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뉴스민>은 지난 5월부터 3달 동안 악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모받았습니다. 글을 쓸 시간이라고는 고된 노동을 마친 늦은 밤,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며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공모작이 많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공모에 응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공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부터 공모작 중 심사를 거쳐 선정한 당선작 4편을 연속 기재합니다.
먼 길 떠난 S에게 쓰는 첫 편지
부문 : 바람이 묻어나는 상
수상자 : 임향원
너를 처음 만났던 날, 아직은 날이 풀리지 않아 까만 패딩 점퍼를 입고 냉소적인 표정을 가졌던 너. 늘 머금고 있던 내 미소마저 굳게 만들었던 너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구나. 그게 벌써 몇 해 전 일이 되었네. 그리고 두 번째 만남.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언니, 언니’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던 너의 노력, 그리고 두 번 만난 사람에게 몸을 맡겨야 했던 너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적해진다. 그렇게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활동보조인 여럿을 만났고 매번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내 오랜 꿈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었고,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중학생 때부터 자원봉사를 했던 터라 나는 ‘장애인’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안다’고 생각했었어. 편견도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여름 캠프를 다녀오게 되고 그동안 내가 ‘알던’ 것이 더는 아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지.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장애인’이란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어. 내게도 어쩔 수 없는 편견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시작했어. 활동보조인을. 언젠가 네게도 말한 적 있었지. 네가 ‘향원아, 너는 어떻게 하다가 나를 만나게 된 거야?’라고 했을 때, 내가 짧게 ‘이해하고 싶어서’라고 했던 거 기억하니?
그랬었어. 이해하고 싶어서. 그 캠프에서 너무도 배려가 없고 이기적이었던 장애인들로 인해 나는 ‘비장애인의 인권이 짓밟힌 캠프였다’라고 그 2박 3일을 표현했었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잖지만 말이야. 내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활에 밀접하게 접촉할 수 없었기에 장애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거지.
역시 누군가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거였어. 그만한 노력도. 그래서 너를 만나게 되었지. 나 바로 이전에 너를 보조해주던 선배와 가깝던 사이었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선배의 부탁도 있었거든. 이해하고 싶었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내가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느꼈던 걸까 궁금했거든. 혹 오해가 있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그것을 풀 수 있는 가교 역할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활동보조인을 시작했어.
그때가 스물 둘 봄이었지. 일월에 교육받을 때 교육장에 왔던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제도구나 많이 느꼈었어. 그 이후에도 다른 보조인들을 만나면 ‘비싼 아르바이트 하네.’, ‘어린데 좋은 일 하네.’ 그런 소리를 자주 들었었지. 참 마음이 그렇더라.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였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에게 참 고마운 게 많아. 서로 성격이 정반대라 맞추는 데만 몇 개월, 마음을 여는 데만 몇 개월. TV를 보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별다른 대화 없이 잘 웃지 않던 너였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함께 TV를 보고, 밥을 먹고 큰 소리로 웃고 있었지. 너보다도 너의 물건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네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좋아하고 어떤 때에 입는지, 신발 끈은 어떻게 묶는 걸 좋아하는지. 어떤 로션을 쓰고 어떤 섬유유연제를 쓰는지. 좋아하고 즐기는 음식은 무엇이고 잠자리는 어떻게 준비해주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너 또한 패션도 꽝, 화장도 꽝, 연애도 꽝인 내게 그 멋들어진 감각으로 많은 걸 알려줬었지. 말하기 좋아하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잘 들어주던 너였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나누었더구나.
때론 네가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너를 미워한 적도 있었어. 막차 끊겨서 택시 타고 집에 갔던 날, 보조하다 수업 늦었던 날들, 집 밥 먹고 싶대서 도시락 직접 싸서 들고 갔는데 몇 숟갈 먹지 않고 숟가락 놓았던 날 등등. 참 사소한 거에 나도 섭섭한 마음이 들고 미운 맘이 들었더라고.
그래도 특별한 날마다 우리가 먹었던! 네가 좋아하던 햄버거세트, 하양 시내에서 사가지구 네가 있던 곳으로 갈 때는 그 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기분이 좋았던지. 네 고향에 들어온 단 하나의 패스트푸드점이라고 그래서 좋아한다고 했던 말도 또렷하고. 먹으면서, 청소하면서 이야기 참 많이 나눴었는데. 너의 첫사랑 이야기며, 지난 활동보조인들에게 꺼내지 않았다는 많은 이야기를 내게 나누어주었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렇게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 내가 왜 지난 캠프에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지를.
활동보조인 제도를 이용한 이후로 수차례 활동보조인 교체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룸메이트가 바뀔 때마다 너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어.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잖아.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네 룸메이트가 나가버린 일. 그때 나는 그 애 머리채라도 잡고 싸우고 싶었던 거 있지? 너에게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을 내뱉고, 장애인 비하를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너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그 아이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 너는 그렇게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겠구나,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눈, 말 한마디에도 많은 상처를 받았겠구나 싶었어. 그 과정에서 너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지금의 ‘너’가 ‘너의 분위기’가 만들어졌구나 싶더라. 마음이 아팠어.
너와는 참 미운 정이 많이 들었는데….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무섭잖아. 그래서 너를 떠올리면 더욱 애틋하고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네가 너무 미워질 때마다 ‘내 딸이라고 생각하자, 미운 네 살 딸이라고 생각하자.’ 그런 다짐 해가며 했었어. 딸을 무작정 미워하는 엄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잖아. 딸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랬었어.
