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8) - 뉴스민
뉴스민 로고
무제 문서
뉴스 오피니언 기획/특집 지역광장 사진/영상 주말판 노는날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백목사의 예수읽기
뉴스관리툴 2012년10월04일 14시06분    
글자크기 글자크기 크게 글자크기 작게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8)
마가복음 9:38-47 "차라리 한 눈이 낫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오늘은 교회이야기를 좀 하겠다. 9월 25일 감리교단이 목회세습방지법을 결의해서 뒤늦게나마 참 잘했다 싶었는데, 이틀 뒤 27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에 속한 왕성교회가 당회를 열어 길자연의 후임으로 그 아들을 담임목사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교회세습을 공식화한 것이다. 무언가 급했나보다. 보통 당회는 주일날 하는데, 이례적으로 평일 회의를 열어서 요식절차를 감행했다.

▲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 [출처: 왕성교회 홈페이지]
길자연은 1998년 합동교단 총회장을 할 때도 사고 친 전력이 있다. 총회장을 뽑는 총대들에게 조직적으로 돈봉투를 살포했다. 돈봉투 만드는 일에 동원된 교역자가 견디다 못해 양심선언을 해서 알려졌다. 대개는 자기 밥줄 때문에 꾹 참고 모멸스런 일도, 그보다 더 한 일도 감당하지만, 양심이 견디지 못하면 밥줄도 사람을 막지 못한다. 금품선거가 하도 시끄럽고 후유증이 많고, 이미지가 계속 나빠지니까 합동교단도 그 뒤 보완을 해서 지금은 제비를 뽑거나 금품이 통하지 않는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어쨌거나 길자연은 그런 불법을 자행해도 끄떡없이 총회장이 됐다. 그 뒤에도 승승장구, 한기총 회장도 두 번이나 했다. 길자연이 이렇게 대외적으로 돈봉투를 뿌리고 단체감투를 쓰고 권력행사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교인 일 만 명이라고 하는 왕성교회다. 교회가 그의 타락한 행보를 뒷받침하는 물적토대가 된 것이다. 그러니 그 물적토대가 얼마나 귀하고 아깝겠는가. 정년이 돼서 물러나지만, 그 물적토대를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습을 했다.

그럼, 한번 묻자. 세습은 왜 나쁜가? 이북의 김일성체제를 따라 해서 나쁜 것인가? 하늘의 것을 사유화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한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다. 그래서 머리 되시는 예수님과 몸인 사람이 조심스런, 거룩한 대상이어서 '교회를 섬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습은 이런 교회의 거룩한 뜻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어떤 사람이 교회의 주인임을 과시한다. 단지 권력자가 자기 핏줄이라는 이유로 교회를 물려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고, 의지하고 섬기는 모든 신심행위와 교회의 중심인 교우들이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늘 복음말씀은 이처럼 교회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고, 자기들끼리만 해먹는 종파적 태도에 대한 경고말씀이다. 제자 요한이 예수께 자랑스레 떠벌렸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9장 38절)

요한의 말에서 문제가 보이는가? 따름의 객체는 항상 예수다. 그런데 제자들은 따름의 객체에 예수 대신 자신들을 넣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에 대한 독점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특권의식이 물씬 담겨 있다. 앞 절(9장 18절)에서 보면, 제자들은 아이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 그러면 예수운동이 널리 퍼지는 것을 환영하고 연대해야 할 텐데, 자기 영역이 줄어들까봐 그 사람 활동을 막는다. 바로 이런 종파적 태도가 운동을 훼방하고 민중을 배신하는 현실을 낳고 만다.

지난 4.11총선 때 민주당이 보여준 행태가 꼭 이랬다. 종파적 태도로 공천권을 행사했다.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어서 민주공화국을 고양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앞에 두고 벌인 작태라니! 함세웅 신부는 장사꾼들, 486, 5인방 등의 격한 단어를 쓰며 권력만 탐하고 총선을 망친 그 종파세력을 규탄했다.(팟캐스트 이슈털어주는남자, 2012년 10월 2일 방송) 심지어 재벌귀신을 확실하게 쫓아낼 역량을 가진 유종일을 온갖 거짓말로 낙마시킨, 민주당 종파세력들 역시 재벌의 후예라고 맹공을 가했다.
 
9장 41절에서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물 한 잔이라고 가볍게 보지 말라.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 지형에서, 게다가 사막이라면 물 한 잔은 생명수다. 대접할 수 있는 게 딱 물 한 잔이라면 누구에게 이 물이 가야 하는가? 지금 그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지배세력의 강고한 억압에 숨을 헐떡거리는 민중이다. 그런데 종파세력들은 그 물을 민중에게 쓰지 않고 저들끼리 독점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물 한 잔의 상을 말씀하신 거다.

