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앞으로 네 번 동안 “진냥의 구성물질”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저를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서요.
원전 격인 TV판이 총 26화이며 이후 <사도신생(〈데스(DEATH)〉와 〈리버스(REBIRTH)〉)>가 제작되었다. TV판의 결말이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제작된 25, 26화 격인 <에어/진심을 너에게>, 동명 만화와 함께 외전 격인 만화 <강철의 걸프렌드 세컨드>가 나왔다. 관련 게임도 수없이 많으나 한국에 정식 발매된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와 PC용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아야나미 레이 육성 계획>,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신지 육성 계획>이 있다. 그리고 TV판의 후속 개념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극장판으로 <에판게리온: 파>, <에반게리온: 서> 외에도 <에반게리온: Q>가 11월 일본에서 개봉하는 등 시리즈 열거 자체가 숨에 버거운 이 작품은 바로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 느낌표를 이 만큼 붙이지 않으면, 뭔가 찬양하는 자세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무례를 저지르는 것만 같은 이 고귀한 작품은 1995년에 제작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손을 통해 가이낙스(GAINAX)에서 제작되었다.
가이낙스는 1984년 설립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1990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1990)>라는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한국에도 수입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감히 단언컨대 나디아와 에바. 이 두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만으로 가이낙스사에 대한 신뢰를 가져도 좋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이웃집 토토로」 감독)나 지브리스튜디오(「이웃집 토토로」와 「천공의 섬 라퓨타」의 제작사)에 대한 신뢰처럼.
특히 가이낙스는 오리지날 버전 애니메이션에서 늘 최종화 부제를 SF소설에서 빌려온다. 마치 가이낙스의 애니메이션이 상당 부분 로봇이나 우주선, 배 등과 같은 SF적 요소에 바탕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달까. 그러면서도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자(할란 에리슨, 1969)>를 최종화 부제로 선택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드러나듯 가혹한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이 그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를 매번 다루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내가 에반게리온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바로 그 처절하고 처절한 아름다움.
제법 오래전에 제작된 작품인지라 배경이 2000~2020년이다. 그래서 2012년에 보기에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 사도 ‘아담’과 인류가 접촉하면서 발생한 대재앙(세컨드 임팩트)으로 지구는 인류의 절반을 잃는다. 자연도 완전히 파괴되었고 남극해는 핏빛 바다로 물든 채 단 하나의 생명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된다. 그러나 15년 후 지구의 생태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고 인류도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그러나 인류에게 ‘사도’가 다시 찾아온다.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 무서운 파괴력으로 지구를 공격하는 거대 괴수 사도. 이 사도로부터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E계획’을 세우고 생체 병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10대만이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을 할 수 있다. (스토리에서 나이가 더 많은 사람-주인공 신지의 어머니가 에반게리온에 탔다가 폭발과 함께 죽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에반게리온의 파일럿으로 전투가 가능하다고 선택된 ‘아이들’. 레이(퍼스트 칠드런), 아스카(세컨드 칠드런), 신지(서드 칠드런). 에반게리온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에반게리온은 생체 병기이기 때문에 전투에서 다치면 고스란히 파일럿에게 그 고통이 전해진다. 그냥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에반게리온과 신경이 연결된 채로 에반게리온이 부상을 당하면 파일럿도 똑같이 다친다. 팔이 부러지고 신경계가 오염되고 온몸이 부서진다. 아스카는 정신오염공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전투에 나서고 절대 지면 안 된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 에반게리온. 심지어 어떤 연습도 없이 주인공 신지는 바로 전투에 투입된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서다. 파일럿의 의사도 고려되지 않는다. 에반게리온과 동조되는 선택받은 인간. 이들은 에반게리온에 왜 타야하는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매번 스스로에게 묻지만, 질문에 답을 찾기도 전에 사도가 찾아오고, 어디에서 오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사도와 싸워야 하는 전투가 이어진다.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아픈 걸 피하는 게 잘못인 거야?”
치밀하고 방대한 스토리만으로 충분히 대작인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진냥의 구성성분”이 된 이유는 2가지 대사 때문이다.
하나는 오프닝 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에 나오는 가사다.