넌 내게 그런 친구였어. 고향에서 부모님이 잠시 올라오셔서 너를 만났던 날, 나는 복도 뒤에서 너를 지켜봤었는데 그날. 너의 뒷모습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몰라. 뒤돌아섰을 때 눈물이 그렁한 너의 얼굴도. 참 먹먹하더라. 후에 네가 먼 길 떠나고 나서 자꾸만 그 모습이 떠올라 참 힘들었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넌 내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나도 내가 지내온 이야기들 많이 풀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
여러 이유로 학교 휴학을 해야 했고, 더는 너의 곁에 있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심적으로 지쳐서 너와 더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너에게 ‘나 이제 그만둘 거야. 활동보조인 이제 안 할 거야.’라고 말했었는데. 물론 그전부터 너에게 12월까지만 하고 말 거라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싶었어. 그때 너는 잡았었지. ‘같이 있자’, ‘계속 같이하자, 이제까지 하면서 너처럼 이렇게 많은 걸 믿고 맡기고, 보인 활동보조인은 없단 말이야.’ 그랬었는데 나는 단호하게 그만둬버렸어. ‘앞으로 활동보조인 정말 안 할 거야’라면서. 그런데 어떤지 알아? 나 지금 활동보조인 3년 차야. 너랑 1년 보내고 다른 선생님하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 있지? 너랑 일 그만두고 얼마 안 돼서 다른 분 보조 중인 거 있지. 너에게 많이 미안했었어. 너는 가족 이상으로 내게 참 귀한 친구였는데. 너와 그렇게 헤어지고 6개월 동안 센터에만 가끔 안부를 묻고 왜 직접 한 번도 너에게 연락해보려 하지 않았는지 나는 지금도 내가 원망스러워.
다시 복학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그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도시락 싸가지고 ‘S야 같이 먹자~’ 그렇게 똑똑! 너에게 가려고 했었는데. 아니, 학기 중에라도 너에게 자주 들리려고 했는데. 네 생일 때 미역국 정성스레 끓여 가려고 했는데… 너는 참 빨리도 가버렸더구나. 야속하게도. 너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 그전에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하겠더라. 너의 첫 기일이 지나고도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세히 전해 들었지. 깜깜한 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너의 룸메이트가 떠났을 때, 어둠이 무섭다던 너. 혹시나 몸 상태가 나빠질지도 몰라 사감 선생님 언제든 달려오실 수 있게 문을 열어 놓고 잔다던 너, 누군가 해코지 할까봐 두려워하던 너의 곁에서 네가 잠들 때까지 룸메이트의 빈 침대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었지. 그 깜깜한 방, 그 침대, 그리고 네가 또렷하게 떠올라 참으로 속이 상했고 답답했다.
새로 만난 선생님과 매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때에 너의 소식을 듣고, 다음날 장례식장에 갈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보다 아픈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더구나. 점점 굳어가던 너의 몸을 외면하고 그만두어 버렸던 것, 더는 활동보조인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놓고 계속하고 있던 나, 무엇보다도 단 한 번도 너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내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어.
너의 장례식장, 영정 사진이……. 다름 아닌 내가 사진관에서 찾아주었던, 너의 기숙사 방 입구에 있던, 내가 항상 너에게 갈 때마다 보던 그 사진이었어. 사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복학하고서 지나갈 때마다 네 생각이 나는 그 건물. 학생식당에서 네가 자주 먹던 음식, 네가 좋아하던 그 햄버거 세트, 그 외의 많은 음식들. 너의 향기, 네가 좋아하던 것들, 네가 즐기던 TV 프로그램조차. 그 모든 것들 못하겠더라. 내 딸 같았던 친구, ‘이해’ 할 수 있게 해준 그런 친구라서. 꿈이 참 많고 정말 예뻤던, 그래서 더욱 아깝고 안타까운 내 친구야.
요즘 너와 자주 나눴던 이야기, 너와 내가 꿈꿨던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치열히 고민하고 있어. 너로 인해 꿈꾸던 방향을 조금 틀게 되었어. 아직 많은 공부를 해야 하지만, 장애인 정책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그곳에서 네가 환히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꽃다운 나이에 먼 길 떠난 네가 다음 생에 또다시 살아가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지금보다도 활동지원제도가 보완되고, 더욱 발전하기를. 보조인과 대상자의 관계는 가족 이상일 수도 있음을. 참으로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는 관계임을. 단순히 금전을 위한 수단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S야, 속정이 아주 깊었지만 잘 표현하지 않던 너의 무심한 그 한마디가 그립다. 아주 많이 그립다 친구야. 사랑하는 S야. 그 곳에서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상처 받지 않고 마음껏 달리며, 아프지 말고 환하게 웃으면서.
사랑한다 친구야. 아주 많이 사랑한다.
네 곁에 가는 그 날까지, 좀 더 나은 세상 만들어 보려 치열히 살다갈게. 우리의 꿈만큼.
심사평
활동보조인을 하게 된 계기부터 ‘S’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 그로 인한 자신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글의 완성도가 응모작 중 가장 좋아 보였다. 또, 인권캠프를 통해 느꼈던 점, 활보를 하면서 이용자와 겪었던 갈등이나 심리적 갈등 등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