임박한 대선을 앞두고 권력과 재벌, 수구언론은 여태껏 누려온 독점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악마적 수단을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는가? 종파를 극복하고 대동단결해야 한다. 그래야 민중에게 제대로 물 한 잔 대접할 수 있다.

9장 42절 말씀은 섬뜩하다. 작은 사람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니!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은 장사도 지낼 수 없는 최악의 죽음을 말한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영혼도 떠나지 못하고 물 위에서 영원히 떠돈다고 여길 정도로 무시무시한 벌의 상징이다. 어떤 의미인가?  작은 사람을 죄짓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예수의 하나님나라에서 구원을 얻었다. 그 나라가 평등사회라는 복음을 행복해하며 받아들였다. 왜? 자신들이 땅위에서 지겹도록 겪었던 차별과 설움을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나라를 독점하고 권력화하고, 특권층이 되는 것을 본다면... 그들의 소망은 완전히 깨지고 만다.

"헛 믿었구나"하는 탄식과 더불어 평등세상에 대한 신심을 버리고 다시 권력지배질서에 예속돼서 '케쎄라 쎄라'로 살아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죄를 지은 사람이든 죄 짓게 한 사람이든, 누구든 간에 최악의 죽음을 겪고 말 것이라는 경종이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나라의 전위대인 교회를 왜곡하고, 독점세습하고, 자신의 부와 권력의 기반으로 삼아 버린 사람을 보면서, 여태껏 신심으로 교회에 바친 충성이 오히려 권력자의 불의의 밑천이 돼 버렸다면, 그 사람 심정은 어떻겠는가? 오늘날 물적토대가 큰 교회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는 사례들로 차고 넘친다.

경종의 말씀은 계속 이어진다. "손이 죄짓게 하거든, 발이 죄짓게 하거든, 눈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성한 몸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불구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9장 43-47절) 큰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말씀 못지않게 자신의 신체를 절단하라는 이 무시무시한 말씀은 또 뭔가?

하나님나라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런 요구를 감당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자기 신체를 절단하란 말인가?
 
오늘날 교회에 적용하자면 이렇다. 신체를 절단할 것까지는 없고, 한 시라도 빨리 그 세계에서 탈출하는 게 사는 길이다. 사람들의 신심을 왜곡해서 권력자가 사유화의 수단으로 삼는 교회라면, 그 물적토대를 당장 끊는 것이 서로 살 길이다. 그들이 사유화하는 유일한 이유는 교회의 물적토대가 너무도 탐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무슨 미련이 있는지, 아니면 교회의 인적네트워크, 커넥션, 카르텔에 엮여서인지는 몰라도 당최 그 세계에서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 예루살렘의 파괴를 슬퍼하는 예레미야, 1630년, 렘브란트 작

그래서 온건한 선지자인 예레미야조차 이렇게 말한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예레미야 5장 30-31절)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같이 망하고 만다. 그러므로 타락한 교회에 묻혀 있다가 같이 망하느니, 비록 관계망에서 소외돼서 거친 벌판에 홀로 서 있게 되더라도, 진정 자기 영혼을 구하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결론으로 다시 말한다.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9장 47절)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 뉴스민 (http://www.newsmin.co.kr).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보도자료 newsmin@newsmin.co.kr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55)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0)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56)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57)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1)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2)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4)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66)
[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67)
[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69)
[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70)
[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71)
[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72)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끝)
뉴스스크랩하기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백목사의 예수읽기섹션 목록으로

이름 비밀번호
 58903644  입력
다음기사 :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9) (2012-10-17 10:30:53)
이전기사 : [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7) (2012-09-18 13:49:32)
많이 본 기사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최근 기사
열악한 대구 시민 복지…”복지기준선 필요...
낙동강, 맹꽁이 사라지고 큰빗이끼벌레만
청도 송전탑 공사 강행 1년, 피해 주민 “...
중구청, 대구 지자체 중 비정규직 비율 1위
국가는 유령이다: ‘유일자(唯一者)’ 막스...
“학교 급식인원 감소 예상된다”며 조리원...
민주노총 대구본부, ’10월 항쟁’ 답사 진...
삼평리 주민과 연대자, 송전탑 넘는 넝쿨이...
노조탄압 논란 ㈜오토..."시급 5,270원 알...
그리스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보여주는 열정...
뉴스민 하단메뉴
하단구분바

사단법인 뉴스민 | 등록번호 : 대구 아00095(2012.8.24) | 발행인 : 노태맹 | 편집인 : 천용길
창간일 : 2012.5.1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72-18 노동복지회관 2층뉴스민
TEL : 070-8830-8187 | FAX : 053)211-4719 | newsmin@newsmin.co.kr

뉴스민RSS정보공유라이선스정보공유라이선스