잔혹한 천사처럼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푸르른 바람이 지금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
나만을 그저 바라보며 미소 짓는 당신
살짝 스치는 것을 찾는 일에 열중해서
운명마저도 아직 모르는 순진한 눈동자
그렇지만 언젠간 깨닫겠지요 그 등에는
아득한 미래를 지향하기 위한 날개가 있는 걸
잔혹한 천사의 테제 창가에서 곧장 날아오르는
용솟음치는 뜨거운 정열로 추억을 배신한다면
이 우주를 감싸며 빛나는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사랑의 요람
당신만이 꿈의 사자에게 불리는 아침이 온다
가느다란 목덜미를 달빛이 비추고 있네
온 세상의 시간을 멈추고 가둬버리고 싶지만
만약 두 사람이 만난 일에 의미가 있다면
나는 그렇게 자유를 알기위한 바이블
잔혹한 천사의 테제 그리하여 슬픔이 시작된다
끌어안은 생명의 형상 그 꿈에 눈뜰 때
누구보다도 빛을 발하는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사람은 사랑을 자아내면서 역사를 만든다
여신 같은 건 되지 못한 채 나는 살아간다
잔혹한 천사의 테제 창가에서 곧장 날아오르는
용솟음치는 뜨거운 정열로 추억을 배신한다면
이 우주를 감싸며 빛나는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잔혹한 천사가 말하는 테제,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어떤 이는 그 말 한마디로 10대 시절을 견디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슬픔은 시작되고 사람은 사랑을 자아내며 역사를 만들어나가지만 우리는 여신 같은 건 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저 산다는 것이 위대할 뿐.
그리고 또 한 마디. 그것은 주인공 신지가 계속 부르짖는 말이다.
“힘든 걸 피하는 게 잘못된 거야?”
“아픈 걸 피하는 게 잘못인 거야?”
그 말을 듣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다면 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도망가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 무너져 내리는 것이 그리고 약하다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에반게리온을 퉁퉁 부은 눈으로 보며 내가 배운 것이다. 설혹 나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설혹 나로 인해 누군가가 부서져 내린다 하더라도 힘들고 아픈 걸 피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벽, AT필드
에반게리온은 계속 묻는다. 무엇이 고독인가. 무엇이 소외인가. 무엇이 ‘나’ 이고 무엇이 타인인지를. 에반게리온과 놀라울 만큼 같지만, 적인 사도. 사도와 에반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방어막 AT필드는 인류의 모든 무기를 튕겨낼 정도로 강력한 막이다.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 조차 밝혀내기 못하는 방어막이었지만 최초의 인간형 사도인 17사도의 설명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성스러운 영역. 마음의 빛, AT 필드는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야.”
누구든 자신에게 자신만의 마음의 공간이 있다. 누구를 튕겨내고 고립하기 위한 마음의 공간, 마음의 벽이 아니라 나만의, 내 성스러운 그 공간. 그곳을 지키기 위한 마음의 벽 AT필드.
내 존재를 찾고 나만의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자 존재가치이니까. 그것은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 자체가 성스럽고 위대한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비밀집단 ‘제레’와 ‘네르프’가 세운 E계획이 ‘인류보완계획’이라는 비밀계획의 포장이었고 ‘인류보완계획’은 곧 AT필드를 사라지게 하여 모든 마음의 벽을 넘어서는 전 인류의 통합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니까. 그래서 외로운 거니까. 그래서 혼자 있을 수 없게 그 방어막을 사라지게 만들어 영영 고독할 수 없는 인류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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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나는 고독하고 싶다. 내 마음의 빛을 지키기 위한 AT필드를 가지고 싶다. | | |
하지만 나는 고독하고 싶다. 내 마음의 빛을 지키기 위한 AT필드를 가지고 싶다.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 주고 누군가의 AT필드로 인해 내가 상처받고 아프더라도, 외롭고 슬퍼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더라도 그러고 싶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제한도 없어서 자유로운 세상보다는 하늘과 땅이 있어 발이 땅에 구속되고 싶다. 그리고 부자유스러운 땅을 디디고 고뇌하며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별을 나누지 않고 인종과 피부색을 나누지 않고 나이를 나누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에반게리온은 한 회, 한 회 볼 때마다 이런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먹먹함을 주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심지어 여러 번 보아도.
나는 곧잘 내 정체성의 5할은 슬픔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에반게리온은 그 슬픔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뭐, 따져보자면 35%정도? 처절하고 독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채워보고 싶으신 분은 반드시 꼭 보시고, 그렇지 않은 분도 꼭 보시길. 에반게리온은 그야말로 세기의 작품이다. 살아생전 못 보시면 저승에서 후회하실 테니 정말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