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그리스 경제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을 넘어서는 가운데 위기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연착륙하고 프랑스도 위협하고 있다. 유럽 정부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긴축을 펴며 위기에 대응했지만 오히려 이는 또다른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남유럽 민중은 정부들의 수탈에 맞서는 한편 부상한 좌파는 정치적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민중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남유럽 민중의 위기에 대해 박석삼(진보전략회의)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좌파의 과제를 살폈다. 진보전략 창간기획호 9월호에 실린 그의 글을 세 번에 나눠 연재한다.
(1)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
(2) 그리스 긴축정책과 민중의 고통 및 투쟁
(3) 그리스 총선과 좌파의 대응 및 쟁점
그리스 민중의 삶에 대하여 트로이카를 앞세운 세계자본가계급의 공격은 단지 빌려준 돈의 회수나 변제의 보장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IMF가 강요한 긴축정책에는 정부지출을 줄이기 위한 복지의 축소나 공공부문의 임금삭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계급에게 수혜를 주는 해고수당과 최저임금의 삭감 그리고 단체교섭권의 무력화까지 들어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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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http://www.manager-magazin.de 화면 캡처 | | |
이처럼 부채위기를 빙자하여 강행되는 트로이카의 공격은 독점자본의 도구인 EU와 유로존의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본가계급의 착취율과 이윤율의 회복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몫을 빼앗고 후퇴시키기 위해 진행되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철면피한 공격의 일환이기도 하다.
자본은 부채의 완전한 회수만이 아니라 동물적 삶도 감수하고 묵종하는 규율 잡히고 순종적인 노동자계급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본질과 논리는 OECD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는 지속가능한 재정과 경쟁력과 건강하고 굳건한 장기적 성장을 위하여 야심찬 구조조정 정책에 착수하였으며, 2011년 7월 21일 발표된 IMF 패키지는 그리스 부채에 대한 합리적인 이자율이 보장돼야 하며19), 투자와 성장을 증진시킬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노동시장 개혁은 고용을 증가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회복시킬 것이다. 경쟁에 대한 장벽을 없애는 것은 내외의 투자를 촉진할 것이다. 그리스 당국은 그들이 기본적인 경제적 구조조정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장이 확신하도록 개혁과정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재정적자 감소 노력을 지속하고, 부채부담과 부채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재산을 개발하고 사유화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성장을 자극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복지와 소득을 증가시킬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의 구조개혁을 강화해야 한다.”20)
결국 임금수준과 노동환경 및 복지 등을 강력하게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과 공공재를 자본가계급에게 팔아넘기는 것이21)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논리 하에 강요된 트로이카의 구조조정 정책의 본질에 대하여 독일 사민당SPD 에베르트 재단FES의 국제정책보고서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IMF의 표준적인 처방은 화폐가치 절하에 의해 지탱되는 수출지향성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유로존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처방의 역사적인 실패와 그것이 낳은 경기후퇴 그리고 사회정치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가치절하와 디플레이션이라는 무자비한 정책으로 그리스가 경쟁력과 수출을 촉진하도록 강요하여 왔다. 이러한 가치하락 정책의 최선봉은 직접임금의 삭감과 노동시장제도의 구조조정을 포함하여 임금을 억압하고 노동시장을 탈규제하고 유연화하는 것에 의한 노동의 평가절하이다.”22)
이러한 논리 하에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이 가혹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시행됐다.
실업률은 2010년 11월 13.9%에서 2011년 11월 20.9%로 치솟았고(피고용자는 390만 명, 실업자는 103만 명, 비경제활동인구는 442만 명), 청년실업률은 48%, 여성 실업률은 24.5%에 달했다. 이러한 실업의 증가는 공공부문에서 해고된 15만 명을 포함한 중소회사의 도산에 기인한다.
임금은 2009년 이후 25%가 삭감되었는데, 공공부문과 공공관련 부문의 임금은 각각 15%와 30%씩 삭감되었다. 2012년 2월 트로이카가 강요하여 시행된 최저임금 삭감은 22%(청년노동자는 32%)이고, 공사 부문의 연금은 10~12%가 삭감되었고, 사회복지지출은 50%가 감소할 예정이고, 부가세는 23%로 치솟았다. Eurostat에 따르면 사회빈곤층은 28%(303만 명)에 달한다.23)
그리스 민중의 투쟁
이처럼 국제금융(투기)자본을 포함한 독점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트로이카가 강요한 가혹한 구조조정은 그리스 민중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이에 대한 저항이 2010년 5월부터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총파업과 점거투쟁으로 분출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의 모순의 폭발이듯이,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세계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최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다.
현 시기 세계경제 위기 시에 벌어지고 있는 가장 첨예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인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크게 2010년 5월 투쟁과 2011년 5월과 6월의 점거투쟁, 6월과 10월의 총파업과 10월 28일 거부투쟁 그리고 2012년 투쟁과 선거의 고비가 있고, 투쟁의 뿌리에 2008년 12월 항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들 투쟁의 주된 계기와 동력 및 양상 등을 살펴본다.
2008년 12월 항쟁
2008년 12월 6일 아테네의 변두리에서 15세의 고등학생이었던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포울로스(Alexandros Grigoropoulos)가 순찰하던 경찰관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즉시 전파되었고 고등학생을 포함한 대학생과 시민들(도시하층민)이 연말까지 전국적인 항쟁을 계속했다. 경찰의 강력한 진압에 맞서 관공서, 은행, 상점 등의 방화가 계속됐고 수많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항쟁의 양상은 폭동에 가까웠다.24) 전국적인 항쟁은 연말이 지나 동력이 소진했다.
