단은 10월 5일 제주도청에서 출정식을 갖고 11월 3일 서울광장이 마지막 일정인데, 마침 10월 16일(화) 대구를 들렸다.
예수는 제자들을 파송할 때 명하셨다.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옷도 두 벌 가지지 말라"라고.(마가 6:8-9) 이 말씀은 여러모로 실제적인 교훈이다.
제자도를 수행하려면 세속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고, 최대한 단촐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는 소유하기보다는 빌어먹는 게 가장 좋은 처세다.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빌어먹을 수 있다. 실제로 낮 기온이 43도를 오르내리는 팔레스타인 더운 기후에서 항상 길 위에서 지내려면 거추장스럽게 지닌 것 없이 가벼운 몸이어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말씀의 핵심개념은 길을 떠나는 데 있다. 본문이야기의 시작도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일어났다. 즉 오늘 성경말씀 해석의 기조는 '길 떠남의 관점'이다. 이때 한 부자청년이 달려왔다. 그리고 거창하게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자청년의 질문은 길 떠나는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는 청년을 타박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예수의 속마음은 이렇다. "그런 호칭은 나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다. 우린 모두 길을 떠나야 할 뿐이다. 나도 길 떠나는 순례자일 뿐이다."
그래서 대답도 형식적으로 한다. 십계명 중, 사람관계 계명을 말씀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순서도 안 맞고 십계명이 아닌 것도 있다. 6.7,8.9 계명 다음에 5 계명을 말씀한다. "속여서 빼앗지 말라"는 계명도 아니다. 예수는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한 답이라기보다는 그저 사람의 기본 도리에 대해 말씀했다. 그냥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이 정도 의미이다. 대강 응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자청년이 뜻밖의 대답을 한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제야 예수는 이 부자청년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부자청년의 대답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부자청년의 대답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계명정신에 비추어 볼 때, 계명을 다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의 산상수훈(마태 5-7장)을 기준으로 검증해 보자.
예수는 살인금지 계명을 확장했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의회에 불려간다,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다.(마태 5장 21-22절)
또 간음에 대해서도 말씀하기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라고 했다.(마태 5장 28절) 도둑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부자는 훨씬 더 우아하고 교묘하게 남의 물건을 획득한다. 사회제도와 법이, 공권력이, 기득권이 재산이 늘도록 도와준다. 부자가 굳이 자기 손으로 남의 물건을 훔칠 필요는 없다.
예수의 율법해석은 자구에 매여서 율법정신을 엉뚱하게 적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율법 규정대로 하더라도 자력으로 구원얻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또한 세상 물리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조금이라도 깊게 생각한다면 감히 계명을 지켰다고 말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도 예수는 이 부자청년에게 애정이 갔다. 무릎을 꿇는 겸손한 태도, 마음을 열고 답하는 열정이 갸륵했다. 그래서 그 부자청년에게 꼭 필요한 처방을 한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기왕에 부자청년이 영생 얻는 길에 대해 물어봤으니, 예수도 진심으로 답을 줬다. 예수는 재산을 버리고 따르라는 말씀을 상황을 생각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진리로 말씀하는 게 아니다. 십계명의 피상성으로는 닿지 못하는 생활의 실제부분으로 파고 들어감으로써 부자청년이 생각하는 유대교의 법 지배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길을 떠나려 한다. 너 영생에 대해 물었지? 그럼 너도 길을 떠나면 돼. 그런데 길을 떠나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 다 필요 없잖니? 그러니 그 재산은 팔아서 가난한 사람 주면 어떻겠니? 그럼, 네가 진짜 영생을 얻게 돼.(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야)"
하지만 부자청년은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고 했다.
이 부자청년을 보면서 딱 떠오르는 일이 있다.
왕성교회 길자연씨가 당회에서 세습결정을 한 후에 인터넷매체 뉴스앤조이가 20년 다녔다는 그 교회 집사와 인터뷰를 했다. 요지는 '세습을 반대한다' 이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세습이 확정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답하기를,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이 신앙생활 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했다. 세습을 단절시키려면 교회의 물적토대를 끊어야 하고 그러려면 세습하는 교회냐 천국이냐를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천국대신에 세습교회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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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앤조이 [인터뷰] 20년 넘게 왕성교회 다닌 ㅂ 집사의 고백…교인 배제한 청빙 안 된다 기사 캡쳐 | | |
부자청년이 진정 길을 떠나려면,(영생을 얻으려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적토대를 끊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아서 끊지 못한 것처럼, 이 집사도 똑같은 태도로 왕성교회의 불의한 구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부자청년이 돌아간 후 예수 심정이 어땠을까? 허탈이 쓰나미처럼 몰려 왔다. "괜히 말했다. 헛심 썼다." 어떻게 아냐구?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이 말씀을 두 번이나 한다. 23절, 24절, 연거푸.
25절에 나오는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비유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유대식 비유법이다. 여기서도 예수의 자책이 물씬 풍긴다.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다니! 그게 된다면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겠지!"
나도 이런 경험이 많다. 근본주의교회에서 안주하고 있는 청년들을 좀 구출해보려고 심혈을 기울여 말해보지만, 그때뿐이다. 부질없는 짓 했다는 허탈감이 뒤따른다. 그들은 진리를 향해 허허벌판에 서는 것보다 그들 간의 인적네트워크가 더 좋은가 보다.
기독교에서는 신자를 영원한 본향이 따로 있는 나그네라고 말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빌립보서 3장 20절)라고 했다. 기독교인은 인생 자체가 길을 떠남에 있다. 먼 길을 가기 위해 자기를 비워야 한다. 물론 지금 이 말씀들은 모두 박물관에 처 박혀 버렸다. 교회가 이 땅에서 어찌나 번영을 사모하는지는 누누이 말했다. 그런데 계속 예수도를 궁리하면서 거듭 확인하는 것은 기독교도이든 일반인이든 자유로운 영혼, 독립적인 인생이 되려면 세속의 질긴 연을 끊고 길을 떠날 때 서광이 비친다. 그 길 끝에는 진실로 구원과 영생이 있다. 알아보는 사람에게 복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