이 사건은 단지 무도한 경찰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광범위한 청년실업 등 미래에 대한 절망과 교원평가와 일제고사 등을 비롯하여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반란이기도 했다. 이점은 2008년 촛불항쟁의 첫날 집회에서 청소년들이 절반을 차지한 한국과도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공격은 단지 노동자계급만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자계급까지 공격하여 그들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고, 이런 배경을 이해하여야만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반란이라고 부를 만큼 치열한 항쟁을 계속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25)
2010년 5월 이전의 투쟁
2010년 2월 24일 총파업에는 민간부문의 70-100%, 공공부문의 20-50%가 참여했다. 이날 특징은 이민자 시민권에 관한 새로운 법률과 관련해 좌파의 동원도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많이 참여했다는 것과, 상층부의 평화시위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전투적이었다는 점이다. 경찰과의 충돌, 은행과 상점의 습격 등은 2008년 12월 투쟁과 비슷했다.
3월 3일 정부가 국가의 구조조정을 위한 첫 번째 조치를 발표하자 3월 5일 양대 노총인 ADEDY(공공부문노조 총연맹)과 GSEE(민간부문노조연합)는 3시간 작업거부26)를 발표했고, 초중교사노조와 공공운수노조는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했다. 의회 근처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시작된 이날 집회는 처음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은 아나키스트와 청년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GSEE 위원장이 발언하려다가 참가자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의회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아나키스트 300여명이 투석전을 시작하였고, 노조는 의회 앞의 긴장을 풀기 위해 노동부 쪽으로 행진을 하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3월 11일 ADEDY와 GSEE는 24시간 파업을 선언했다. 이날 집회는 2월 24일보다 두 배나 많이 참가하였고, 이주노동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반면 대학생들과 젊은 노동자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를 양측에서 압박했고 노조집행부는 노골적으로 경찰과 협동해 충돌을 막았다. 5월 5일 전까지 총회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의 수가 갈수록 많아졌지만 비정규직이나 도시 하층민들의 참가는 적었다.27)
2010년 5월 투쟁
2010년 5월 1일 정부는 1,100억 유로의 1차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EU와 IMF가 요청한 긴축안을 밝히고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 내용은 공공부문 15만개 일자리 삭감, 임금 15% 삭감, 연금 삭감, 소득세 증세, 기업이윤에 대한 세금 신설, 사치세와 죄악세(주류세나 담배세), 부가세 인상으로 연간 300억 유로(그리스의 GDP는 2,300억 유로밖에 안 된다!)를 절감하는 계획이었다. 긴축안은 5월 5일 통과되었다.
한편 메이데이 행진에는 노조와 아나키스트, 공산당 지지자 등 수천 명이 참가해 “우리들의 권리에서 손 떼라! IMF와 EU위원회 꺼져!” 등을 외치며 아테네 시내를 행진하면서 경찰과 충돌하였고, 경찰은 최루가스로 진압하였다. 중심가의 호텔이 파괴되기도 하였고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28)
5월 5일 새로운 긴축안 표결을 앞두고 사상 최대의 시위대가 참가했다. 분위기는 2008년 12월과 비슷했고 후드를 입은 청년들도 있었다. 슬로건은 ‘매춘굴인 의회를 불태우자’부터 ‘IMF는 떠나라’, ‘도적놈들’, ‘인민은 사기꾼들을 감옥으로 보내길 원한다’까지 다양하였다.
전국적으로 운송(항공, 열차, 여객선), 교육, 병원 등을 포함한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테네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신타그마 광장 옆에 있는 의회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경찰과 충돌하였다. 경찰은 최루가스, 섬광탄, 연막가스, 후추 스프레이를 사용하였다. 일부 시위대가 근처에 있는 재정부 건물과 마핀 은행을 화염병을 던져 방화했고, 이 화재로 마핀 은행 안에서 갇혀서 일하던 은행원 3명이 질식사했다. 이날 밤 거대한 진압작전이 개시되었고, 정부는 시위대의 정치적 무책임성을 비난하면서 “시위대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고 긴축정책은 삶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투쟁으로 12명이 부상하고 37명이 구속되었다. 5월 5일이 정점이었다. 다음날 의회는 긴축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날 밤 노조와 좌파가 소집한 집회에는 겨우 수천 명이 의회 앞에 참가했다.30)
2011년 5월 이후의 투쟁
6월에 들어 모든 운송부문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아테네 지하철에서 해고에 반대하는 3일간의 파업이 있었지만 PASOK계열 지도부가 타회사로 재고용하겠다는 모호한 약속을 받아들이면서 끝났다. 6월 10일 OSE(국영철도)는 임금삭감과 적자노선 폐지 및 자회사 매각에 항의하여 24시간 파업에 들어갔고, 6월 22일 다시 48시간 파업을 벌였다. 아테네 국영버스회사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보조금 축소에 항의해 6월 3일 24시간 파업에 이어 6월 17일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7월 1일에는 임금이 지연되자 다시 24시간 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중등교사들은 수당삭감에 항의하여 대학입학자격시험 채점을 거부하려 하였으나 교사노조가 학생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면서 무산시켰다.
특히 6월 15일 시위에는 아테네에서만 30만 명이 참가했고, PASOK의 파판드뢰우 총리는 거국내각을 제안하였지만 트로이카의 긴축안을 거부해 온 ND의 사마라스가 거부했다.31)
7월에는 의사노조연맹이 공공병원의 예산삭감과 일부 서비스의 민영화 및 임시직 채용확대에 반대하면서 5일간의 파업에 들어갔다. 은행노조는 농업은행의 매각에 반대하여 24시간 파업에 들어갔다.
공공운송트럭 소유자들은 공공운송의 자유화에 반대하여 파업에 들어갔다. 화물트럭 소유자, 의사, 변호사, 건축가들은 클로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